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보아야 보인다

딸과 1000피스 퍼즐을 맞추며

by 주연

딸과 함께 하기로 약속한 1000피스 퍼즐을 토요일 아침에 개봉했다. 미국 인상주의 화가 하삼의 작품, '창가에서.' 햇살이 비치는 창가, 꽃, 커튼, 그리고 일상의 평온함을 따뜻하게 표현한 그림이다. 그림은 좋았다.


투명 비닐봉지에 가득 든 퍼즐 조각. 금방 오븐에서 여러 빛깔로 구워져 나온 작은 쿠키처럼 앙증맞다. 브로마이드를 상 위에 펼쳐 시작을 하려니 고만고만한 화가의 붓터치가 다 비슷해 보였다. 뭐라도 시작해야 했기에 난 퍼즐을 식탁과 바닥, 상자 안에 색깔별로 구별하고 딸은 모서리에 들어갈 퍼즐부터 찾았다.


나는 그림 중앙에 있는 창가의 화분, 꽃부터 맞추기 시작했다. 잎사귀와 빨간 꽃을 한참만에 찾아 자리에 놓으며 작은 기쁨을 느꼈다. 딸과 모서리부터, 난 중앙에서부터 맞춰 갔다. 오후 5시까지 완성하고 우이천 산책하기로 한 계획은 언감생심이었다. 보통 한 번 정한 것을 못하게 되면 마음이 힘든 딸이었다.


"여기까지 하고 나갈래, 아님 우선 퍼즐부터 완성할까?"

"퍼즐부터 해요."


우린 의기투합하여 식사 준비할 때도 한 명은 계속 맞추며 시간을 아꼈다. 밤 12시가 넘었다. 딸은 들어가고 난 1시 30분까지 맞췄다. 반 정도 맞췄나.


일요일, 나는 오전에 외출하고 딸은 외출 전 1시간 정도 맞추다가 밖에 있는 내게 전화를 했다.


"엄마~ 여자 얼굴 맞췄어요!"

"어머! 드디어 찾았구나. 어젠 그렇게 찾아도 안 보이더니. 잘했어~!"


오후 5시부터 목과 어깨가 아파 스트레칭을 하고 안마도 해주며 퍼즐을 맞췄다. 어느새 밤 12시다. 다음 날 출근해야 하는데 이 무슨 승부욕인지,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내기하는 것도 아닌데 눈을 동그랗게 뜨고 구부정한 자세로 그림을 바라봤다. 새벽 1시까지 30조각을 더 맞췄지만 안타깝게 티도 안 났다.


월요일, 퍼즐 그림이 머릿속에 장착된 채 직장에 갔다. 오후, 그날은 마무리할 심산으로 딸과 나란히 혹은 마주 앉아 퍼즐을 맞췄다. 딸이 편두통을 호소해서 쉬라고 하고 난 그림을 더듬어 붓터치의 특징을 살피며 점 하나 선 하나에 집중하며 퍼즐 조각을 찾았다. 딸은 기타를 치며 머리를 식혔고 난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흥얼거렸다. 좀 나아졌는지 다시 퍼즐 맞추기에 돌입한 딸이 허밍으로 악기 소리를 냈다. 정확한 음정과 박자.


"트럼펫 소리, 바이올린 소리, 해금 소리를 어떻게 그렇게 잘 내니?"

"시끄럽지 않아요?"

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니, 엄만 음악으로 들려서 좋은데."


기시감 있는 말이었다. 스물몇 살 때쯤, 피아노가 거실에 있어 평소에는 잘 못 치고 가족들 외출한 때를 틈타 피아노를 치던 참이었다. 나는 거실을 오가며 집안일 하던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시끄럽죠?"

"아니, 난 네가 치는 피아노 소리 너무 좋아."


그 말에 안심했던 기억 한 자락.


오늘은 완성하리라 서로 무언의 다짐을 하며 5분의 1 정도 남은 퍼즐 조각을 향해 의지를 불태웠다. 모녀는 3일 내내 찾아 헤맸던 한 조각을 맞출 때마다 환호성을 질렀다. 하이파이브를 하고 등을 두드리며 격려했다.


