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평전을 쓰며 알게된 것들

by 주연

“엄마, 아버지 나온 대학이 어디라고?”

“그건 모르는데…. 아버지 주무시니까 일어나시면 물어볼게.”

“아냐. 그냥 알아서 할게.”

청상과부로 살아온 할머니 봉양하느라 공고 졸업 후 생활전선에 뛰어든 아버지. 예순이 넘어서야 만학도의 꿈을 이뤘는데 다니신 학교 이름이 가물가물하다. 아버지 평전을 쓰려고 엄마와 전화 인터뷰만 몇 번 하다 결국 시간에 쫓겨 급하게 자판을 두드린다. 따르르르릉. 정적 속에 전화벨이 울린다. 발신자, ‘아버지.’ 몇 번 심호흡하고 나서 전화를 받는다.

“뭐가 필요하다고?”

“아버지 다닌 대학이랑 전공이 뭐죠?”

“한국 폴리텍대학 전기 공학. 또 모르는 것 있으면 물어봐.”

아버지 목소리에 은근 기대감이 묻었다. 귀찮아할 거라 여긴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이번 글 공동체 삼다의 과제는 ‘부모님 평전’ 쓰기다. 한 인생의 장구한 서사를 한두 장의 짧은 글로 남긴다는 것이 부담스러운 데다 애초 엄마에 대해 쓰려고 했는데 엄마 성화에 못 이겨 아버지로 바꾼 것도 못마땅했다. 아버지는 청력이 약해져서 보청기를 끼고도 대화가 힘들고 무엇보다 나랑 관계가 데면데면한 까닭이다. 아버지께 들은 바를 핸드폰으로 열심히 전하는 엄마. 두 분은 어떤 표정과 몸짓으로 이야기를 꺼내고 고르셨을까. 엄마와 통화하며 휘갈겨 쓴 메모지가 책상 위에 너저분하다. 평전에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했지. 아버지 삶에서 어떤 부분을 조명해야 할까? 우선 엄마가 달뜬 목소리로 전한 내용부터 옮긴다.

“너희 아버지, 우리 식구 먹여 살리느라 정말 고생하셨어….”

그래, 아내가 인정해 주는 게 진짜지. 아버지는 일곱 식구 건사하며 당신을 위해서는 한 달에 한 번 이발비만 쓰셨다. 아버지의 근검절약이 내게 전수되었구나. 그러다 이번에 들은 아버지 탈모 이야기.

“너희 4남매 중고등학교 등록금 마련하느라 힘들었을 때 그렇게 된 거야. 얼마나 안쓰럽던지….”

‘할머니로부터 받은 X염색체의 대머리 유전자가 때가 되어 발현된 거 아냐?’


내 마음의 소리. 막내 빼고 중학생 한 명, 고등학생 두 명 등록금을 동시에 내려면 등골이 휠만하지. 반에서 등록금 미납자를 일으켜 세우던 시절, 불안에 떨었던 기억도 난다. 부모님은 스트레스로 등교하기 싫어했던 내 등록금을 먼저 내주시곤 했다.

우리 아버지, 어린 시절 첩만 챙기는 친가에서 할머니와 야반도주하여 도착한 외가에서 눈칫밥 많이 드셨네. 까다로운 할머니와 살면서 살인적인 잔소리에 대항, 방문 잠그고 단식을 시작한 지 사흘 만에 할머니가 항복했다지. 다혈질 탓에 해병대에서 탈영병 될 뻔한 이야기. 홀어머니 잘 모실 착한 사람이 이상형이던 아버지가 어머니를 선택한 이야기. 혼자 있는 할머니 불쌍하다며 신혼 때도 할머니 방에 있었다는 아버지. 부모 앞에서 자기 자식 예뻐하는 게 흠이라 여겼는지 아버지가 안아준 기억은 고사하고 눈 맞추며 웃어준 기억도 없다. 마음이 답답해서 무엇인가 쓰거나 그릴 때, “넌 왜 쓸데없는 짓만 하니?”라고 핀잔하던 아버지. 그토록 듣고 싶은 칭찬, 격려는 내 삶에서 희망 사항일 뿐이었다. 이런 이야길 쓰자니 불안했던 어린 시절과 원만하지 못한 내 삶이 연결되어 짜증이 난다.


아버지가 차도 없이 송파에서 부천까지 편도 2시간을 출근해 이 공장, 저 공장을 다니며 전기 관리할 때다. 무거운 공구 가방을 들고 땡볕을 가리고자 머리숱이 거의 없는 두피 위에 얇은 손수건 한 장 얹은 모습을 서늘하게 기억한다. 초등학생 땐가 들어보려고 낑낑댔지만 꿈쩍하지 않던 공구 가방. 내 나이 서른 후반에 그 무게를 체험한 적이 있다. 프뢰벨 놀이 교사 시절 한 달에 한 주간은 묵직한 활동지를 들고 다녔는데 더위에 휘청이며 걷던 내게서 아버지 모습을 봤다. 아버지가 통과한 30대, 40대, 50대는 어땠을까? 가장으로 지내며 자신의 존재는 무심한 세월의 바람에 흩어지고 파도에 쓸려갔는지도 모르겠다.


대화할 때 무조건 ‘네’라는 수긍만을 원하고 조심스럽게나마 의견을 꺼내면 고집 피운다고 불같이 화내던 아버지. 긴장 속에 산 딸들은 어느 날인가 엄마에게 권했다.

“그렇게 당하지만 말고 차라리 아버지랑 이혼해요.”

“너희들에게 상처받은 적 있어도 아버지에겐 없다.”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이었다. 엄마는 이 세상에서 독불장군 아버지를 알아준 유일한 사람이다. 타오르는 장작이 재가 되기까지 기다린 사람에게만 오롯이 보이는 진심. 간암으로 정기 검사를 받는 81세 엄마는 오늘도 당뇨와 고혈압이 있는 87세 아버지의 까다로움을 달래가며 식사를 챙기신다. 자녀에게 다정한 아버지는 아니었지만, 아내에겐 인정받은, 가장으로서 최선을 다한 아버지는 성공한 삶을 사셨다는 말로 평전을 마쳤다.


젊은 시절 별명이 호랑이였고 지금은 이빨 빠진 호랑이라 자칭하는 아버지. 나는 이번 평전을 쓰면서 아버지 인생을 몇 발짝 떨어져 관조하게 되었다. 아버지와 나의 얼기설기 엮인 애증의 연결고리가 끊어졌다랄까. 적어도 시작은 됐다. 아버지와 나를 분리하고 그의 삶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는 용기도 조금은 생겼다.

“부모님은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그들을 영화롭게 바라보십시오.”

20대 어느 기도 모임에서 들은, 아버지를 향한 심정이 얼음장 같아서 요원하기만 했던 그 말. 내 나이 50이 되어서야 그의 인생을 영화롭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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