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가을을 지나며
14세,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의 불안은 '생리'가 원인이었다. 화장실에서 가 몸에서 나온 선홍색 액체를 확인하곤 정신이 아찔했다. 그것은 공포였다.
분명 책에서 간접 경험을 했건만 시각적 충격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두통을 느끼며 현실을 회피하려는 듯 방구석에 누워 떨고 있었다. 엄마에게 바로 말했던가. 기억이 희미하다. 그렇게 나의 초경은 시작되었다.
불안이 기본값이었던 나의 사춘기는 삶에 대한 회의로 온통 회색빛이었는데 붉은빛이 더해졌다. '장미축제', '매직', '꽃물 든 날' 등 예쁜 별칭과는 달리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그날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손님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생리 12~16일 전에는 배란통이, 그로부터 며칠 지나면 생리 전 증후군이 찾아온다는 것. 예민해져 투닥이던 날, 달력을 확인하면 늘 그즈음이었다.
호르몬 덕분에 한 달 동안 사계절을 경험한다는 건 축복일까 저주일까.
사람마다 다르지만 나의 생리통은 컨디션이 떨어질 때 더 심했다. 두통과 소화불량, 몸살감기 증상으로 앓아눕기도 했다.
첫 아이 임신 후에 깨달았다. 입덧이 꼭, 아주 심한 생리통 같다는 것을. 약도 먹을 수 없는 상태에서 속은 늘 체한 듯 답답했고 두통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외부 활동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마치 크기도 가늠하기 어려운 태아가
"엄마, 나 여기 있으니까 조심해 주세요."
라고 말하는 듯했다.
겉으로는 티가 나지 않지만 신체 증상은 분명한 메시지를 전했다. 술과 담배, 약은 물론 몸 조심하라는 신호. 한 생명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까지 여성이 감내해야 하는 일은 길고 지난하다.
고등학교 생물 시간에 배웠던 유전자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모든 유전병은 x염색체에 있다는 것. 여성은 두 개를 갖고 있어 하나만 이상이 있으면 보균자가 되지만, 남성은 하나뿐이라 바로 발현된다는 사실.
그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여성은 '엄마'가 되기 위해 태생적으로 더 보호받도록 설계된 존재가 아닐까. 자신의 몸으로 또 다른 존재를 품어야 하기에 유전적으로도 두 겹의 안전망을 가진 것은 아닐까.
지금, 나의 몸과 마음은 갱년기를 지나고 있다. 폐경이 가까워 근 40년간 나를 지켜주던 여성호르몬, 애증 관계였던 에스트로겐과 작별을 준비하는 중이다.
골밀도는 낮아지고 안면홍조와 야간 발한, 수면장애, 피로와 무기력, 관절과 근육 통증으로 이어지는 갱년기 증상.
이런 이야기를 글로 쓰는 건 처음이라 낯설고 솔직히 조금은 무안하다.
못할 것도 없다.
누구 눈치 볼 나이는 지났다.
"너 하고 싶은 것 다 해!"
지금은 내가 나에게 이렇게 말해줄 때다.
요즘 크게 다가오는 것은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 날이 적다는 인식. 그리고 앞만 보고 정신없이 살아온 시간의 흔적이 내 바람과는 다른 모습이라는 것. 삶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해석은 이르다.
삶이 꼭 목표 지점을 향해 전력 질주해야만 하는 건 아니다.
지금까지의 쉼 없이 달려왔다면 이제는 호흡을 가다듬고 느긋하게 산책하듯 걸어갈 때이다. 그리고 내게 남은 에너지를 조율하며 누군가를 위한 이름이 아닌 온전히 나의 이름으로 살 때이다.
청년도 노인도 아닌 과도기. 비교를 내려놓고 거품 같은 시간과 관계를 정리해 진짜만 남기는 시기. 혼란스러울 수도 아플 수도 있다. 이런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한자로 다시 ‘갱(更)’ 쓰는 갱년기를 대면대면하게 대충 흘려보내고 싶지는 않다.
14세 소녀시절부터 지금까지 신체적으로 정서적으로 여성의 과업을 수행하느라 참 애썼다.
자축하며 '날 좀 봐주세요.'라는 메시지를 소박한 상자에 담아 삶의 강물에 띄워 보낸다.
현재진행형 갱년기는 나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 오늘도 하얀 모니터에 불안 대신 호기심으로 더듬더듬 써 내려간다. 결론은 하나다.
지금의 나를 잘 돌보자.
갱년기와 친해지자.
이 글은 중년의 문턱에서, 삶을 다시 바라보게 된 시간을 기록한 글 중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