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의 나에게
입덧 기간이 끝났건만 입은 여전히 썼다.
생존을 위해 선택한 음식은 홍시 하나와 치즈를 넣은 구운 감자.
만삭이 되도록 체중은 6kg 늘었고 기운은 늘 없었다.
막달 전 산부인과 진료를 받고 며칠 후, 설거지를 하다가 숨이 차서 마룻바닥에 주저앉았다.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힘들어 몸에 이상이 생긴 거라는 예감에 산부인과에 전화를 걸었다.
“산모님, 그렇잖아도 연락하려고 했어요.
빈혈 수치가 너무 낮아 수술 전 철분 주사를 맞아야 합니다.”
“아기는 괜찮나요?”
“걱정 마세요. 아기는 건강합니다.”
감에 있는 탄닌 성분이 철분 흡수를 방해해서였을까?
그래서 어지럽고 숨이 찬 거였다.
다행이다. 엄마는 힘들어도 아기는 이상 없다니.
보통 사용하는 링거보다 작은 손바닥만 한 병에서 붉은 액체가 몸 안으로 들어온다.
두 병을 맞고 수술을 했다.
3년 이상 터울부터는 자연분만을 시도할 수 있지만,
연년생 출산은 첫째 때 제왕절개로 낳았으면 둘째도 동일하게 해야 한다.
양수가 터져 첫째를 한 달 빠르게 수술해서 낳았기에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기의 첫 울음소리가 듣고 싶었던 나는
의사 선생님과 상의해 하반신 마취로 진행하기로 했다.
6월의 수술실은 추웠다.
수술대에 누워 척수에 주사를 맞기 위해 몸을 새우처럼 구부리고 있는데
추워서였을까, 긴장해서였을까?
미세한 떨림이 혈관을 따라 느껴졌다.
이어폰으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마취과 선생님을 기다렸다.
내 기억은 거기까지다.
두통과 오한을 느끼며 눈을 떴는데
수술은 이미 끝나 있었다.
전신마취를 ‘당한 거다.’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을 꼭 보고 싶었는데
아쉬운 탄식이 새 나왔다.
옆에 있던 간호사 선생님이 아기를 내 팔과 겨드랑이 사이에 놓는다.
내 팔뚝길이 만한 아기가 속싸개로 꽁꽁 감싼 채 잠들어 있다.
개월 수를 다 채우고 2.8kg으로 태어난 아기는
감긴 눈이 긴 선을 그리고 있어 눈이 클 거라 예상했다.
살이 없어선지 코가 유난히 오뚝했다.
아, 이쁘다!
비몽사몽간에 나는 아기와 첫인사를 했다.
산후조리원에서 딸의 별명은
‘잘생긴 도련님.’
둘째는 태아 때부터 손을 움직이는지 발로 차는지
배가 불쑥불쑥 나와서 깜짝 놀라게 했다.
축구선수 아들인가 했는데
내가 바란대로 씩씩한 딸이었다.
외까풀의 똘망똘망하고 시원한 눈,
작은 얼굴에 비해 높고 큰 코,
도톰한 입술.
아기는 많이 먹진 않았지만
최소한의 양은 채우며
잘 먹고 잘 잤다.
둘째 출산 후 훗배앓이로 허리 펴기도 힘들었다.
병원에서 빈혈로 자궁 수축이 어려울 걸 예상해서
강한 약을 사용한 까닭이다.
첫째 때는 뜨개실로 배냇저고리와 모자를 만들었고
홈패션을 배우며 포대기, 싸개 등을 만들었다.
14개월 터울인 둘째 임신 때는
첫째 보기도 바빴다.
아장아장 걷는 아기,
누워 있는 아기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재우면
하루가 갔다.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는,
‘청소’라는 말이 무색한 시절이었다.
어느 육아 프로그램에서 강사가 말한다.
“애 있는 집이 깨끗하면 이상한 거예요.
누가 와서 이렇게 어질러놓고 사냐고 뭐라 할 것 같으면
청소기를 현관문 앞에 두고
지금 청소하려는 중이라고 하세요.
아이들 다 논 후
하루에 한 번만 해도 돼요.”
내가 학부모 상담할 때
자주 사용한 멘트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다.
빨랫감이 있고 설거지가 좀 쌓이면 어떤가.
아이 건사하고
엄마도 쉬어야 할 때
엄마는 집안일을 한다.
이것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에너지 많은 엄마라면 모를까
산후 몸도 마음도 힘든 엄마는
그저 잘 쉬어야 한다.
시간만 나면 잠시라도 수면을 취해야
깨어 있는 시간
맑은 정신으로 아이를 돌볼 수 있다.
나는 묵직한 배낭을 메고
종일 사는 냥
어깨, 허리는 아프고 소화불량으로 고생하며
그저 살았다.
지인이 둘째 출산 후 남긴 한 마디.
“발달이 달라
연년생을 키우는 게 쌍둥이 보다 힘들어.
5~6년은 죽었다 생각하고 살아.”
아토피 있는 둘째를 돌보며
내 살이 쓰라렸고
이미 내 마음은 알레르기로
항상 긴장 상태였다.
시금칫국을 먹고 얼굴이 붉어지고,
껍질 까고 있는 달걀을
말릴 새도 없이 덥석 한 입 베어 물고는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기도 했다.
어느 날은 붉은 변이 나와
기저귀를 들고 병원에 달려갔더니
전날 먹은 수박 때문이라는 말에
안도했다.
‘끝없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처음 겪는 삶을
그렇게 ‘살아냈다.’
지금 어떠하든,
어떤 관계의 어려움이 있든지
30대 초반,
46kg의 작은 체구로
손에 물 마를 날 없이,
아이가 열이 날 때면 함께 밤을 새우고
그다음엔 꼭 엄마가 아팠던
그 시절의 나에게 말하고 싶다.
“태어나서 처음
새 생명을 품어
낳고 키우느라
애썼다.”
밤잠을 설치며
아이 곁을 지키고 있을
이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도
애틋한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