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사는 24가지 지혜
# 조언이 통하지 않는 근본적 이유
조언은 나에게는 맞을지 몰라도 타인에게는 맞지 않습니다. 이는 뇌가 경험을 저장하는 방식과 관련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경험은 의식이 없던 어린 시절의 경험부터, 가까운 사람들의 경험, 그리고 모든 감각을 통해 전달된 의식적/무의식적 경험 모두를 포함합니다.
부모님에게 받은 유전 인자는 태어날 때부터 무의식에 자동적으로 저장됩니다. 게다가 어렸을 때 자주 보고 듣고 느낀 환경, 즉 집안 분위기, 나고 자란 지역의 특성, 태어난 나라의 문화 또한 우리도 모르게 무의식에 강하게 심어집니다.
내 삶을 둘러싼 주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도 무의식을 강하게 채우는 요소입니다. 원하지 않아도 많이 듣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본 모습들이 우리의 무의식에 깊게 자리 잡는 것입니다.
성인이 된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이끄는 것도 어렸을 때 형성된 무의식의 믿음들입니다. 우리는 삶이 크게 불편하거나 힘들지 않으면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좋든 싫든 무의식적 사고에 현재의 생각과 행동을 맡깁니다. 이러한 형성 과정으로 인해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정체성이 다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타인의 무의식에 영향을 준 요소를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한,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도 어렵고 이해시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히 우리 뇌 안에는 거울신경이 있어 다른 사람의 처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 덕분에 우리가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타인의 경험을 조금 이해하고 느낄 수 있을 뿐입니다.
# 깨달음을 준 러시아 선생님의 조언
새로운 학교에서 러시아에서 15년 정도 학생을 가르치다 러시아 – 우크라이나 사태로 한국에 오신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오랜 해외 생활 탓인지 그분에게 한국 문화는 무척 생소하게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외국에서 오래 생활한 분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마인드가 한국 사람 같지 않다는 것인데, 그분도 그러했습니다.
서로 느낌이 통했는지 저도 그분을 좋게 보았고, 그분도 저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보셨습니다. 나중에서야 깨달았습니다. 제가 너무 많은 조언을 한꺼번에 쏟아냈다는 것을요. 물어본 것만 이야기했어도 충분했을 텐데, 그분을 위한다는 마음에 학교생활에 관한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을 '조언'이라는 이름으로 드린 것입니다.
한국 사람 같았으면 마음은 상했더라도 한 귀로 듣고 흘려버렸을 얘기였지만, 그분은 필터를 거치지 않고 바로 상한 마음을 저에게 이야기하셨습니다. 당시 저에게는 관계를 끊었을 만큼 센 표현이었지만, 감정의 동요가 하나도 일렁이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책을 읽지 않았다면 관계를 끊었을 수도 있었죠. 그러나 저는 그분의 무의식에 영향을 준 환경이 어떠했을지 추측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서운하지도, 화가 나지도 않았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가장 친한 선생님이시고 아침에 만나면 우리 둘만의 인사로 서로를 안아 줍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너무 내 위주로 조언을 했구나. 다를 수도 있는데.' 그리고 기다렸습니다. 그분이 직접 부딪쳐서 느끼실 때까지, 그 시간 또한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한 학기가 끝나기도 전에 그분은 "선생님이 진짜 저를 위해 해준 조언이라는 것을 그때는 미처 몰랐다"며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농담처럼 한마디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관계를 끊었을 텐데 선생님이라서 괜찮았어요."라고요.
#시대에 맞지 않는 진화론적 착각
우리는 타인이 원하지도 않고 타인에 관한 성장 스토리도 모르면서 조언이라는 이름으로 상대방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주려고 합니다. 이 행동은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원시시대에는 생존에 필수적인 정보(어떤 열매를 먹거나 먹지 말아야 하는지, 어떤 맹수를 피해야 하는지 등)가 개인의 경험에서 나왔고, 그 정보는 집단 전체의 생존과 직결되었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생존에 도움이 됐던 정보가 타인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강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이처럼 생존에 유리했던 습성이 현대까지 남아, 우리는 조언을 통해 은연중에 집단의 안전을 도모하려 본능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놓치는 사실이 있습니다. 옛날 원시 시대 때는 나의 정체성이나 다른 사람의 정체성이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는 생활 환경이 극도로 제한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같은 동굴에서 태어나, 같은 부족에게 배우고, 같은 환경에 노출되어 나에게 영향을 준 요소나 타인이 받은 요소가 거의 같았기 때문이죠. 또한, 정보 역시 각자의 상황에 맞는 정보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생존에 필요한 그러한 정보만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그때와는 아주 다릅니다. 세상의 인구 숫자만큼 각자가 가진 사정이 존재하며, 사람의 정체성 또한 세계 인구의 숫자만큼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맥상통하는 정보나 믿음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있다고 착각할 뿐입니다.
그렇다고 조언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닙니다. 타인이 원할 때,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만큼만 진심을 담아 전해주면 됩니다. 우리가 할 일은 딱 여기, 요청받은 곳까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