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말하지 못하는 아이를 보며

by 주연

낮잠 시간만 되면 스스르 잠이 들던 하은이가 오늘은 달랐다. 제 이불 가운데를 중심 삼아 뱅글뱅글 돌더니, 360도로 몸을 회전하며 옆자리 친구를 발로 건드렸다.


왜이러지. 평소와는 다른데.


그제야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요즘 하은이가 등원하자마자 애착 베개를 가방에 넣어두었는데, 신나게 놀 때는 찾지 않다가 잠잘 때가 되니 허전하고 불안했던 것이다. 떼를 쓰지도 않고 말로 설명하지도 못한 채, 제 몸으로 무엇인가를 찾아 헤매고 있었던 셈이다.


옆에 앉아 아이를 재우는 동료교사에게 문득 떠오른 생각을 말했다.


"세상의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네요. 하은이가 말은 못하고 이리 몸부림 치는 것에는 분명한 까닭이 있는 것처럼요. 방황하는 사람들도 안정되지 못한 이유가 다 있었던 거예요."


고교시절 나는 선생님들의 말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기울였다. 내 생존의 이유가 그 안에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대부분은 시험 얼마 남았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흘려보낸 줄 알았던 말들 중 몇 마디가 35년이 지난 오늘, 낛싯밥을 문 듯 불쑥 떠오른다.


미술 선생님은 말했다.

"색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


화학 선생님은 말했다

"원소를 알면 세상을 화학식으로 다 설명할 수 있지."


나는 오늘 생각했다.

'사람의 행동을 보니 세상 일이 이해되네.'


소크라스 때부터 사람을 작은 우주라고 인식했다. 앏은 피부 아래 흐르고 있는 혈액, 백혈구와 적혈구만 생각해도 몸이 어떻게 스스로를 돕는지 신비롭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마음은 어떻겠는가.


20개월 하은이는 원에 처음 왔을 때 교실에 앉아 있는 것도 힘들어했다. 어떤 교구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숨이 막히는 듯 교실 밖으로 나가 빠른 걸음으로 뛰어다니며 소리를 내야 생기가 돌았다.


입소 3개월 차인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교실을 다니다 관심 있는 놀잇감을 발견하면 그 자리에 앉아 보고 만지며 탐색하다가 놀이를 시작한다. 돋보기를 들고 교실을 살피고, 블록을 쌓고 블록과 블록을 연결한다. 잘되지 않을 때는 교사에게 간절한 눈빛으로 도움을 요청한다. 문제가 해결되면 가운데로 모아져 있던 예쁜 눈썹이 펴지고, 작은 눈이 반달처엄 휘어지며 활짝 웃는다.


음악을 좋아하는 하은이는 노랫소리가 들리면 하던 것을 모두 내려놓고 엉덩이춤부터 춘다. 박자에 맞춰 양 팔을 흔든다. 얼마전에는 느리면서 아름다운 전주를 듣다가 손목을 가볍게 튕기며 리듬을 맞추었다. 음악지능과 신체지능이 발달한 아이인 줄은 알았지만, 아직 하은이이에게 엄마, 아빠라는 말도 듣지 못한 내게 그 장면은 놀라웠다. 스킵하듯 뛰면서도 신체 균형을 잘 유지하는 모습을 보며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보석이 빛나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아이들은 하얀 도화지 같다.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오염없이 순수한 빛깔을 내는 존재. 외양만큼이나 다양한 아이들은 천둥벌거숭이가 아니라, 세상을 처음 만나며 말이 아닌 온 몸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존재다.


성인이라고 다르겠는가.


그림이든 글이든 끼적이는 것을 좋아하던 나는 삶이 막막할 때마다 그리고, 읽고, 썼다. 그저 낙서처럼, 내 마음 가는대로. 정리되지 않은 감각이 꿈틀거릴 때 토해내듯 쏟아 놓았던 것이 지금의 내게는 편안한 친구로 남아 있다. 선택의 여지 없는 벼랑끝에서 만나 그 시간을 함께 겪었기 때문이리라.


"난 그림은 못그려요."

"글쓰기는 재주가 없어요."


물론 재능이 두드러진 사람은 있다. 그러나 천재와 영재만의 전유물이 아닐 텐데, 자신의 한계를 정하고 포기하면 그 결과물과 관계 없이 얻을 수 있는 기쁨과 위로도 누릴 수 없다.


오늘도 18개월부터 24개월 사이의 아기들을 돌보며 그 인생의 한 단락을 마주한다. 작은 손으로 자신이 신뢰하는 교사의 손을 잡아끌며 무언의 말을 하는 아이. 다 표현하지 못한 그 마음이 투명한 수채화 물감처럼 내게 스며든다. 나는 머루같은 아이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여유 있는 미소를 짓는다. 내 아이 키울 때 불안한 엄마의 것이 아닌, 딸의 딸을 바라보는 눈빛으로 말한다.


걱정하지마. 괜찮아.


앞으로 성장하고 싶은 것이 많은 나를 향해서도 몇 마디 말이 떠오른다.


허투루 나이만 먹은 건 아니었구나.

살아온 시간은 나도 모르는 나를 배우는 시간이었어.

좀 더딘 것 같지만, 이 모습도 저 모습도 나라면 판단하고 평가하지 말고 그저 수용하자.


비로소 3년 전 알게 된 김주환 교수의 책 『내면소통』의 '자기 수용'을 조금씩 체화하는 중이다. 내가 나를 아는 만큼, 수용한 만큼 누군가의 마음을 볼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사는 게 전보다 편안해졌다.


이렇게 파릇파릇 살아 숨쉬며 자라는 아이들을 만나는 것은 내 인생의 덤이다. 나를 온전히 만나게 하는 기회다. 그로 인해 누군가가 나를 이해해 주기 바라는 마음은 작아지고, 내가 나를 이해하는 마음은 조금씩 커지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엎치락뒤치락하지만, 그래도 오늘 얻게 된 이 작은 앎을 내 마음 상자에 소중히 담아 둔다. 기쁨도 절망도 외부로부터만 오는 것이 아니라, 경험과 사유를 통해 내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다행이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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