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첫 김장독립을 시작으로 이후 10년 넘게, 겨울이면 꼬박꼬박 월동준비의 일환으로 우리집 5인 가족이 먹을 김장김치를 담아왔다. 2010년 그해 봄, 갑작스런 사고로 아버님께서 하늘나라로 떠나시고, 어머님은 꽤 오랜 동안 힘들어 하셨다. 그래서였던지 그해 겨울 어머님은 이제 더 이상 아버님 댁에 모여 김장 담그는 것을 그만하자고 하셨다. 대신 각자 자기 집에서 김장 준비를 하면 오셔서 간 정도는 봐주시겠다며 자식들에게 각자 알아서 김장 독립할 것을 명하셨다.
아버님 살아생전에는 농사짓는 지인의 배추밭에서 직접 사다가 두 분이서 아파트 배란다에 큰 통 몇 개를 줄세워 밤새 100포기가 넘게 다듬어 절이셨다. 어머님은 밤새 잠도 못 주무시면서 배추를 뒤적여가며 절이는 일에 온 신경을 쓰셨다. 사실 김장중 가장 고된 일은 배추를 소금에 잘 절여서 깨끗이 씻어 물기 쪽 빠지게 채반에 차곡차곡 쌓는 일이긴 하다. 그렇게 100포기가 넘는 김장을 마무리하고 나면 어머님의 몸은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었다. 그만큼 대가족의 일년 먹거리를 준비하는 일은 고되고도 힘든 일이었다.
그땐 온 가족이 모여 시끌벅적하게 김장을 했었다. 출가한 아들 딸들이 넷, 거기에 아버님댁까지 다섯 가족이 먹을 김치를 담그는 일은 준비에서 마무리까지 상당히 고된 일이었다. 김장을 앞두고 어머님은 항상 긴장을 하셨드랬다. 매번 하는 김장에도 간이 잘 맞아야 할텐데...... 맛있게 담가야 할텐데....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배테랑 요리사인 어머님의 손맛은 항상 온 가족의 입맛을 사로잡고도 남았다.
그렇게 결혼후 10년 가까이 매년 어머님과 함께 김장김치를 해왔다. 어머님의 각자 알아서 김장하라는 통보에 어머님의 그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론 좀 서운하기도 했다. 매년 김장할때면 힘들기도 했지만 온 가족이 모여 하하호호 즐거운 가족 축제를 여는 것 같기도 했기 때문이다.
어깨 넘어 배우고, 익힌 10년 가까운 경험을 무기삼아, 첫 김장은 어머님 도움없이 우리 제비아빠와 둘이서 했다. 우리집에서 오장금이로 통하는 제비아빠만 있으면 웬만한 음식의 간은 문제없이 맞출수 있다. 아마도 그런 감각은 타고 난 것 같다.
배추15포기, 무10개, 홍갓1단, 청갓1단, 대파, 쪽파, 마늘, 생강, 새우젓, 고춧가루등 준비할 것도 많았다. 손수 양념에 쓰일 재료만 다듬고 빻고, 씻는 것만도 한나절이상 걸렸다. 큰 통이 없어 욕조에 비닐을 씌워 통큰 배추를 절이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그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오로시 내 손으로 준비하는 김장은 나름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이렇게나 힘든 일이었던가?
그간 어머님께서 몸살이 났던 이유를 제대로 알 것 같았다.
어쨌거나 첫 김장은 대성공이었다. 내 스스로 굉장히 뿌듯했던 순간이기도 했다. 우리집에 놀러온 아가씨들이 우리집 김치맛을 보고, 엄마 김치 맛이 난다고 극찬을 했으니, 그 맛은 말해 뭐해??
첫 김장독립이후 매년 절인배추를 사서 하는 김장은 직접 배추를 사서 절이던 때와 비교하면 실로 식은 죽 먹기다. 이제는 매년 60Kg의 절인 배추를 사서 어머님 드실 것까지 챙겨드릴만큼 솜씨도 늘고, 노련해졌다. 겨울이면 언제 김치를 담궈볼까?하고 여유도 부리며 김장 날짜를 잡는다. 세월따라 살림 짭밥도 꽤 늘었단 얘기다.
그런 내게 2023년 올해는 김장 김치 담그기로부터 완벽하게 해방되는 기적같은 한 해가 되었다. 작년에는 어머님께서 오랜만에 김장을 하고 싶다고 하시는 바람에 계획에 없던 김장김치를 담그느라 형부네서 김치를 택배로 받아들고서도 김장을 하는 묘한 상황이 벌어졌었다.
오랜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가 귀농 3년차인 형부와 언니가 손수 기른 재료들로 김장을 맛있게 해서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역시 택배로 보내주셨다. 20kg들이 아이스박스 세 개가 현관문 앞에서 나를 맞이하는데, 이렇게 기쁠수가 없었다.
작년에는 배추뿌리가 썩어들어가는 바람에, 배추농사를 망쳐서 언니네도 이웃에서 얻어다가 부족한 배추양을 채워 김장을 했다고 했다. 올해는 그런일 없도록 형부가 배추를 키우면서 어찌나 정성을 들였던지..... 올해는 또 배추가 너무 잘돼서 난리란다.
올해 성공한 배추농사
동네 이웃분들과 품앗이하듯 200여 포기가 넘게 김장을 했단다. 그 김치는 오빠네로, 동생네로, 우리집으로, 조카들집으로 또 형부의 형제들 집으로 그렇게 택배로 배달됐다.
“아이스박스 값하고, 택배비가 더 들겠어!”
언니가 우스개소리를 했다. 요새 김장김치는 아이스박스에 20Kg 규격을 지키지 않으면 받아주지도 않는다고 한다.
내년에는 날짜 잘 맞춰서 꼭 같이 하잔다.
그러마고 약속은 했다만, 그 먼길을 차막히는 주말에 달려갈 생각을 하니, 지금부터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울집에서 강원도 춘천까지는 멀기도 너무 멀다. 주말은 또 차가 얼마나 막히는지.
택배로 김장김치를 받는 일은 이제 흔히 볼 수 있는 김장철 풍경이다. 바쁜 자식들을 생각해서 보내는 부모님들의 따뜻한 정성이 깃든 사랑택배다. 김치를 손수 담궈보지 않은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 재료준비부터 김치가 완성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잔손이 필요한지 말이다. 또 절인배추 사이사이에 양념을 발라넣으면서 ‘맛있어야 할텐데...’ 하고 사이 사이에 그 바램도 함께 발라넣는다는 걸. 그만큼 맛있는 김치를 담그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짜지도 싱겁지도 않으면서 감칠맛 도는 딱 그 맛을 만들어내는 것은 수년간의 노하우가 함께 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리라.
김장김치를 택배로 받아들고 기뻤던 맘만큼이나 몸살이나 안났나 걱정이 앞섰다. 언니는 잡은 날이 하필이면 맵게 추운 날이여서 고생좀 했단다. 하지만 큰일 하나 끝내서 맘이 엄청 시원하다고 덧붙였다. 주부들에게 김장김치 담그는 일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숙제같은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