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활동지원사 교육을 받으며
실업급여를 받는 내내 배움의 열정을 불태우다 마지막 주에 장애인활동지원사 교육을 신청했다. 밭은 숨이었지만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4일 동안 창동역 1번 출구에 있는 새보람 교육원에 9시까지 등원했다.
하루 내리 8시간. 학창 시절이 떠오르는 힘든 스케줄이다.
장애인 보조기구 설명을 듣는데 10년 전 프뢰벨 수업했던 원이가 떠올랐다.
수업 배정을 받았을 때, 영아 언어프로그램을 신청하기엔 개월수가 많아 혹시 장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OT를 갔었다.
얼굴이 하얗고 눈이 큰 잘생긴 원이는 이마, 목, 가슴, 허리까지 온몸을 보조기구 벨트에 의지한 채 시트에 앉아 있었다. 자모와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원이는 불편한 듯 얼굴을 찡그리며 소리를 질렀다.
원이 어머니는 아들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어 수업을 신청했지만, 나는 수업이 가능할지 염려 됐다. 말하기 프로그램 6개월 동안 나는 원이와 상호작용 없이 혼자서 20분 간 노래하고 말하며 활동지를 만들었다.
"원이가 프뢰벨 선생님 오신다고 하면 좋아해요."
한 달쯤 지났을까.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나를 향해 자모가 웃으며 인사했다.
원이는 몸을 흔들며 소리를 냈다.
'아, 지금 좋아한다는 표현을 한 거구나...'
눈을 마주치며 하는, 상호작용이 중요한 수업이지만 일방통행 하느라 지쳐있던 참이었다. 사실 원이가 웃는지도 몰랐다. 그날 이후 나는 원이와 마음으로 대화하며 힘없이 늘어져 있는 원이의 손과 발을 더 많이 만져주고 눈을 맞추었다.
6개월이 지나 마지막 수업 날, 원이 어머니는 또 다른 교재를 사고 다시 수업을 신청했다. 그렇게 원이와 새로운 6개월이 시작됐다.
부담보다는 '원이라는 친구를 만나러 간다'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원이는 소리를 내고 미세하게 몸을 흔들며 나와 이야기했다.
사지를 쓸 수 없는 원이를 휠체어에 태우고 내리는 것은 쉽지 않다. 마음으로 체력으로 엄마가 감당해야 할 것이 많을 텐데도 원이 어머니는 해를 바라보는 해바라기처럼 느긋하고 편안했다. 나는 수업이 끝날 때마다 진심을 담아 인사했다.
화요일 아침, 수강생이 꽉 찬 교실 뒤에서 두 번째 자리에 앉았다. 일반적으로 강사는 서서 인사를 하는데 그날은 달랐다. 강사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제 다리가 양쪽이 의족이라 오래 서 있기가 어려워요.
양해 바랍니다. 오늘 강의는 앉아서 진행할게요."
강사의 첫 멘트였다.
환한 표정에 긴 머리, 매력적인 중저음의 40대 후반쯤 되는 여자 강사님. 그녀는 대학 입학을 앞두고 사고로 두 다리를 잃었다. 다행히 무릎 위에 신경이 조금 남아 있어 오랜 재활 끝에 지금은 의족을 신고 다닐 수 있다고 했다.
걸을 수 없을 거라는 의사의 말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재활했고, 당당히 대학생이 되었다. 장애인 활동지원사의 도움으로 화장실을 이용하고 강의실을 이동할 수 있었다.
지금은 전동휠체어를 타고 눈비를 가리지 않고 출근해 하루 8시간 강의를 한다. 집에 돌아오면 의족을 벗고 쓰러지듯 쉰다고 했다. 의족의 비용과 반복되는 통증, 욕창까지 감당하며 살아가는 삶이었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일상을 이야기했다.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25년 동안 장애인과 함께 일해온 삶.
모두가 '불가능'이라 낙인찍었던 그녀의 삶은 지금도 현재 진행 중이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강의 내내 목이 메었다.
나는 어떤 삶을 살아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했다. 생기 없이 살아온 내 인생이 부끄럽기도 했고, 한편으로 인생에는 누구나 자기만의 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삶을 조용히 바라보는 시간이었다.
쉬는 시간, 강사님에게 인사를 했다. 가까이서 마주한 얼굴은 인생의 굴곡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고요했다. 간식으로 가지고 다니는 밤을 건네며 내 책을 보내고 싶다고 주소를 물었다. 짧은 대화 속에서 또 눈물이 났다.
강사님은 자신이 그룹 상담을 많이 해서 그런지, 강의하다 보면 우는 수강생들을 자주 만난다고 했다. 단순한 말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원이는 내가 장애라는 것을 가까이에서 마주하게 된 첫 아이였다.
처음엔 당황했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강사님은 그다음에 만난 사람이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누군가의 잘못으로 갖게 된 장애.
그럼에도 자신의 모습을 수용하고 조정하며 살아가는 한 사람.
원이의 선택이 아니었다.
강사님의 선택이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선택한 삶도 아니었다.
나는 중년의 나이에 이제서 나는 나를 알아가고 있다. 책임이라는 파도에 밀려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잘하는 지도 몰랐다. 이제 궁리 중이다.
나에겐 어디든 다닐 수 있는 다리가 있고, 읽고 쓸 수 있다. 평생을 교사로 살면서 목소리가 좋다, 이야기를 잘한다, 그림 잘 그린다는 말을 들었다. 그림을 곁들인 손 편지도 잘 쓴다. 피아노를 칠 줄 알고 베이킹과 요리도 즐겨했다.
남은 인생 무엇을 하며 살지 아직 모르겠지만, 나는 오늘도 읽고 쓰며 나를 세워가는 중이다.
기쁨도 고통도 타인과 온전히 나눌 수 없는 것.
누가 더 힘든지를 가벼운 말로 비교할 수는 없다.
나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본다.
그들에게 내가 알 수 없는 희로애락이 있겠지.
'틀림이 아닌 서로 다름'을 인정하며 함께 나누고 채워며 살고 싶다.
우연히 듣게 된 '장애인 활동지원사' 교육이 내게 세상을 바라보는, 조금 더 따뜻한 시선을 남겼다.
오후 6시, 교육을 마치고 나오니 겨울 저녁 공기가 차다.
내 안에 베어리프리를 조금은 이룬 것 같아 발걸음이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