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랑 같이 블록놀이 하고 싶어요."
사는 게 바빠 변변찮은 가족여행 한 번 다녀오지 못한 채 딸은 성년이 됐다. 1년 정도 해외에 머무를 예정인 딸이 떠나기 전, 함께할 시간을 만들고 싶었다. 얼마 전에는 한국공예박물관 전시를 보고 차를 마시며 큰 건물 사이로 노을 지는 하늘을 바라봤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장면은 선명하다.
그날 공예박물관 1층에 있는 도서관에서 책을 보는 딸 사진을 찍었다. 사진 찍히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와 딸은 그나마 스냅사진처럼 슬쩍 찍어 사진 한 장을 남긴다. 시간이 흐른 뒤 마음속 사진첩을 공유하고 싶은 까닭이다.
동해 바다, 양양 해변, 대성리, 여주 괴테의 집과 여백서원, 미술전시회, 영화 등등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결국 사람 많은 곳, 너무 먼 곳, 슬픈 영화를 제하고 딸과 나의 바람 한쪽에 쏠린 것 하나 둘 지우고 나니 함께 즐길 수 있는 게 마땅찮다. 그래서 각자 원하는 것 하나씩 고르기로 했다.
"엄마, 퍼즐은 어때요?"
"응? 카페에서 하는 거?"
"아뇨. 집에서 1000피스 맞추는 거."
엄두도 나지 않는 1000이라는 아득한 숫자.
'나는 그런 단순 작업은 좋아하지 않는데'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켰다.
대신 그림은 내가 고르기로 했다. 투명 커튼이 바람에 살짝 휘날리고, 햇빛이 스며드는 포근한 창가. 긴 드레스를 입은 소녀가 책을 읽고 있는 그림. 시간과 공간이 멈춘 듯한 그림의 소제목을 '쉼'이라 지었다. 대학시절 미술 동아리에서 고호의 '신발'을 그리고 부제를 '쉼'이라 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쉼'은 내 인생에서 중요한 낱말이다.
나는 식탁 위에서 딸이 말하는 모서리에 넣을 퍼즐을 찾고 색깔을 6가지 정도로 분류하는 작업을 하다 멈췄다. 이 색이 저 색이고 저 색이 이 색인 고만고만한 빛들. 아, 길을 잘못 들어선 것 같다. 쉼이 아니라 중노동이 되는 건 아닌지. 무거운 머리를 숙이고 퍼즐 찾다 목 근육이 결리는 건 아닌지. 난 그저 딸과 느긋하고 평온한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며 마음을 나누고 싶었을 뿐인데.
내가 제안한 건 이번 토요일, 하루의 일과를 마친 해가 노을로 수줍게 인사할 때쯤, 우이천을 40분쯤 함께 걷는 걷는 것이다. 걷다가 쉬고 싶을 때쯤 동네 숨은 카페나 우이천 옆 통유리 북카페에 들어가 책을 보고 이야기하자고.
퍼즐을 분류하고 있자니 문득 오래전 한 장면이 떠올랐다.
나는 지친 어깨로 애벌빨래를 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하고 먹이고 치우고 나면 벌써 에너지는 바닥이었다. 느긋하게 한숨 돌릴 틈도 없이 청소를 대강 하고 빨래를 붙들고 있었다. 그가 점심 먹으러 오기 전 집안일을 해놓지 않으면 불안한 때였다.
화장실 문 밖으로 세 살 딸아이가 보였다. 곱슬곱슬한 머리의 아이가 반투명한 흰 블록 상자에 배를 기대고 엎드려 있었다.
"지금 뭐 하고 싶어?"
"엄마랑 블록놀이요."
열기 있어 약을 먹고 기운 없던 아이가 나를 보며 말했다.
"블록놀이 하고 싶구나... 엄마도 함께 하고 싶은데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네.."
먼저 보채는 법이 없는 아이였다. 열이 나 밤새 끙끙 앓아도 데굴데굴 구르며 신음할 뿐이었다. 뜨거운 아이 팔이 내 피부에 닿아 놀라 잠에서 깬 적이 몇 번이었다. 옷을 벗기고 미지근한 물에 적신 수건으로 몸을 닦아주었다. 스탠드 등을 덮은 보랏빛 손수건의 은은한 빛이 아이의 말랑하고 보드라운 살을 비췄다. 작은 팔이 뜨겁다. 침대 아래 깔아놓은 이불 곁에 쭈그리고 앉아, 아이의 열기로 데워진 수건을 식히며 새벽을 맞았다. 수건으로 몸을 닦을 때 보챌 수도 있으련만 아이는 머루 같은 눈동자를 깜박이다 잠이 들었다. 나도 그 옆에서 스르르 잠이 들었다.
아기 블록을 좋아하던 아이는 자라며 레고를 좋아했다. 주제가 있는 세트를 다 맞추고 나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며 다른 놀이로 이어가곤 했다. 블록에 큰 흥미가 없던 나는 아이가 기뻐하며 만들고 말하는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지나고 보니 블록은 서로 다른 존재인 딸과 나 사이에 이어주던 하나의 언어였는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블록을 매개로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자기 내면의 작은 조각을 내게 귀띔해 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왜 중요한 건 늘 지나고 나서야 보이는 걸까.
중학생 때 읽었던『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지막 구절이 문득 떠오른다. 큰 상실 앞에서 스칼렛은 이렇게 말한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니까"
사랑과 야망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내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나를 통해 이 세상에 온 두 아이가 무엇이 되어서가 아니라 자기 존재 자체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애썼지만 충분치 못했다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와 내 가슴을 죄어올 때면, 가슴 앓이 하고 있는 딸들의 마음과 내 어린 마음이 공명하듯 아프다. 그 긴장이 지나간 뒤, 나는 내게 말한다.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니, 오늘은 오늘의 삶을 충분히 누리자..."
다 큰 딸이 어린아이처럼, 자기가 퍼즐 맞추는 것을 바라봐 달라고 말한다. 사람을 크게 하는 것은 세월만이 아니다. 함께 누리고 함께 나눈 따뜻한 마음이 반듯한 사다리를 만들고, 사람은 그 사다리를 디디며 자라난다.
1000조각의 퍼즐을 어느 세월에 맞출지 모르겠다. 딸 몰래 큰 숨 한 번 쉬어본다. 훗날 이 시간이 딸과 나 사이에 따뜻한 기억으로 남겠지.
그거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