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쌀쌀하다. 강원도 북부산지 일대에는 오전부터 눈이 내리면서 17년만에 10월 대설특보가 발효됐다 한다. 10월에 첫눈이라니...단풍 대신 눈꽃을 예쁘게 입은 설산 풍경이 오늘 일인가 싶게 믿겨지질 않는다. 갑자기 겨울이 성큼 다가오는 듯 하다.
오늘은 소금 살짝 뿌려 김치냉장고에 보관중이던 참돔 머리를 촉촉하게 구웠다. 며칠 동안 먹을 기회가 없어서 언제 먹나하고 기회를 엿보다가 그날이 오늘이 된 셈이다. 제법 크기도 크고, 살집도 깊어 20여분을 앞뒤로 뒤집어 돌려가며 정성을 들였다.
생선 머리가 정말 맛 있을까? 어두일미란 사자성어가 진정 생선 머리의 '그 맛'의 진수를 품은 진정성있는 표현이긴 한걸까? 항상 궁금하긴 했다. 요즘이야 잘 손질된 생선을 구입하다 보니, 머리까지 요리에 쓸 기회는 별로 없다. 그리고 머리에 뭐 먹을 만한 살이 얼마나 있나 싶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데 오늘 상당히 큰 생선 머리를 구워서 먹다보니, 제법 살도 많고, 맛도 다양하다. 특히나 생선볼살이라 이컬어지는 부위의 살은 부드럽고, 촉촉하고 고소하니 제법 인상적이기까지 하다. 맛있다.
먹어보니, 어두일미! 빈 말은 아닌 것 같다.
한번은 오래전 미국에 이민가셔서 미국사람 다 된, 나에겐 시고모님이 되시는 큰 어른께서 한국에 오신 적이 있었다. 어머님께서는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손윗 시누님를 위해서 제법 큰 조기를 사서 손수 소금에 절이셨다. 물기 쪽 빼 꾸덕하게 살짝 말렸다가 시고모님께서 어머님 댁에 오시는 날 잘 구워 조기구이 한상을 준비하셨다. 시고모님은 그 조기를 정말 맛나게 잘 드셨다. 조기는 머리가 진짜 맛있다며 조기 몇마리를 완벽하게 머리까지 쪽쪽 발라드시는 걸 보고 내가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예전엔 이 머리를 더 바싹하게 구워 뼈까지 다 씹어먹었다며 농담까지 하셨다. 나야 그 맛을 알 수야 없지만 그 뒤로 어른들께서 조기 머리를 맛있다고 드시면 정말 맛있어서 드시는 것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오늘 또 큰 참돔 머리를 구워서 먹어보니, 생각보다 숨은 살들이 많아 제법 먹을성 있고, 곳곳의 숨은 살들의 맛이 제각각 다양하여 입맛 돋우니, 어두일미란 말의 뜻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먹어보니 그렇단 얘기다.
나 아주 어렸을 때 우리 아버지께서는 꼭 생선 눈알을 빼서 "이것 먹으면 눈이 좋아진다"시며 웃음기 가득 특별히 나에게 건내시며 생선 눈알을 챙겨주셨다. 내가 특별히 눈이 나빴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 비위가 좋았던 나는 생선 눈알을 잘도 받아먹었다. 맛보다도 그 독특한 식감에 호기심이 나서 그랬던 것 같다. 아마 아버지께선 그 맛도 없는 것을 싫어라 내빼지 않으며 내가 날름날름 잘 받아 먹으니, 그 효과보다 내 모습이 귀여워서 장난삼아 그려셨던 것 같다. 하지만 평생 안경없이 이 나이 되도록 편안하게 내 두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다 우리 아버지의 그 시절 살뜰한 보살핌 덕분이 아니가 싶다. ㅎㅎ
집에서 닭고기를 먹게 되는 날이면 꼭 닭목아지를 골라서 내게 건네셨다. 닭목아지를 먹으면 닭처럼 목청 좋아진다고 말이다. 역시나 비위가 좋았던 나는 닭목도 맛있게 잘도 받아먹었다. 그 덕에 나는 목청이 엄청 좋아져서? 매번 반공웅변대회에 학교를 대표해서 나가 크고 작은 상을 타날라 학교의 유명인사가 되기도 했었다. 다 아버지께서 챙겨주신 닭목아지 덕분이였으리라. ㅎㅎ
지금도 가끔은 가리는 것 없이 너무 잘 먹어 슬쩍 챙피해질라 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이 우리 아버지의 조기교육 덕분인가 싶어 웃음이 난다. 쓰다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생선머리 구워먹은 얘기하다 또 문득 나는 우리 아버지가 보고 싶어 진다.
우리 아버지께서 많이 바쁘신지, 꿈에도 한번 안놀러 오신다.
'아버지! 잘 지내고 계시죠?'
2022년 10월 24일 월요일 생선머리 구워먹고, 몇 글자 적다 문뜩 아버지가 보고 싶은 늘봄......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