"네, 동훈이 아버님이시죠~ 지금 동훈이가 미끄럼틀 위로 올라왔는데, 내려오는게 무섭다고 그래서요. 잠시 통화 가능하실까요?"
"예? 미끄럼틀이요?"
아버님은 적잖이 당황하신 것 같았다. 동훈이는 전화기를 건네받자 들려오는 아버님 목소리에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전화 통화 내내 들썩이는 동훈이의 어깨를 토닥이며 손그늘을 만들어줬다.
긴- 통화 끝에 아버님이 학교로 오시겠다는 약속을 받고서야 동훈이는 전화를 끊었다. 잠시간의 정적이 어색해 동훈이에게 말을 걸었다.
"하핫, 동훈이랑 둘이 대화할 시간이 생겼네~"
묵묵 부답. 하긴. 선생님이 눈치가 없었네. 지금 넌 얘기 하고 싶지 않겠지. 멋쩍은 마음에 운동장만 바라보는데, 그새 밥을 먹은 학생들이 너도나도 달려나왔다.
"선생님, 거기서 뭐하세요?"
"응~ 동훈이랑 동훈이 아빠 기다리고 있어요. 오늘은 미끄럼틀 못 타겠다."
"네."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는데도 아이들은 다 이해한듯 다른 쪽으로 가서 놀았다. 우리 반 아이들도 하나 둘 나와 나를 응원하고 돌아갔다. 잠시 뒤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질주하는 자동차 옆으로 모래바람이 일었다.
"아버님!! 여기에요!!!"
조난된 사람마냥 미끄럼틀 위에서 손을 흔들었다. 헐레벌떡 달려오신 아버님께 자초지종을 설명드린 뒤 급하게 아이들이 있는 급식실로 달려갔다.
'안 싸웠나, 밥은 잘 먹고 있나.'
아이들은 아무일 없다는듯 얌전히 앉아 잘 먹고 있었다.
'다행이다.'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급식검사를 맡고, 동훈이의 안부도 물어봤다.
"잔반 깨끗이 정리해서 다시 와 주세요."
"응, 동훈이는 아버지랑 같이 있어. 괜찮아요~"
"글쎄? 집에 갔을진 잘 모르겠네..."
"주세요~ 요구르트 까줄게요."
정신없이 밀린 퀘스트를 수행했다. 채 몇 술도 뜨기 전에 동훈이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급식실로 왔다.
'와, 어떻게 내려오시게 한 걸까.' 하는 궁금증도 잠시, 아버님은 오늘은 수업 참여가 어려워 집으로 가야할 것 같다고 하셨다. 눈물자국으로 얼룩진 얼굴을 보며 귀엽기도 하고 안쓰러웠다. 배웅을 하고 자리에 앉아 시간을 확인하니 점심 끝나기 오분 전. 부리나케 한 숟갈을 털어넣고 교실로 향했다. 다음 시간 준비물을 급히 챙기고 있는데, 지아가 쪼르르 와서 내게 말을 걸었다.
"선생님, 힘들었죠?"
머리를 쓰담쓰담. 순간 눈물이 왈칵. 나 왜 눈물이 나지? 민망함에 고개를 푹 숙였다. 5교시를 준비하는 손놀림이 더 바빠진다.
"사실 선생님도 조금 힘들었는데 지아가 방금 위로해줘서 힘이 났어. 고마워."
오늘도 노련한(?) 일학년 교사는 엄청난(!) 일학년에게 당했다. 각 교실을 돌며 미션을 완수하던 건 어쩌면 나였을지도. 매해 일학년을 해도 매해 새로운 일이 있고 매해 아이들은 나에게 감동을 준다. 이래서 일학년 교사 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