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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 Dec 23. 2022

묵은지돼지갈비찜

그 진한 향에 난리가 나다 ㅎㅎ

잘 익은 묵은 김치가 택배로 왔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내 친구가 보내는 선물이다.

잘 익은 작년 김장김치가 똑 떨어진 지 한참이나 됐다. 그렇게 묵은 김치가 일찌감치 떨어지고 나니, 아쉬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런데 잘 익은 묵은 김치를 택배로 받아 드니, 그 어떤 선물보다 든든하니 좋았다.

헌데 문제는?? ㅎㅎ


오랜만에 돼지갈비를 사다 묵은지갈비찜을 준비하고자 이른 시간, 그러니까 오후 세시부터 저녁준비에 들어갔다. 날도 추우니까 미리 준비해 두고, 배고프다면 언제든 먹을 수 있게 하고파서 말이다.

오늘은 우리 제비아빠도 이른 퇴근으로 한가한 오후를 보내고 있으니, 저녁을 늦게 먹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통후추와 월계수잎을 넣은, 팔팔 끓는 물에 칼집을 골고루 넣어 돼지갈비를 튀기듯 데쳐낸다. 간장과 고춧가루를 베이스로 해서 빨간 간장양념을 준비해 데친 돼지갈비를 넣어 골고루 버무려준다. 이때 우리 집에선 한약재 하나를 넣어주는데, 옥죽이라고 하는, 시중에선 둥들레라고 하는 것인데 국물이 구수하고 맛이 참 좋아진다.  

 


그 위에 머리를 툭 쳐내고 길게 길게 잘라놓은 묵은 김치를 나란히 줄 세워 올린다. 묵은지가 제법 짭짤하고, 간간하다. 시원하고 아삭아삭하니, 그 깊은 맛에 고향의 향기가 묻어난다. 이곳에선 김치에 흔히 넣지 않는 청각까지 넣어 그 시원함을 배가시켰다. 김치에 들인 정성의 농도가 다르다.

대파도 길게 넉넉히 잘라서 역시나 나란히 올린다. 그리고 모든 재료가 자박자박하게 잠기도록 생수를 넉넉히 부어준다. 새우젓 한 숟가락 더 넣어 부족한 간을 채워준다.


자! 이제 가스불 위에 올려 돼지갈비와 묵은지가 푹 익도록 끓여주기만 하면 된다.

스멀스멀 국물이 끓어오르고, 냄비를 뚫고 그 증기가 후드팬을 파고든다. 오늘은 특별히 후드팬의 단수를 두어단 더 올렸다. 강력히 이 진한 향기를 부지런히 빨아들이라고 말이다.


각자 방에서 조용히 제 할 일에 바쁘던 두 남자가 약속이나 한 듯 거의 동시에 나온다!

큰아들  : "엄마! 뭐 하세요? 이거 무슨 냄새예요?"

제비아빠 : "아니, 이게 무슨 냄새야? 이 시간에 된장찌개 끓여? 청국장인가?"

 엄마 : " 어, 연하가 묵은지 떨어졌다 했더니, 김치를 보내왔잖아.  

         그래서 오랜만에 묵은지 넣고 돼지갈비찜 할려고! 냄새 많이나?"

큰아들 : "엄마 이건 전주할머니네 집 냄샌데요? 으악" 이 녀석 코를 막고 쇼를 한다.

엄마 : "너 이리 와! 장난해? 한 대 맞을래?"

아들래미가 선수를 치니 제비아빠 조용히 입을 닫는다.


이거 이거 예상했던 반응이다. 아니 그보다 과하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바로 가스렌즈의 불을 끄고 다용도실  김지냉장고 위에 신문지를 깔고,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켜고 냄비를 올린다. 그리고 창문을 활짝 연다. 처음부터 이렇게 했어야 했다. 내 입엔 익숙한 맛이고, 고향의 향기인지라! 또 코로나 이후 후각이 둔해져서 웬만해선 내 코감각을 자극하지 않는지라. 한데 냄새라면 질색팔색, 특히나 젓갈 많이 들어간 음식엔 더 과한 반응을 보이는 우리 제비아빠를 깜빡했다.ㅎㅎ


황석어젓갈을 손수 담그고 끓여서 준비하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으시는 내 친구의 친정엄마 김치에서는 그 정성과 손맛이 잘 숙성되어 전라도 김치 특유의 진한 감칠맛과 그보다도 더 진한 젓갈냄새가 났다. 나야 어려서부터 먹던 맛이니 잘 모르겠다만. 우리 큰아들이 전주할머니 집 냄새가 난다는 표현은 그 진한 젓갈맛을 이르는 것이다. 엄마가 끓여주시는 진한 돼지고기김치찌개에서는 항상 이 비슷한 냄새가 났다. 다들 맛있다고 난리인 그 진한 국물맛이 우리 제비아빠에게는 항상 제 코에 심하게 거슬리는 냄새였다. 그런 냄새를 오랜만에 우리 집 거실에서 맡게 되니 첨엔 그 정체가 아리송했겠지. 된장찌개? 청국장?


황당하긴 나도 마찬가지. 아니 김치를 넣고 끓이는데?? 청국장까지 소환될 일인가? 젓갈이 곰삭아 끓이다 보니 그런 찐한 냄새가 났나 보다. 하여튼 창문은 활짝 열고, 다용도 실에서 진한 국물이 자작하게 배어들도록 돼지갈비가 소리도 황홀하게 보글보글 바글바글 거렸다.

보글보글 바글바글 끓는다! 끓어!


