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웃어. 그렇게 환대해.

나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by 주연

“당신 왜 이렇게 이쁘냐. 아침마다 찾아오는 사람한테 그렇게 웃어. 그렇게 환대해.”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힘든 이야기를 웃으며 꺼내는 구 씨 옆에서, 미정이가 깔깔대며 한 말이다.

자신의 존재에 회의적인 구 씨에게 미정은 빛 같은 사람이다. 삭막한 그의 삶을 말랑하게 해주는, 거의 유일한 존재. 몇 발자국 앞선 곳에서 미정이 구 씨를 보고 활짝 웃을 때, 구 씨는 잠시 멈춰 서서 미소 띤 얼굴로 그녀를 지긋이 바라본다.
미정이 구 씨를 환대했을 때, 구 씨 역시 비로소 자신을 수용하고 환대할 수 있었으리라.


수유역 4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보이는 정형외과에서 석 달째 고관절과 허리 충격파 치료, 견인, 도수치료를 받고 있다. 치료를 모두 마치면 두 시간이 훌쩍 넘는다. 일주일에 두 번, 갈 때마다 진이 빠지고 어지럽기까지 하다.
치료를 시작하려고 엎드리며 한숨부터 나오던 어느 날, 문득 김종원 작가의 강연 한 자락이 떠올랐다.


“‘편의점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웠어.’ 대신
‘편의점 도시락을 즐겼어.’라고 하세요.”


들을 때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까맣게 잊고 있던 말이었다. 그 말이 정형외과의 좁은 침대 위에서 다시 나를 찾아왔다.

몇 달째 지루하고 불편했던 이 시간을, 나는 이렇게 바꿔 말해보기로 했다.

“오늘 두 시간 동안 물리치료를 즐기자.
아픈 곳이 조금씩 좋아질 거야.”

치료실 세 곳을 옮겨 다니며 누군가 내 아픔을 돌봐준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놓이고 감사함까지 스며든다. 잠깐 마음속 이야기를 바꿨을 뿐인데, 몸이 반응한다.

‘즐긴다’라는 말이 주는 여유.
나는 그저 아무거나 하고 아무거나 먹는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 자족할 줄 알고 누릴 수 있는 사람이다. 그 권한은 오직 나만이 나에게 부여할 수 있다.


무엇도 선택할 수 없고 꼭 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여기까지 왔다. 그 끝에 남은 것은 번아웃과 무기력.

‘must’가 동기가 된 삶에서 책임은 미덕이었고, 선택은 사치였다.
내가 선택해서 기꺼이 하는 ‘can’의 삶은 포기가 아니라 조율이다.

하여 나는 나의 굴곡진 역사를 새로 쓰기로 했다. 생전 익숙하지 않은 말들이지만, 언어를 배우듯 마음에 두고 머리로 생각하며 입으로 되뇐다.


나에게 웃어주기.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고 반기는 ‘환대’ 이전에, 성과가 아닌 존재 자체로 나를 먼저 환대하기.

“비 오니까 천천히 걷자. 급하게 할 것 없어.”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어. 충분해.”
“100점이 아니라 30점부터 시작하는 거야.”
“오늘 정말 수고했어.”


미정이가 구 씨에게 그러했듯, 나를 향한 이 미소가 누군가를 환대하며 살아갈 용기와 힘이 된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다시 태어나는 갱년기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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