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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교시 Aug 20. 2021

미끄럼틀 위에서의 한 시간(1)

일 학년교사의 시간. 일교시.

일 학년 아이들은 교육과정상 입학 초기 적응활동 시간을 가진다. 3월 한달간 학교 생활에 필요한 기본이 되는 모~든 것들을 익히는 시간이다. 


그 시간들 중에서도 학교 공간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각 공간의 명칭은 무엇인지, 각 공간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이해하는 수업이 있다.


그리고 그 수업의 마무리는 항상 놀이터이다(!)


달콤한 보상은 가장 마지막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으레 경력 좀 있는 선생님이라면 아이들에게 놀이터를 담보로 협박(?)을 한다.


"여러분, 지금부터 우리 학교에 어떤 공간들이 있는지, 그 공간에서는 무엇을 하는지 알아볼 거예요. 그런데 지금 다른 반은 무엇을 하고 있지요?"

"공부요!"

"맞아요. 그럼 우리 반이 지금부터 복도를 지나갈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조용히 해야 해요!"

"그렇죠. 열심히 공부하고 나면 마지막 장소는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고, 가고 싶어 하는 곳을 갈 거예요. 어딜까요?"

"놀이터요!!!!!!!!!!!" 


약속한 것도 아닌데 매해 같은 대답. 아이들은 돌고래 소리와 함께 폴짝폴짝 뛴다. 그 모습이 귀여워 나는 괜히 으름장을 놓는다.


"과연 우리반은 미션을 끝내고 최종 장소까지 무사히 도달할 수 있을것인가!! 우리 친구들이 얼마나 잘 미션을 완수하나 지켜봐야지~ 복도에선~~? "

"조용히! 사뿐사뿐!"


우렁찬 구호가 교실에 울려퍼진다. 내가 입술에 검지 손가락을 대고 비장한 임무를 수행하는 첩보요원처럼 살금살금 앞서 나가면, 아이들은 너도 나도 첩보요원이 되어 따라나선다. 따라 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검지 손가락도 꼭 입술에 댄 채.


학교 장소를 구경시켜주는 것은 나에게도 꽤 어깨가 으쓱해지는 일이다. 각 장소에 도착해서 내가 "하나, 둘, 셋."을 외치면 아이들은 "안녕하세요."를 외치고 각 실을 들어선다. *각 장소에 도착하면 각 실 선생님께서는 세상 귀엽다는 표정으로 아이들을 맞이해주시는데, 장소를 돌 때마다 생기는 사탕이나 캐러멜은 덤이다. 이럴때면 왠지 모르게 내 어깨도 으쓱거린다. 그렇게 학교를 한 바퀴 쭉- 돌고 운동장으로 나오면 이미 아이들 엉덩이는 시동이 부릉부릉 걸려있다. 미소를 애써 감춘 뒤 안전교육을 하며 한마음을 가라앉혀 준다.


근엄한 목소리로 "선생님을 앞서 가지 않아요."라고 하면 신나서 앞서가던 아이들도 이내 내 옆쪽으로 뱅그르르 돌아온다. 너무 신나는 바람에 운동장 저만치 가 있어도 괜찮다. 꼭 깍쟁이 같은 친구가 "야! 선생님이 앞서 가지 말라잖아!" 라며 나 대신 쫓아가 핀잔을 주며 데려온다.


아이들이야 1초라도 빨리 놀고 싶겠지만 나는 교사인데 어떡하랴. 놀이터에 가서도 이 기구의 이름은 뭔지, 어떻게 해야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지 얘기한다. 그러다 보면 "선생님, 상훈이가 저번에 미끄럼틀 거꾸로 올라갔어요!"라고 이르기도 한다.


"그으래에~? 이상하다~ 우리 상훈이가~? 이제부턴 안전하게 놀 거예요. 그렇죠?"


이름이 호명된 아이는 상기된 얼굴로 잠시 이른 친구를 째려봤다가 세상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결백해보이는 저 반짝이는 눈빛을 보라!


'그래, 오늘은 그럴 리 없다.'


나도 덩달아 비장한 표정으로 눈빛을 주고 받는다.


"얘들아, 지금부터 끝나는 시간까지 안전하고 즐겁게 노세요!"

"와아아아아!!!!!"


뛰어 노는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생각했다. 역시. 난 일 학년 전문교사야. 그러나 언제나 일 학년은 나의 예상을 뒤엎는다.


(2부에 계속)




*꿀tip

-각 실을 돌기 전 교직원 분들에게 동의를 구하는 것은 필수!

-각 실을 돌 때 아이들이 받을 간식꾸러미를 교사가 준비해서 미리 드리면 더 좋아하신다.

*모든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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