일찍이 우리 제비아빠의 예민함을 전해 들은 내 친구는 전라도김치 다들 맛있다고 난린데, 혹 냄새난다고 하면 우리 집에서 보냈다고 하자마라고 농담을 건넸다. 내 친구도 자기네 김치에서 젓갈냄새 많이 나는지 잘 모르겠다며. ㅎㅎ


작년에 30 포기나 한 우리집 김장 김치가 온데간데없다 했더니, 깜짝이나 놀랜다. 내 친구네는 거의 집에서 밥 먹을 일이 없어 작년 김장김치가 그대로 남아있다며 내게 보내준 것이다. 주말부부에 두 딸이 대학생이니, 집에서 김치 반찬 삼아 먹을 일이 얼마나 있겠나 싶기도 해 그 사정이 이해는 갔다.


우리집은 식구수에 비해 유독 김치소비량이 상당한 편이다. 이런저런 음식으로 활용해 먹다 보니 그렇기는 하다. 코로나까지 겹친 근래 몇 년은 쌀소비도 김치소비도 각종 식재료들의 소비도 엄청났었다. 올해는 언니네서, 어머님네서 그나마 남는 김치를 가져다 먹는 바람에 넉넉하게 김치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냄새에는 그 난리 더니, 완성된 묵은지돼지갈비찜에는 맛있다고 칭찬이 늘어진다.

김치에서 아까보다 냄새가 덜하다며, 김치도, 돼지갈비도 간이 잘 배었단다. 돼지갈비가 아주 맛있어서 김치 빼고 했으면 더 좋았겠단다. 그 말 즉은 역시나 묵은지의 향이 너무 진하다는 말을 예의상 돌려하는 것이리라.

"난 전라도 김치랑은 안 맞아! 미안한데 담엔 좀 빼줘!" 울 제비아빠의 말이다.


내가 우리 엄마의 그 맛난 김치를 두고도 매년 손수 김장김치를 해온 배경이기도 하다. 김장김치 안 해도 될 누구네 집 둘째 딸이  남편을 아주 잘 맞나 매년 김장김치를 해오다 이제는 하산해도 될 만큼 김치고수? 가 되었다는 거짓말 같은 썰을 풀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온 감각이 예민한 사람과 모든 감각이 상당히 둔한 사람이 한 공간 안에서 살아간다는 건 참으로 고된 일이기도 하다. 서로에게 말이다.


특히나 맛있으라고 넣은 멸치 액젓 한 숟가락, 조선간장 한 숟가락, 새우젓 몇 마리에  못 먹겠다고, 냄새난다고 밀어낼 땐 "이거 똘아이 아냐?" 싶어 화가 불끈불끈했던 젊은 시절의 나도 있었다. 그 시절을 겪어내고 이제는 제법 비슷한 음식 취향을 갖게 되었다. 가끔은 엄마의 진한 젓갈맛이 나에게도 거슬릴 때가 있다. 나도 그렇게 세월 따라 옆사람 따라 변해 왔다. 그 역시도 나를 따라 조금은 무뎌지고, 여유로워진 면도 있겠지.


지금은 자기 엄마의 파김치보다, 장모님의 파김치가 진짜 일품이라고 엄지 척 하는 걸 보면 이제 조금은 그런 젓갈맛에 익숙도 해졌으리라. 특히나 우리 엄마는 둘째 사위의 그 예민함을 알아 거의 젓갈을 안 넣었다고 하시는데도 손에 밴 오랜 습관을 버리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나 음식을 만드는 취향은 그리 쉽게 변하질 않는다.


우리 제비아빠가 갖고 있는 예민함은 나를 참 힘들게도 하고, 불편하게도 하고 그랬다. 역으로 나의 그 반대되는 성향이 또 그를 나처럼 힘들게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오랜동안 살다보니, 예민하고 섬세하고 까탈스러움은 나름 좋은 장점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기다움을 찾고, 지키고 인정받는데 이만한 것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지극히 그러지 못한 성향의 내가 지극히 주관적인 결론에서 하는 말이긴 하지만. ㅎㅎ


올해는 눈이 참 많이 온다.

이제 올 한해도 얼마남지 않았다.

이렇게 지극히 사적인 개인적 넉두리로, 한잠 자고 일어나서도 언제든지 이 공간을 채워나갈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 참 좋다. 브런치를 처음 만난 것이 지난 6월 30일이었으니, 이곳에서도 나의 시간이 꽤 흘렀다.

나에게만 의미 있는 이 사소한 기록들이 조금씩 쌓였다.


내가 또 이렇게 무엇을 쌓아갈 수 있을까?

고민을 해본다.

묵은지돼지갈비찜 한대접이올시다.

그리고 올해로 10회를 맞이했단다.

브런치북 프로젝트가 말이다. 작년엔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올해는 그 참가자들의 수를 보니 엄청나 보였다. 아마도 글재주를 가진 분들이 그마만큼 많았다는 뜻일 것이다.

수장자들을 보고 많이 아쉬웠다.

혹시나 내가 좋아하고, 또 즐겨읽는 분들중에 누군가 좋은 소식의 주인공이 되었을까? 싶어 설레는 마음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보았다. 혹시나 놓쳤나 싶어 두어번은 더 봤다.

그런데 한분도 없었다. 그래서 조금은 많이 아쉽고 또 아쉬웠다.

아~~~ 아쉽다!

출판사의 성향과 안맞았나보다.

수상작을 하나씩 끌리는대로 읽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들도 이에 못지 않은데??

쭉~~ 죄다 읽어봐야 겠다.

수상작들은 뭐가 다른지....ㅋㅋㅋ


어허!

뭔 얘기하다 여기까지 왔남?

주절대는게 장점인 늘봄!  12월 22일과 23일 사이 쓰다. 쓸데없는 얘기를......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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