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 밥을 짓고, 밥상을 차리고, 밥 먹는 일은 나에게 숨 쉬는 것과 마찬가지로 특별할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일상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그 일상을 기록으로 채워나갈 땐, 밥 짓는 시간보다 글 짓는 그 시간이 나에게 참 뿌듯하고 좋았다.
한상 떡하니 차렸다가 온 가족이 둘러앉아 도란도란 후다닥 먹고 나면, 흔적 없이 사라지는 한상이요, 한 끼요, 한순간들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들을 종종 기록으로 남겨두었더니, 오랜만에 와서 오늘, 그간의 기록들을 사진으로 만나니, 참으로 흡족했다. 우리가 이렇게 풍요롭고 건강한 밥상으로 하루하루를 채워왔었구나 싶어서 말이다.
한편으론 이런 수고로운 시간들이 있었기에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게 엄마, 아빠의 그늘 아래서 훌쩍훌쩍 마법처럼 잘 자라고 있었던게지 싶어 마음 한켠에선 뿌듯함이 몽글몽글 피어난다. 이 또한 어설프긴 하지만 기록으로 남겨두었기에 빠져드는 감상, 가능한 일 아니겠는가?
기록은 잠시 쉬었어도 밥 짓는 일상은 멈출 수가 없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밥 잘 먹는 우리 큰아들이 집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니, 예전처럼 밥 할 맛이 좀 안 난다는?? ㅎㅎ
주말마다 집에 와서 하는 투정이 밥투정이다. 기숙사밥이 정말 맛이 없단다. 학식도 예외는 아니란다. 그 가격에 그 밥이면 감사히 먹으라 혼을 내곤 한다.
비가 추적 주척 내리는 월요일 아침이다. 아들들은 한밤중이고, 부지런쟁이 꼬맹이만 일찍 일어나 아침을 찾는다. 오늘은 상큼한 샐러드로 휴일 아침을 시작해 보시겠단다.
냉장고 속 야채를 있는 대로 꺼내어 깨끗하게 씻어 준비한다.오이, 상추, 노랑, 빨강 파프리카 2종, 삶은 계란.주말에 집을 비웠더니, 다 떨어진 과일이 아쉽다.
예쁘게 잘라 모양내어 그릇에 담아 소스를 쫘악 뿌리려는 찰라, 잠깐만요!
요 아가씨는 샐러드를 소스에 찍어 드시겠단다. 잉? 고개가 절로 갸우뚱해진다.
소스를 살짝 찍어 맛을 본다.
샐러드를 소스에 찍어드시겠다? ㅎㅎ
소스를 손수 준비한 센스쟁이 아가씨!
플레인 요구르트, 마요네즈, 꿀, 진간장, 레몬즙, 참기름 한방울..... 무슨 조합이지?
어라? 맛도 향도 고개가 갸우뚱뚱 해진다.
"누구 레시피야?"
자기가 하고픈대로 해봤단다.
그래, 찍어먹겠단 이유가 다 있었던 것이다.
플레인요구르트에 꿀 쫘르르 흘려서 쫘악 뿌려먹어도 맛있을 샐러드가 어째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냥 허니머스타드소스만 뿌려도 이보단 나았을 터인데....하지만 우리집 꼬마 아가씨는 군소리없이 한접시 다 비우고 배가 부르시단다. ㅎㅎ
아들들을 위해선 통조림꽁치 한 캔 딴다.
제철 양파를 15kg 한 망 사두었더니, 맘이 뿌듯하다.
그런 이유로 매끼마다 양파 호사를 누린다.
큼직한 한알 까서 잘게 채 썰어 바닥에 넉넉히 깐다.
그 위로 묵은 김치 종종 히 올리고, 마지막으로 통조림 꽁치와 국물을 한 톨 남김없이 탈탈 털어 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