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사랑이었나

-나의 첫 양육기

by 주연

엄마는 우리 4남매 키울 때

청계천 다리 아래 중고 책방에서 이유식 책을 샀다.


아이를 키우는 법을,

누군가의 손때가 묻은 책에서 배웠다.


이유식을 해 먹일 때마다

할머니는 유난 떤다며 잔소리를 하고

엄마는 말 없이 냄비를 올렸다.


딸 셋은 고만고만한 시기에 결혼했고

해마다 둘, 둘, 한 해 건네 한 명, 한 명

아이를 낳았다.


엄마는 C형 간염으로 피로하면 안 되는 몸이었는데

산후 조리원 이후 근 2주일은

친정집에 머물렀으니


엄마, 고생 많이 하셨다.


나의 첫 딸이 우리 집 첫째 손이었다.


나도 엄마처럼

임신부터 책을 보며 엄마 공부를 했다.


37주쯤

인천에서 서울로 친구들 만나러

오랜만에 나들이 한 날이었다.


문득 이불이

맑은 물에 살짝 젖은 걸 보며

갸우뚱했다.


내가 보고 있는 임신과 육아 책에

이런 상황이 있었는데..


맞다!

양수가 터진 것 같았다.


급히 다니던 산부인과에 연락하니

양수 터진 후

24시간 이내 출산하지 않으면

아기가 위험하다고.

빨리 입원하라고 했다.


유도 분만이 시작됐다.


새벽녘,

아기가 뱃속에서 돌다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심장박동은 정상이었다.


수술하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의사 선생님의 권유에

산통을 겪다가

자연분만의 바람을 포기했다.


탯줄이

아기 태아 목을 칭칭 감고 있었다고,

바로 수술하지 않았으면

위험한 상황이었다고

나중에 들었다.


마취에서 깨어나

아기를 봤다.


얼굴은 빨갛고

다리는 개구리처럼 접혀 있었다.


"선생님, 다리가 왜 이래요?"


"원래 그래요.

신생아 처음 보세요?"


아,

뱃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모습이

이랬구나.


한 달 일찍 태어난 딸은

2.8Kg로 작았지만

잘 먹고 잘 자며 쑥쑥 컸다.


백일쯤엔

오뚝했던 콧날이

볼에 묻혀 희미해질 정도였다.


이유식을 처음 시작할 때는

쌀 끓인 물을

차 스푼으로 한 술씩

조금씩 늘리라고 적혀 있었다.


냄비에 쌀을 끓였다.


혀로 밀어내며

안 먹는 아기들이 많다길래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따뜻한 밥 물을

딸 입에 갖다 댔다.


딸은

밍밍한 밥 물을 거부하지 않고

작고 귀여운 입으로

쪽, 빨아먹었다.


다음 날은 두 술,

그 다음 날은 세 술.


이렇게 시작해

내가 해주는 이유식을

잘 먹었다.


내 손가락 두께로 김밥을싸 줘도

맛있게 먹었고,


어느 날은

연근을 쪄서 식히는 중

하나 집어 먹더니

약간 끈적이는

폭폭한 맛이 좋은지

잘 먹었다.


아장아장 걸을 때는

간식으로

마른 김을 구워

다시마 사탕과 함께 들고

동네 놀이터에 나갔다.


두꺼운 다시마를 입에 넣고

오물오물 녹여 먹으니까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이

하나둘 다가왔다.


아이들은

별 맛 안나는 그것을

입에 넣고

찡그리기도 하며

빨아먹었다.


"이렇게 엄마가 잘 먹이니

은이가 건강한 거야.

효녀네.

엄마가 주는 대로 잘 먹으니."


이웃집 엄마가

한마디 했다.


밤마다 책을 읽어주면

딸은

자기가 선택한 책 다섯, 여섯 권을

읽는 내내 집중했다.


상상력과 창의성은

그때 형성됐는지도 모르겠다.


아장아장 걸어 다닐 때

딸의 곱슬머리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아기 곱슬머리예요?

파마한 거예요?"


곱슬이라고 하면

감탄의 눈빛으로

너무 귀엽다고

인사를 건넸다.


첫 아이 때는

모든 게 처음이라

양육자라기 보다는

관찰자,

이론을 실습하는 사람 같았다.


아이 목욕 시키다가

명치끝에 뭐가 만져진다고

먼저 엄마 된 친구에게 말하니

원래 그런 거라며

깔깔 웃었다.


어느 날은

맑은 분홍빛 잇몸에

하얀 점 두 개가 보여

뭐가 묻은 줄 알고

닦아내려 했는데

첫 이가 나는 중이었다.


이가 살갗을 뚫고 나오며

아이는 밤 새 열이 나

칭얼거렸다.


작은 잇몸을

찬 가재 손수건으로 찜질하며

엄마도 함께 앓는 밤이었다.


딸에게 읽어 준 첫 동시집.


'아기 잇몸에 앉은 작은 나비 한 마리.'


쌀알만 한 날개를 펴고

하얀 나비 한 마리가

찾아온 것 같았다.


작은 생명이

나를 통해

이 세상에 나와 숨 쉬는 건

기쁨과 동시에 공포다.


온전히 나를 의존해야만

살 수 있는 생명.


동물은 태어난 지

몇 시간 만에 걷고

1년이면 어른이 되어

독립하지만,


인간은

참으로 연약하게 태어나

오랜 시간 키워야 한다.


몸도 마음도

잘 돌봐야

잘 큰다.


나는 딸에게

이유식과 밥과 간식,

놀잇감을 만들어주고

연령에 맞춰

놀이해 주며 애썼다.


팍팍한 가슴에

여유 없이 빨리 돌아가는

쳇바퀴 같은 날들.


밤이 되면

파김치 되어

등이 바닥에 붙는 것 같았다.


엄만 수다쟁이가 돼야 한다는데

그땐

연년생 딸 둘 보느라

말하기도 지쳐 있었다.


그저

열심히 만들어 먹이고

치우며

내 자리를 지켰다.


여러 상황으로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었던 시절,


소화불량에 수면 부족으로

몸은 야위어 갔다.


그것은

사랑이었나.


"엄마,

난 모성애가 없는 것 같아요."


산후,

한없이 가라앉는 마음으로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나의 양심은 항의했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당위성이 나를 밀어

달려온 인생.


'엄마'라는 이름의

내 모습이

마뜩잖았다.


환경이 어떠했는지는

차치하고

나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유아교사를

25년 넘게 하며

육아에 지친 자모에게 꼭 하는 말이 있다.


"엄마가 행복해야

자녀도 행복해요.


아빠가 자녀를 사랑하는

최고의 방법은

아내에게 잘하는 거예요."


긴장과 불안 속에서

아이를 양육하며

고단했던 엄마가

정서적으로 전하지 못한

마음의 편지.


'눈이 이뻐서

코가 오뚝해서

곱슬머리가 귀여워서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야.


그냥 너라서,

나의 아기여서

이쁜 거지.


엄마가 만들어준 것

맛있게 잘 먹고

잘 커줘서 고마워.


원하는 만큼

충분치는 않았지만

엄마가 만든 음식 먹을 때마다

너를 향한 마음까지

듬뿍 먹었길 바라.'


언젠가

딸의 마음이 더 커져

양육했던 시절

엄마 마음의 사계절을

이해할 날이 오겠지.


그리고 엄마는

계절마다 부는 바람을

잘 견뎌야겠지.


아픈 칼바람이 불기도 하고

포근한 봄바람도 불며


우리가

의도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한

아름다운 정원이 가꿔졌을 때


그 정원에서

손잡고 걷고 싶다.


그날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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