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편인 남편이 인생의 동반자인 아내한테 한 말.
결혼 전에는 드라마틱하게 살아왔던 나의 32년.
보험회사는 다니다가 대학에 편입하고, 편입했을 때 시원하게 봤던 면접을 아직도 기억하면 참 재미있다. 대학 졸업 후 갔던 호주워킹홀리데이. 그리고 틈만 나면 다녔던 여행들 까지.
그렇게 내 인생의 조각들을 늘 재미있고 즐겁고 드라마틱했었다. 여행에 관한 에피소드도 얼마나 많은지 친구들한테 얘기하면 며칠을 얘기해도 계속계속 나올 만큼 즐거운 에피소드 한가득. 혼자 다니는 해외여행 따위는 겁내지 않고 배낭 하나 매고 어디든 갈 용기가 있는 나름 신여성이었던 나였다.
하지만 나는 호주워킹데이 가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지극히 평범하게 결혼하고 첫애 임신 당시 입덧이 너무 심해서 직장을 그만두고 10년째 전업주부로 살고 있었다. 내 모든 욕망과 바람은 마음 깊숙하게 처박아 두었었다. 당장 나는 돌봐야 할 아이들이 둘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주말에도 일을 했고 평일에 집에 오면 늘 밤 9시 10시였다. 그런 상황에서 애 둘을 키우는 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주변에 친정도 시댁도 없는 나는 결혼 전의 내 삶이 아닌, 아이 둘 키우는 엄마로 나를 전환시키면서 나도 처음 해보느라 정신없는 엄마로서의 삶을 치열하게 살고 있었고, 아이들이 이제 유치원 다니면서 조금씩 내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기는 시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나에게 폭탄선언을 했다.
당장 나한테 뭐라도 하라면서 아르바이트라도 하라고. 떠밀듯이 말을 했다. 인생의 동반자인 남편이 십 년 동안 혼자서 애 둘을 키워온 아내인 나한테.. 말이다.
물론 전업주부는 워킹맘보다 인생이 편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업주부 나름의 말 못 할 고충도 많이 있고 직업분류에 전업주부라는 것이 있을 만큼 전업주부는 나름의 프라이드를 갖고 살아도 되는, 돈으로 환산하면 월 200만 원 정도 되는 노동의 강도가 있다는 통계도 있을 만큼 하나의 직업이고 힘든 삶이다.
그렇게 10년을 살아온 나한테 전업주부는 한심하다니.....
애 둘은 그냥 컸나...
정말 남의 편이 맞나 보구나..
이런 인간이랑 내가 그동안 살았던 거구나...
처음에는 남편 욕으로 시작했다. 남의 편인, 남편한테 그 얘기를 들으니 더 분노가 치솟았고 이래서 남의 편이구나 하며 그저 그 남자가 꼴도 보기 싫었었다.
하지만 점점 생각할수록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못이 벽면에 깊숙이 박히듯 내 가슴속에 뭔가 쿵 박히는 느낌이었다. 사실 아이들이 조금씩 크면서 나도 뭔가를 해야겠다고 느끼고 있었지만, 나는 내 삶을 다 바쳐 온전히 키워온 내 아이들을 쉽게 놔줄 수가 없었다.
결혼 전에 내 모든 삶은 없어지고, 새로운 "엄마로서의 나"로 변신해서 살아왔던 십 년.
나는 결혼 전의 내가 아닌, 이제는 아이 둘의 엄마로 인생이 바뀌어 버린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한테 이제 와서 다시 예전의 너 인생으로 돌아가라고, 네가 하고 싶었던 꿈을 찾으라고, 남의 편인 남편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남처럼 ,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이제 너는 뭘 할래?라고 진로를 찾아야 하니 하고 싶은 게 뭐가 있는지 물어보는 진로상담선생님처럼, 아이 둘은 제쳐버리고 외딴섬에 나 혼자 있는 것처럼 네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보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남의 편이 나에게 했던 그 말은 그냥 넘겨버릴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내 안에 깊은 곳에서 십 년 동안 웅크리고 살았던 그 여성. 모험을 좋아하고 즐겁게 하루하루를 즐기고 살았지만 32살에서 아이를 낳으면서 시간이 멈춰버린 한 여성을 드디어 찾아낸 것이다.
라고 말이다.
30대를 온전히 아이들에게 바쳤던 내 삶.
이제 40대가 된 나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인지 막막하면서도 아주 희미한 빛줄기가 비추듯 희망과 설렘이란 것을 안고 시작해 보려 한다.
봄이 다가오는 소식을 알리듯 수줍게 터지는 꽃망울처럼 내 가슴속에 꽁꽁 얼어붙은 겨울 속에서 웅크려 있던 그 여성은 이제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려고 하고 있고, 나는 그 여성의 기지개소리가 신기하고 반갑다.
반가워.
다시 만나게 되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