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히 일부의 이야기, 아니 이제는 허구이길 바랍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담이다.
A회사 신입사원 시절, 제품에 대한 지식은 물론 가격, 시황 등은 전혀 모른 채 거래처에 던져지곤 했다. 신입을 키우는 나름의 전통이지만, 지금 생각해도 매우 터프한 교육법이라 생각한다.
“잘 봐, 이번달 우리 회사의 할인행사 품목은 이 다섯 가지야. 무려 10% 할인이라고! 자, 들어가서 이거 보여드리고 최소 100박스 주문 꼭 받아와야 해! 이거 못하면 이번달 매출 박살 나는 거야! 얼른 들어가!”
하지만 경력만 수십 년인 노련한 거래처 사장님들에게, 선배에게 등 떠밀려 들어온 신입사원은 사냥감 조차 되지 않는 인형 같은 존재일 뿐이었다.
“이게 뭐야? 10% 할인? 야, 당장 가락시장만 가도 20% 이상 싸게 가져올 수 있어! 그리고 이건 뭐 다 잘 안 나가는 품목들 뿐이잖아? 그러지 말고 거시기랑 저시기랑 뭐시기 이거를 차라리 할인 좀 해줘. 이것들 10% 할인해 주면 내가 이번달 너 매출 목표 다 맞춰 줄게!”
매번 위와 같은 끝없는 핑퐁 게임이 지속되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불리 해지는 건 매출이 줄기만 하는 나였다. 신입사원이라는 꽤 든든했던 면죄부도 어느덧 그 생명을 다라는 시점이 왔고, 매출 목표 달성률에 근거한 팀장님의 압박도 점점 거세어진다. 결국 한껏 목마른 나는 짜디 짠 바닷물을 마시고 만다.
“사장님, 그때 말씀하신 제품들 다 10% 할인 맞춰드릴게요. 대신 오늘 1,000만원 발주 꼭 해주세요!”
이 경우의 문제는 이렇다.
거래처는 1,000만원 금액에 맞춰 주문을 한다.
회사 시스템상 할인이 없는 품목이기 때문에 회사 장부에 발생한 매출은 약 1,100만원이다.(10% 할인 없음)
거래처는 물건을 받고, 약속한 1,000만원을 입금한다.
회사 시스템에는 약 100만원의 미수금이 남아있다.
이때의 미수금은 관리부서가 알아채고 문제 삼기 전에 스스로 마무리 지어야 한다. 물론 그 방법은 여러 가지다.
1) 상부에 솔직히 보고한다(물론 사전에 보고, 승인받고 진행하면 가장 좋다)
2) 샘플 등의 명목으로 제품을 구해, 이것을 거래처에 추가 매입 잡도록 한다(제품 금액만큼 입금)
3) 내 개인돈을 회사 계좌로, 거래처의 이름으로 입금한다.
1번은 사전 승인도 잘 안 날뿐더러, 사후 보고하게 되면 처리는 받더라도 크게 혼이 난다.
2번은 샘플 등의 제품을 구하기도 어렵고, 거래처에서 매입을 거절할 수도 있다.
3번은 어려울 것이 없다. 회사도 모르고, 거래처에 아쉬운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가장 해서는 안 되는 선택지다. 그 이유는 모두가 안다. 내 돈이 사라진다.
근무 기간이 늘어나고, 연차가 쌓이다 보면 각자의 해결 노하우는 분명 생긴다. 특히 A회사 출신의 직원들은 이런 경험들이 뼈저리게 많기 때문에 이 부분에 매우 특화되어 있다. 당시 업계에서는 A회사를 영업사관학교 라 부르며, 경력직 모집 시 인기가 매우 좋았다.
그럼에도 근무한 3년 동안 많은 금전 사고들이 있었다. 타 부서 모 선배는 억 단위 미수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한강에 투신을 했고, 지방의 어떤 후배는 차에 번개탄을 피웠다. 우리 팀이었던 L대리님은 퇴직금 한 푼 못 받고 권고 사직 당했다.
참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분명 모두 돈을 벌고자 회사에 취직해서 열심히 일을 하는데, 일할 수록 돈이 줄어들 수 있다니.
혹자는 일머리가 없기 때문이라 단순 치부할 수도 있지만, 당사자가 겪은 과정은 고통스럽고, 그 끝은 너무도 안타깝다. 최근에는 이런 일들이 거의 없고 회사 차원에서도 미연에 방지하고자 관리를 더 꼼꼼히 하고 매출 압박도 많이 줄었다고 한다. 아무쪼록 영업하는 모두가 실적을 위해 최소한 제 살을 깎지는 않기를 간절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