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한 입술은 내 것이 아니었다

INFJ · HSP 감각을 가진 채 살아간다는 것

by 주연

하계역에 간 김에 역 근처 치과에서 국가 검진을 했다. 약속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아랫잇몸에 마취를 하고 잇몸치료를 한 10분쯤 받았다. 2년 전, 처음 받을 때는 얼마나 긴장 되는지 반나절을 앓았다. 오늘은 마음의 준비를 해고 시작했는데 마취가 깨어나기까지 얼얼한 것 말고는 견딜 만했다. 치료가 끝나고 물을 마시는데 입술에 감각이 없다. 이 생경스러운 느낌. 지그시 깨물어도 느낌이 없다. 립브러쉬로 살짝 입술을 바르는데 내 신체 일부가 아닌 듯했다. 대강 마무리하고 얼른 마스크를 썼다. 마치 누군가에게 들키면 안 되는 것처럼.


예민한 감각은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평생 뭐 하나 나를 돕지 않는 듯한 이 감각과 감정, 가벼운 물결로 찰랑이다 슬그머니 사라지면 안 되나. 바다 깊은 속까지 내려가, 결국 태풍 같은 큰 소용돌이가 되어 나를 기진맥진하게 한다. 차라리 무심하고 무감각했으면 싶었다.


나는 작은 소리에 잘 놀란다.사람 많고 시끄러운 곳에 오래 있기 힘들다. 큰 소리와 큰 화면 때문에 영화관에서 영화관람은 부담스럽다. 쇼핑은 1시간 정도가 적당하다. 동창회처럼 단체로 모여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모임에서 말을 많이 했다 싶으면 집에 돌아와 쓰러지고 만다. 요리 등을 배울 때 궁금한 건 질문해야 하고 배움의 과정이 정확히 이해되지 않을 경우 넘어가질 못한다. 상대의 미묘한 감정변화를 잘 알아채고 문제가 보이면 해결하고자 안테나를 세운다.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그런 걸 뭘 따지고 그래?"

"그냥 넘어가. 다 그렇게 살아."


혼자 있을 때는 아무 문제없는데 누군가와 관계가 시작되면 그 긴장감과 은근한 평가에 피로감이 누적된다. 그래서 읽게 된 책, 센서티브(sensitive-Highly Sensitive Person).

민감함은 결함이 아니라 풍부한 자원이라는 저자의 말에 용기가 생긴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 나는 평온한 상태에서 작은 것에도 깊은 행복감을 누릴 수 있고 그림 등의 창작활동을 할 때 깊이 몰입할 수 있다.


물론 기질의 원인도 있지만 후천적으로는 내게 유의미했던 주변인들의 영향도 적지 않다. 평가와 비난이 곧 대화인 사람들. 언어폭력으로 나의 존재감은 무참히 짓밟혔다. 나 자신조차 나를 용납할 수 없어 자기 비난 일색이었던 시절이었다.


설명과 설득은 어쩌면 죄책감에서 벗어나고픈 바람의 언어였는지 모른다. 이제 더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간절한 바람. 그런 일상들이 나를 지치게 했다. 선의로 하는 배려조차 적당히 멈춰 눈을 감고 귀를 닫아야 한다.


"지금은 여기까지가 제 한계예요.”

“이건 제 역할이 아닌 것 같아요.”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내면의 소리를 외면하며 누군가를 진심으로 도울 수 있을까.

지금의 나는, 더 버텨서 증명할 단계가 아니다.


2시간쯤 지나 입술의 감각이 돌아온다. 감각이 사라지는 게 답은 아니었다. 감각이 없다는 것은 생명이 없다는 것. 필요한 것은 지금 여기, 나의 상태를 다루는 것.


피로가 감각을 더 예민하게 한다. 과거에 대한 후회, 미래에 대한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 다그치며 판단하지 않고 말해주련다.


"지금은 멈추고 쉬어야 할 때야."


나 자신을 존중하고 쉼의 필요를 인정한다.

상황에 맞게 정중히 거절한다.

나는 오늘도 이렇게 나를 인식하고 수용하고 사랑하기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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