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를 용서하며, 나를 이해하게 되다

by 주연

모든 인생에는 굽이굽이 사연이 있다. 그런 삶 앞에서 내가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도, 알고 보면 또 다른 상처의 피해자였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적이 있는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럼에도 잠시 눈을 감고, 내 삶을 나답게 살기 어려웠던 이유를 떠올리면 문득 스치는 얼굴 하나가 있다.

나는 4남매 중에서도 유난히 우울한 기질을 지녔고, 세상에 별다른 낙이 없다고 믿으며 살았다. 먹고 싶고, 갖고 싶고, 하고 싶은 것도 거의 없었다. 어느 날 언니는 고등학생인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넌 절대 철학과는 가지 마. 자살할 것 같아….”

집안 형편이 여유있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비관적이어야 할 이유도 없었다. 같은 환경에서 자란 형제들 중에서도 초등학생 때부터 신경성 빈혈과 두통으로 병원을 드나든 건 나뿐이었다.


용돈도 없던 학생 시절, 가끔 돈이 생기면 동네 가게에 갔다. 할머니가 좋아하던 땅콩맛 알사탕과 빠다 코코넛 과자를 사서 드리면, 할머니는 꼭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이구, 이렇게 고마울 데가….”

그 감동스러운 순간, 문득 스친 생각.
‘나는 할머니를 사랑하지 않는다.’

나의 유년 시절, 우리는 방 두 개뿐인 작은 아파트에 살았다. 아이들 중 한 명은 반드시 할머니와 함께 자야 했는데, 언니는 잠들 때 혹여 몸이 닿기라도 할까 봐 할머니가 꼬집는다고 싫어했다. 그래서 아홉 살까지는 내가 할머니와 함께 잤다.

할머니는 자장가를 불러주지 않았다. 대신 내가 잠들 때까지 날마다 한숨과 한탄이 섞인 ‘시집살이 이야기’를 반복했다.


할머니는 양반가에서 태어났지만 여식에게는 글을 가르치지 않는 풍토 속에 자랐다. 영민했던 할머니는 오빠들이 배우는 글을 어깨너머로 익혔다. 얼굴도 모르는 사내와 열일곱에 혼례했고, 그 이후 긴 시집살이의 고난이 시작됐다. 첩이었던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하인 방에서 재우며 일을 시키고 폭력을 행사했다. 그 시절을 견디다 못한 첫째 며느리는 결국 생을 내려놓았다.

할머니는 결국 아들만 데리고 집을 나와 친정에 몸을 의탁했다. 삯바느질로 아버지를 키우며 청상과부로 살아낸 세월은 길고 혹독했다. 그런데 며느리를 본 뒤엔 지독한 위장병을 앓기 시작했다. 첫째 손녀는 무조건 예뻐했고, 둘째는 아들이라고 굳게 믿었는데 여자인 내가 태어나자 방구석에 눕혀두고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걱정이 일상인 할머니는 생신 한 달 전부터 찾아올 손님 걱정을 했다. 그것은 고스란히 엄마의 짐이 되었고, 그 걱정이 잔소리가 되어 우리에게 흘러들었다.

“무슨 잔치 설거지를 하냐? 왜 이렇게 오래 하냐? 물값 많이 나와.”
“애비는 밖에서 고생고생 돈 버는데, 너희는 팔자 좋게 텔레비만 보냐?”

나는 할머니 앞에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평생 바라던 피아노가 집에 있어도 ‘시끄럽다’며 금지했다. 할머니의 귀가 들리지 않게 된 후에야 조금씩 피아노 앞에 앉을 수 있었다. 엄마 없이 할머니와 함께 있는 집은 더 이상 내게 안식처가 아니었다.


세월이 흘러 40년이 지난 어느 날, 잊고 지내던 그 시절의 내가 문득 떠올랐다. 아홉 살까지 매일 반복해서 들었던 그 이야기들은 내 무의식 속에 깊이 새겨졌을 것이다. 쇠냄새 섞인 어둡고 눅눅한 공기가 나를 덮치고, 잠드는 것이 두려워 자주 가위에 눌리곤 했던 이유도 어쩌면 그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밝아지고 싶어 몸부림치며 살았지만, 내 안의 빈약한 자원은 늘 한순간에 무너져내리곤 했다.

열일곱에 시집와 아흔두 살까지 살았던 할머니.
어쩌면 그녀는 평생을 열일곱의 불안한 정서로 살았고, 그 불안함이 주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어서 밤마다 어린 손녀에게 신세 한탄을 할 만큼 외로웠는지도 모른다.

이 글을 쓰며,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이후 처음으로 할머니를 위해 가슴 먹먹한 눈물을 흘렸다.

나는 한 인간으로서, 한 여성으로서 그녀의 아픔을 이해한다.

그녀로 인해 나에게 스며든 고통과 불안을 이제는 수용한다.

그리고 나의 할머니, 임 간난을 진심으로 용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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