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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교시 Aug 21. 2021

미끄럼틀 위에서의 한시간(2)

일학년 교사의 시간. 일교시

놀이터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에는 어떤 일들이 있을까.

'뭐... 다치거나, 싸우는 정도 아니겠어?' 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일학년은 늘 엄청(?)나다.


정글짐을 올라가다 흙을 튀겼다며 투닥거리는 아이들을 중재하고 있는데 등 뒤에서 아이들이 나를 급하게 찾았다.


"선생님, 동훈이 울어요."


바라보니 동훈이가 미끄럼틀 위에서 용가리 불뿜듯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린 울음을 하늘을 향해 내뱉고 있었다. 미끄럼틀로 향하며 알려준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이유를 모르겠단다. 발걸음이 빨라졌다.


'누가 때렸나? 어디 다쳤나?'


허겁지겁 계단을 올라가 눈물을 닦아주었다.


"동훈아, 무슨 일 있었어요?"

"......"

"흐음~ 동훈이~ 무슨 일일까요~?"

"......"


몇차례 묵묵부답이던 아이는 말없이 안아주자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동훈이 왜 울었어요?"

"...무..서.."


으잉? 무섭다고? 혼자 올라온게 아니었나?


"동훈아, 여기 어떻게 올라왔어요?"

"혼자."

"여기에 왜 올라왔어요?"

"미끄럼틀 타려고."

"그런데 무서워?"


아이는 말없이 끄덕이며 내 품에 얼굴을 묻었다. 혼자 올라왔지만 내려가는게 무서울 수도 있나? 아차, 나 말실수 했구나. 그래. 생각했던 것과 다를 수 있지.  엄마나 영양사 선생님이 주시는 한숟갈이랑 내가 먹겠다 했던 한숟갈이 다를 수도 있는 것처럼. 이내 정신을 차리고 달콤한 유혹을 해본다.


"동훈아, 선생님이랑 같이 내려갈까?"

도리도리-

"그럼~ 동훈이가 올라왔던 계단으로 다시 내려가볼까? 오늘 급식 맛있는거 나오는데~"

도리도리-

"그럼~~ 눈 딱 감고 한 번만 내려가볼까?"


이런. 내 말에 겁에 질린 아이는 바닥에 납작 누워버렸다. 미끄럼틀 난간을 부여잡으며 온힘을 다해 내려가기를 거부했다. 이제 곧 급식시간인데... 열체크도 해야 하고... 손도 씻기고... 알림장도 쓰려면 오래걸리는데.


한참을 밑에서 지켜보던 아이들이 나를 불렀다.


"선생님, 배고파요."

"얘들아, 잠깐만~"


'우선 동훈이 아버님께 전화를 드리고, 애들은 급식실 데려다주고 다시 와야겠다.'

핸드폰을 가지러 내려가려는데 동훈이가 무섭다며 내 바짓가랑이를 잡고 놔주지 않는다. 


"동훈아, 잠깐만 갔다올게."

"으-어어어어어어어어엄마아아아아"


 내려쬐는 햇살에 잔뜩 찌푸린 얼굴로 세아가 말했다.


"선생님, 언제 가요?"

'얘들아, 나도 가고싶어... '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렸다. 나는 노련한(?) 일학년 교사니까.


"선생님한테 핸드폰 가져다 줄 수 있는 사~람~"

"저요. 저요!"


학생에게 핸드폰을 전달받아 아버님께 전화를 했지만 일하시는지 받지 않았다. 교무실로도 전화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런. 교무실은 벌써 급식시간이구나!'


"급식실에서 아무 남자 선생님 놀이터로 데리고 와줄 수 있는 사~람~"

"아무나요?"

"네. 아무나요!"


이름을 호명하자마자 씩씩한 아이 한 명이 총알같이 달려갔다.


'여기서 급식실 가는 방법을 알려나?' 


걱정도 잠시 아이는 의기 양양하게 남자 선생님 한 분을 모셔왔다. 남자 선생님이 놀이터에 들어서자마자, 미끄럼틀 아래 있던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몰려들어 쫑알쫑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미끄럼틀 위로 올라오신 선생님을 바라보는데 부끄러움은 왜 나의 몫인가. 아까 학교 돌며 어깨 으쓱했던 거 취소.


"선생님, 식사 중에... 죄송해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대화를 길게 할 시간은 없다. 점심시간은 이미 시작되었으니까! 그러나 선생님과 아무리 낑낑 거려도 아이는 요지부동. 동훈이의 발차기는 이소룡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안...되겠는데요..?"

"그러게요... 어쩌죠..."


더 늦어지면 안되겠다 싶어서 기다리는 아이들의 급식 지도를 부탁드렸다.


"선생님, 애들 손씻기랑 열체크를 못해서요. 부탁드려요 . 진짜 죄송해요~"


남자 선생님을 쫄래쫄래 따라가는 반아이들을 바라보며 동훈이 아버지께 다시 전화를 걸었다.


"달칵, 여보세요?"

"아버니임!!!!!"


(3편에서 계속)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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