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 대부분 전업주부와 워킹맘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온다.
다양한 이유들이 있지만 대부분 주변에 아이를 봐줄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그리고 아내 직장의 봉급과 복지 등을 냉정하게 따져보았을 때 아내가 전업주부가 되는 것이 가정에 더 이익이 되는 경우 등이다.
나도 이런저런 이유들로 전업주부를 선택했고 아이 둘을 낳아서 독박육아로 키웠다.
아이들이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잘 적응해주고 있어 유치원영어교사를 시작했었고, 오랜만에 하는 일에 정신없었으나 워낙 열심히 하는 성격이라 빠르게 적응하고 아이를 가르치는 일에 재미도 느꼈다. 그렇게 일이 재미있어지는 딱 일 년 뒤에 코로나가 터졌다.
초1 입학식도 하지 못하고 집에서 지내게 된 첫째와 유치원 입학식도 하지 못하고 집에 있어야 하는 8살과 5살 아이 둘을 키우는 전업주부로 나는 다시 돌아왔다.
그렇게 10년 동안 아이들을 온전히 내 손으로 키우다 보니 워킹맘으로 돌아가기는 정말 어려웠다.
내 삶은 결혼 전 나만 신경 쓰면 되는 나만의 삶이 아니라 늘 아이 둘을 신경 써야 하는 엄마의 삶이 되어 버린 탓이었다. 한두 시간 외출해도 계속 전화해서 엄마를 찾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과감히 나를 버렸다.
나의 필요나 욕구를 채우기 전에
아이 둘을 신경 쓰는 것이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그래서 나는
엄마이기를 선택했다.
하지만 세상에 태어나 처음 해보는 엄마 노릇은 아이들이 커갈수록 더욱 힘들어졌다. 아이들은 나를 찾았으나 엄마의 의지가 아닌 본인들의 주장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나와의 의견충돌을 잦아지고 아이들과의 싸움에서 나는 지쳐갔으나 아이들은 여전히 엄마를 필요로 했으며 맹목적으로 엄마로서의 나를 사랑해 주었다.
온전히 아이들만 바라봐야 하는 삶이 지치고 힘들어 아이들과 거리를 두려 했으나 그럴수록 나도 아이들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시간의 반복이었다. 무슨 일이든 직접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내 성격으로 아이들을 키웠으니 아이들도 이제는 할머니 댁에서 잠도 자려고 하지 않는다.
내가 잠깐 한 시간씩 운동한다고 밖에 나가도 아이들은 계속 나한테 전화를 한다. 뭐 하나도 내가 없으면 안 되는 건지 화를 내다가도 내 탓이려니 하다가도.. 만감이 교차하게 된다.
내가 사는 곳은 커다란 아파트단지이고 단지 내 초등학교가 있다. 그래서 아이들이 등하교하는 것도 어렵지 않고 단지에서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학원들이 있어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혼자 다닌다. 동네도 위험하지 않고 구석진 곳도 없는 편이다. 남편 말처럼 편하게 애들한테 전화기 하나씩 쥐어 주고, 왔다 갔다 하라고 하고 나는 내 일을 한다면 내가 과연 편할까? 내가 언제까지 아이들을 계속적으로 통제하고 봐줄 수는 없는 노릇인데 과연 그게 언제까지일까... 내가 밖에 있는데 혹 아이들한테 무슨 일이 생긴다고 하면 어떨까? 이런 마음으로 밖에서 일을 제대로 할 수는 있을까?
아이를 전적으로 엄마가 키우는 아이와 누군가에게 맡겨진 아이는 성장과정이 다르다고 흔히 말을 한다. 아이들 친구들 중에 부모가 맞벌이로 저녁까지 혼자 집에 있는 친구들도 종종 있다. 핸드폰 보면서 먹고 싶은 거 편의점에서 사 먹으며 저녁까지 시간을 보낸다. 과연 그 아이들이 모두 나쁘게 자라게 되는 것일까? 당연히 아니겠지만 왜 나는 아이들을 쉽게 손에서 놓지 못하는 것일까?
이제는 아이들의 엄마가 아닌
나 자신만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내 자리는 정말 어디일까?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은 온 우주가 도와줘야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만큼 한 생명이 태어나고 성장하기까지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일 것이다. 주변의 도움 하나 없이 온전히 아이를 키우는 것이 엄마인 나도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일이라 정말 어렵다.
나중에 아이들한테 엄마가 이만큼 노력해서 키웠으니 너도 나한테 이만큼 해라 라는 끔찍한 말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고 키워서 남 줘야 하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다. 나는 아이들이 원해서 자발적으로 태어난 것이 아닌 만큼 엄마로서의 책임감을 다 하고 싶을 뿐이다. 처음부터 내가 워킹맘이었다면 어쩌면 이 모든 고민들은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에 나는 아이들과 모든 시간을 함께 했던 전업맘으로 나의 생활에서 조금씩 거리를 넓혀가는 방법을 체득하고 있다. 아이들이 금수저를 가지고 태어나게 할 수는 없었지만 누구보다 너희들을 사랑하고 너희들이 가는 길에 마주쳐야 하는 가시밭은 내가 먼저 다 밟고 지나가주고 싶은 심정으로 , 네발 자전거를 타는 아이가 조만간 두 발 자전거를 타고 멀리 달려볼 수 있는 날을 기다리는 것처럼 말이다.
아이들이 나를 필요로 할 때 내 몸이 너무 힘들고 지쳐있어도, 아이들 때문에 웃고 행복해하는 시간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워킹맘이 되는 것을 조금 더 미뤄본다. 이제 4학년인 첫째는 친구들과 밖에서 시간도 보내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이 줄었다. 이제 초1인 둘째가 몇 년만 지나면 나도 지금처럼 내 시간을 다 쏟아 아이들을 '돌봐야'하는 일에서는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아이들 곁에서 완전히 벗어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바짝 붙어서 모든 것을 해주는 것이 아닌 한 발자국 물러서서 편한 친구 같은 엄마가 되어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도 돌봐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기에 나는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아 가고 있고 그래서 나는 오늘도 전업주부이다. 하지만 워킹맘이 되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나는 알고 있다.
나 자신을 사랑하고 일과 가정에 균형을 맞출 줄 아는 멋진 엄마가, 아이들도 멋지게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p.s 이렇게 힘든 육아를 견디고 나를 키워준 친정 부모님께 정말 감사합니다. 너무 늦었지만 정말 감사하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