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위한 딸기 세 팩

엄마는 딸기를 좋아해

by 주연

"엄마, 딸기 3팩에 만원이면 괜찮은 거예요?"

"괜찮은 가격이야, "


딸이 MT를 갔다 집에 오는 길에 전화를 했다. 짐도 많을 텐데 1시간 30분은 족히 걸리는 거리를 검은 봉투에 달콤한 향을 풍기는 딸기를 담아 왔다.

3일 만에 마주하는 딸아이는 피곤해 보였지만 환하게 웃으며 봉투를 내민다.


"엄마가 딸기 좋아하잖아요. 그래서 내 돈 주고 사 왔어요."


만족한 눈빛, 자랑스러운 눈빛이다.

늦은 시간 떨이로 샀다며 세 팩을 꺼내 놓는다. 조금 무른 부분이 있었지만 크고 실했다.

졸업 후 직장을 갖지 않고 1년 동안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딸은 용돈이 부족하다. 넉넉하지 않은 주머닌데 엄마를 떠올리며 딸기를 샀겠지.

그러고 보니 딸이 내 생일 선물로 준 경량 패딩 조끼, 청원피스, 미술도구를 지금도 잘 쓰고 있다. 있으면 충분히 줄 수 있는 아이다.


대학 진학을 하며 딸이 좀 더 독립적으로 살기 바랐던 엄마의 마음을 야속하게 생각한 딸. 20대 청춘이 사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이 얼마나 많겠나. 딸은 아르바이트를 몇 번 시도하다가 그만두고는 사람 대하는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나는 풀타임은 체력이 안 돼 얼마 전부터 6시간 근무를 한다. 기본 생활비를 쓸 정도의 수입. 적게 벌고 적게 쓰자는 생각이다. 프리랜서 준비하느라 교육비가 많이 들어갔고 평생 처음으로 큰 액수의 카드값을 내느라 웬만한 건 생략하고 사는 중이다. 교육은 수입으로 바로 연결이 되지 않아 마음이 조급해졌다. 딸이라도 경제활동을 하며 자신의 삶을 건사하기 바랐다. 딸은 필요한 것을 조심스럽게 요청했다. 난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상황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어떤 건 들어주고 어려운 상황을 이야기하며 넘어가기도 했는데 딸은 그것을 거절감으로 받는 듯하다. 그 존재의 거절이 아니건만, 서로 친밀할 새 없이 흘러간 세월의 간극을 매우지 못하고 작은 집 방 문은 굳게 닫혀 서로 말없이 지내는 날이 많아졌다.


얼마전 아버지가 필요한 데 쓰라고 보낸 적지 않은 비상금을 딸 계좌로 보냈다. 그것으로 딸이 준비하는 일에 필요한 기본적인 재정이 채워지고 마음도 여유로워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엄마, 지금 어려운데 왜 보냈어요?"

"지금 꼭 필요하잖아."

"엄마, 나 사랑해요?"

"그럼, 당연하지."


딸아이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지나간다.

빨갛게 익은 사과 한 알을 타원 접시에 담아 같이 먹다가 하루 종일 방 안에 있던 딸에게 집 앞 공원 산책을 제안했다.


작년 여름에 완공된 집 앞 수국동산은 밤에 반딧불이, 무지개 조명이 안내자가 되어 빛을 뿌려준다. 수국의 계절이 지나 황량했던 동산, 마치 낮에 숨어 있다가 기지개를 켜고 밤마실 나와 춤추는 빛의 요정 같다.

빛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으면 사람이 없어도 혼자가 아닌 듯 쓸쓸하지 않다.

수국동산 터는 비 올 때마다 야생초 부피가 커지는 정글같은 땅이었다. 구청에서는 그 땅을 6개월 넘게 개간하고 나무와 수국을 종류별로 군락을 이루게 심었다. 세상에 수국 종류가 그리 많은 줄 몰랐다. 작은 별무리 꽃몽우리가 하나 둘 그 문을 열면 세잎 또는 네 잎으로 피어나는 꽃. 다 피고 나면 한 줄기에 핀 꽃이 얼마나 풍성한지 6월의 신부 부케 같다.


"엄마, 이 동네 참 좋아요. 조용하고 또 동산에 사람들이 찾아와 너무 한적하지도 않고."


아침이면 앞 산에서 들리는 새소리.

바람 불면 나뭇잎이 흔들리며 들리는 샤라락 소리.

비 오면 나무와 흙 젖는 냄새.

눈이 올 땐 금세 크리스마스라도 된 양 나무마다 순백의 옷을 입는 고요한 여유.

산과 동산 사이 덩그마니 울타리치고 서 있는 우리 집 별명은 '큰 숲, 작은 집'이다.

집, 동네 이야기를 하다 딸아이가 묻는다.


"엄마, 그땐 왜 그렇게 우리한테 쓰는 걸 아까워했어요?"

"그때...

양육비 없이 엄마 혼자 너희들 키우느라 그랬지. 절약해야 하니까."


나는 늦게 까지 일하느라 딸과 함께 할 시간도 힘도 여의찮았다. 그러한 생활이 딸애의 마음까지 가난하게 했나 보다. 찬 바람 불게 했나 보다. 겨우 살아냈던 엄마의 시간이 딸들에게는 또 다른 아픔이었나 보다. 버티며 살아온 시간이 갑자기 폭풍처럼 밀려올 때는 접어두었던 자책이 매서운 겨울바람처럼 나를 치고 지나간다.


'힘들다고 손 놓지 않았잖아... 그게 최선이었잖아... 그렇게 버틴 것만으로도 잘했어.'


마음 한편에서 들리는 소리. 긴장 속에서 하루하루 살았던 세월의 열매가 아픔으로 느껴질 땐 모든 걸 놓고 그냥 눕는다. 앞으로 살아야 할 의미를 잃게 되니 그냥 바람처럼 사라지고 싶어 진다.

몸과 마음의 면역이 떨어졌는지 여기 저기 아프기도 했다. 3주 만에 다시 나를 일으켜 청소를 하고 재활용을 정리하고 빨래를 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건 보이는 결과로 나를 공격하지 않는 것. 그건 마치 자가면역 결핍처럼 내 마음의 백혈구를 파괴하는 듯 치명적이다. 딸의 마음을 키워야 하는 것처럼 내 마음도 키워야 한다. 나에게도 여백을 주고 흔들려도 기다려줘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딸이 내게 기댈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 의존이 건강한 독립의 힘을 주리라.


"엄마, 딸기 맛있어요?"


딸이 지나가여 묻는다. 양이 많아 조금씩 씻어 며칠을 먹었다. 이렇게 달콤한 분홍 과육은 처음이다. 딸의 마음이 담겨서일까. 한 입 베어 물면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자신이 준 선물이 엄마에게 어떤 의미인지 넌지시 전하는 딸아이의 질문 속에 그 마음이 느껴진다. 평소 달아서 싫어했던 딸기가 딸아이 임신했을 때 어찌나 맛있던지 태명을 '딸기'라고 지었던 24년 전의 기억.


"딸기야, 딸기 줘서 고마워.

네가 있어 참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처음 걷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