"엄마와 내가 퍼즐 합이 잘 맞네요. 9살 때 소원을 이제 이뤘네."

"응?"

"엄마와 종일 함께 있는 것이 어린 시절엔 소원이잖아요."


그렇지...


딸은 게리 채프먼의 '사랑의 5가지 언어'에 나오는 것 중 함께 시간을 보낼 때 사랑을 느낀다고 했다.


일을 마치고 오면 하루 종일 기다렸다는 듯 딸은 나를 향해 달려왔다. 손을 꽉 잡고 엄마 짐을 들어주며 반가움을 표현했지만 나는 수분 다 빠진 야채처럼 그저 쉬고만 싶었다. 집에 와도 휴일에도 쉬는 게 쉬는 게 아니었다. 편안하고 느긋하게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 우리에겐 쉽지 않았다. 그 시절을 나도, 딸도 결핍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딸이 말했다. 소원을 이뤘다고.


다시 기회가 없을 줄 알았는데, 풀지 못할 숙제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풀어갈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오래 전의 우리와 지금의 우리가 순간 겹쳐 보였다.


잠깐 바람이라도 쐬자고 동네 마트에 함께 갔다. 딸은 육회가 먹고 싶다고 했다. 엄마의 사정을 알기에 그냥 먹고 싶다고만 말하는 딸. 200g이면 된다고 했지만 300g을 샀다.


"엄마 덕분에 이렇게 맛있게 먹네요. 한 입만 맛봐요. 정말 맛있어요."

육회에 소금과 참기름,깨소금을 버무린 딸이 육회를 권했다. 나는 빨간 생고기를 먹는다는 게 내키지 않았지만 한 입 먹었다.

"부드럽고 맛있구나."


그날 육회의 맛은 '감사'였다. 분수에 맞게 근검절약하며 살아온 시절, 엄마가 자신에게 인색하다고 느껴, 사랑이 없다고 느껴 아팠던 딸이 그 언 마음을 풀며 내미는 손길이었다.


밤 9시, 고지가 눈앞에 있다고 서로를 격려하며 다시 앉았다. 몇 안 남은 퍼즐 조각을 같은 모양으로 나란히 놓고, 색이 구분되지 않는 것은 모양을 가늠하며 맞췄다.


"한 조각이 참으로 소중하네"

"그렇죠. 한 마리 잃어버린 양처럼요."

"인생이 퍼즐 같다. 다 맞추기 전에는 그림을 정확히 알 수 없잖아."

"그 조각이 왜 그곳에 있는지도 모르고요."


밤 11시, 드디어 마지막 퍼즐 조각을 넣으며 우리는 두 손을 마주 잡았다. 우리는 오랜 소망을 이룬 듯 진심으로 기뻐했다. 자세히 살펴보면 보이는, 전체 그림의 1000분의 1 조각. 얇고 단단한 퍼즐 조각이 제자리에 들어가며 내는 '톡'소리다 경쾌했다.


정말 수고 많았다.


3일 동안 중노동 한 듯 온몸이 뻐근하다. 딸이나 나나 평생 1000피스 퍼즐은 다시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이 경험만은 영원까지 가져가고 싶다. 인생 경력에 '1000피스 퍼즐, 3일 동안 맞춤'이라고 넣어도 될 것 같다.


딸과 나 사이에 작은 전우애 같은 것이 생겼다. 힘든 과정을 통과하며 생긴 용기.


내 안에 묵직한 마음. 어쩌면 그건 딸과 함께 하지 못했던 날들이 남긴 숙제인지도 모른다. 자세히 보아야 찾을 수 있는 퍼즐 조각처럼, 오랫동안 찾지 못했던 딸 마음의 한 조각을 비로소 맞춘 것 같다.


완성된 퍼즐에 물풀을 얇게 바르고 주문한 액자를 기다리고 있다. 피아노 위 흰 벽면에 걸어둘 예정이다. 그 퍼즐을 볼 때마다 딸이 했던 달콤한 말을 떠올릴 것이다.


"엄마, 소원 풀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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