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에 관하여

빛이 빛되게 하는 그림자.

by 주연

일장일단, 빛과 어둠, 위와 아래, 들숨과 날숨, 남과 여, 생과 사.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다. 차라리 음지가 없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을지라도 음지 없이는 양지도 없다. 부족함 없는 삶, 충분히 빛을 받고 살아 보송보송한 내면. 하늘하늘한 커튼이 창가에서 가볍게 춤을 추는, 세상 걱정 없는 아침을 맞이하고 싶은 환상. 그래, 그건 내게 환상이었다. 하루하루의 삶은 숙명처럼 찾아왔고 나는 그저 공장의 레일을 따라 움직이는 부품 같았다. 관심 있는 것도 내게 관심 있는 존재도 없이. 문득 내면 깊은 곳에서 들리는 간절한 외침, '나는 살고 싶다'는 가늘고 질긴 외마디가 내 혈관을 타고 심장을 지나 온몸에 퍼질 때는 전기 맞은 나무처럼 무중력 상태가 되어 현실감을 잃기도 했다.


어려서 내가 탐독하던 책의 주인공들은 빨간 머리 앤, 제인 에어, 알프스 소녀 하이디, 키다리 아저씨의 주디. 하나같이 고아에 삶이 곧 결핍인 아이들. 충분히 매력 있어서 마음에 두었겠지만 인지상정 뭐 이런 감정도 어느 정도 동했으리라.

항상 부족한 음식에 배 곪아본 아이는 배불리 먹는 것,

억압받고 자란 아이는 자유가 소원이고 멸시받고 자란 아이는 인정에 대한 목마름으로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는다.

결핍이 열등감으로 자리 잡을 때 삶은 균형을 잃는다. 남을 밟은 결과 다다른,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 한 장면인 아무것도 없는 애벌레 기둥 꼭대기처럼.


벗어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던 시절 내게 작은 도피처는 베란다 구석에 있는 낡은 소파 위였다. 몸을 움츠리고 친구에게 빌린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를 읽다가 친구 포루투카를 잃은 제제와 함께 숨 죽이며 울던 기억.

산다는 것이 버거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부푼 풍선 같은 공허감, 존재의 이유를 알 수 없는 막연한 호흡. 먹고 자는 것 노는 것에도 흥미가 없던 내게 별명이 생겼다. 반 아이는 졸업 사진 찍을 때 사진기 앞에 선 내 표정을 보고 '심난한 여자', 뭘 말해도 안 웃어 중국 황태자비 병명 '안면 근육증'이라 불렀다.

답답할 때마다 무지 연습장 뒷장부터 새끼손톱 사분의 일만 한 크기로 치밀어 오르는 단어를 쏟아내곤 했다. 수업을 듣다가도 쉬는 시간에도 그 가벼운 종이 한 장이 내게 친구가 되어주었다. 나를 운신하기 위해 쓰고 그리며 끼적이던 연습장은 살기 위해 몸부림친 나의 흔적으로 반 이상이 채워졌다.

선생님 모습에 마음이 동할 땐 수업하다 말고 컴퓨터용 사인펜을 꺼내 그 모습을 그렸다. 180cm의 훤칠한 키, 검정 네모 뿔테 안경, 샤프한 모습에 비해 굵은 음성, 여자반에 들어와 절대 눈 마주치지 않는 사연 있는 28세 세계사 선생님. 유일한 총각 선생님을 여학생들이 선망하며 두 눈에서 하트 뿅뿅할 때 나는 그저 선생님의 눈을 관찰하듯 바라봤다. 선생님은 기강을 잡으려는 듯 첫 시간부터 대답 못할 질문을 해대며 아이들을 앞줄부터 일으켜 세웠다. 나는 옆반 친구가 알려준 게 있어 고개를 들고 선생님을 주시했는데 왠지 질문은 내 앞줄에서 멈추고 그 옆 아이로 넘어가며 번번이 나를 비껴갔다. 내가 무섭게 노려봤나?

암튼 "시험 00 남았다"가 선생님들의 주 메시지였던 고교시절, 시험과 관계 없는 이야기로 더 넓은 세상을 만날 수 있었던 세계사 시간은 내게 오아시스처럼 달았다. 창조와 진화, 어느 날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이야기 등 선생님의 정리되지 않은 듯한 이야기가 우후죽순 산발적으로 전개됐지만 내겐 휴식 같은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소개팅, 좋아하는 선생님, 연예인 이야기로 쉴 새 없이 떠들다가 1,2교시 지나 도시락을 까먹고 점심시간에는 매점에서 컵라면과 과자를 먹었다. 배경음처럼 들리던 아이들의 웅웅대는 소리만큼 파랗고 큰 휴지통은 과자봉투로 채워졌다. 나의 고교시절은, 나뭇잎 하나 떨어져도 까르르 터져 나오는 그들의 웃음소리에 묻혀 그 앞을 조용히 지나가는 작은 소라게 같았다.


사람은 결핍을 채우기 위해서, 그것이 삶의 동력과 색안경이 되고 판단의 기준이 되어 날갯죽지 하나 잃은 새처럼 불안전하게 살아온 건지도 모른다.

나에게 즐거움이 가당한가? 웃음이, 기쁨이, 여유가. 내겐 없는 인자들. 나는 아웃사이더, 이방인으로 대중 안에서 외딴섬이었다. 그 시절 뜨거웠던 여름, 또 여전히 경이로운 하얀 날리는 겨울도 있었건만 내가 기억하는 계절은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사이 계절이다. 코 끝이 아리고 마른 나뭇잎이 바닥을 치고 앞으로 나아가는 샤라락 소리, 바람이 나무를 휘청이게 훑고지나가는 워워 소리.


외롭다기보다 고독을 배웠던 시간. 내게는 존재가 흔들리는 아픔이었는데 더불어 살아가는 동안 그것은 가장 가까운 친구이 되었다. 지금도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면 하늘을 보며 숨 한번 고른다. 지나가던 길 가 풀잎 위 작은 곤충에게 마음을 주며 여전히 끼적인다. 그나마 마음 열고 친구의 연이 된 대학 동창의 "너는 여전히 소녀 같다"는 말에 민낯을 들킨 것 마냥 얼굴이 달뜬다. 이제 미생에서 완생의 시절이면 좋으련만

여전히 내 안에서 올라오는 뜨거움 이 있다. 빅터 프랭클이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삶의 의미'를 찾아 얼마 전 조금은 영글어 가는 나의 바람을 세상에 내놓았다. 브런치 서랍을 열어 작가를 신청하고 교보에서 POD로 메시지를 담은 컬러링북 '마음의 정원'을 출간했다. 내 마음속 방황과 기대와 위로가 누군가에게 한 줄기 푸근한 바람이 되길. 더불어 내 삶의 의미가 더 선명해지길. 돌다리 여러 번 두드리며 건너는 쫄보인 내가 가보지 않은 길을 향해 발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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