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
“땅을 파면 10원 한 장 나오냐. 애비는 밖에서 고생고생하는데….”
콩나물 한 봉지 살 때도 여지없이 쏟아지던 할머니의 잔소리. 엄마는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두 살 터울 4남매를 먹이기 위해 다양한 간식을 만들어 주셨다. 멸치 육수에 물 묻은 손으로 밀가루 반죽 똑똑 떼어 넣은 수제비, 얇게 민 밀가루 반죽 착착 접고 가늘게 썰어 끓인 칼국수, 그리고 이 글의 주인공 부침개.
어느 날 엄마는 동네에서 홍보한 은색 큰 찜기를 사 오셨다. 그때부터 우리 집 간식의 대변혁이 시작되었다. 둥근 사발(혹은 반죽 그릇)에 달걀을 풀고 거품기로 힘껏 저어 뽀얀 연노랑 구름을 가득 채웠다. 구름 속에 버터, 설탕, 밀가루를 섞어 찜기에 올리면 진한 바닐라 향을 내며 4남매의 마음과 함께 부풀어 오르는 카스텔라가 드디어 완성! 우리는 옹기종기 모여 앉아 호호 불며 먹었다.
경쟁하듯 그릇을 비우는 우리를 위해 엄마는 책을 보고 도넛을 시도하셨다. 얇고 길쭉하게 밀어 적당한 크기로 자른 밀가루 반죽을 동그랗게 연결했다. 막내를 제외하고 할머니, 엄마, 언니, 나, 여동생이 둘러앉은 검은 정사각형 상 위에 말없이 쌓이는 도넛 반죽. 중구난방 수제 도넛 반죽이 팔팔 끓는 기름에 들어가 먹음직스러운 연갈색 옷을 입고 나오면 엄마는 위험하다고 근처에도 못 오게 했다. 우리는 멀찌감치 앉아 밀가루 반죽 튀기는 소리를 들으며 고소한 냄새에 침을 꼴깍거렸다. 한번은 엄마의 실수로 도넛 반죽에 베이킹파우더가 과하게 들어갔다. 오도독 소리 나던 딱따기 도넛이 요술처럼 한없이 부풀어 말랑말랑 폭신폭신 공갈 도넛으로 변신했다. 그 시절 종이라도 씹어먹으려 한 우리에게 무엇인들 맛있지 않으랴!
엄마표 간식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김치나 제철 채소에 가끔 오징어를 넣어 바삭하게 부친 부침개다. 그중에서도 김치부침개는 어린 시절을 보낸 개봉아파트 13동 107호로 나를 소환한다. 하얀 밀가루 푼 물과 김치가 섞이며 만들어진 진한 주황색 반죽. 세월의 흔적을 지닌 뜨겁게 달궈진 프라이팬에 부으면 어디선가 소낙비가 내렸다. ‘치지직’ 기름과 물이 만나 들리는 소리. 나는 부침개가 식기도 전에 급히 입에 넣느라 종종 입안을 데곤 했다.
한창 클 나이 4남매를 위해 항상 부엌에서 무언가를 만들던 젊은 엄마를 떠올려본다. 외할아버지는 8살, 외할머니는 10살에 여인 엄마는, 딸만 셋을 낳고 동네에서도 유명한 시집살이를 하며 ‘넷째가 아들이 아니면 이혼이라도 해야 하나’며 고민했다. 청상과부로 아들 하나만 바라보고 산 친할머니. 그런 할머니가 안쓰러워 항상 할머니 편이었던 아버지. 2살 터울 4남매 건사하느라 화장할 겨를도 없이 바쁘게 사느라 빼빼했던 엄마. 나는 쉴 새 없이 고약한 잔소리를 퍼붓던 할머니, 엄하고 다혈질이었던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면 늘 불안했는데 엄마는 당시 어땠을까?
문득 엄마 마음이 궁금해 전화기를 든다.
“엄마, 우리 어렸을 때 날마다 간식 만드느라 바빴잖아. 그때 엄마도 힘들었지?”
“아니. 힘들게 뭐가 있어. 간식을 살 형편은 아니니까 대신 열심히 만들면 너희가 맛있게 먹어서 재밌었지.”
아…. 예상치 못한 대답.
“엄마, 긍정적이구나!”
“사람들이 그러더라. 엄마가 긍정적이라고.”
통화할 적마다 여기저기 아픈 아버지 챙기느라 힘들다고 하신 엄마 목소리가 한결 밝다. 숱 많은 하얀 파마머리에 반달눈, 입꼬리가 올라간 엄마 얼굴이 떠오른다. 내 얼굴에도 환한 미소의 나비 한 마리가 내려앉는다.
어린 내 눈에 까다로운 시어머니, 불같은 남편과 사는 엄마가 불쌍했는데 정작 엄마는 그때를 재밌었다고 기억한다. 그랬구나…. 엄마가 괜찮다면 나도 괜찮다. 난 엄마 딸이니까 내 안에도 엄마의 밝음이 있겠지. 어두웠던 유년 시절을 비취는 밝고 포근한 햇살. 나의 긍정 인자를 또렷이 확인하는 것 같아 내심 한쪽이 든든하다.
요즘도 비가 오거나 입맛이 없을 때면 엄마표 김치부침개가 그립다. 오늘부터 나의 최애 음식, 김치부침개의 별명은 ‘긍정의 부침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