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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 (빈틈의 온기)

당신이 필요해요

by 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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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특성 중 하나는 무엇이든 대체 가능하다는 점이니까. 토스터와 칫솔은 물론이고, 나 자신조차도. 내가 아니어도 다른 누군가가 나를 대신할 수 있다는 것, 내가 빠져도 전체적으로는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나’들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다

<빈틈의 온기> 중에서

신입직원이었을 때의 일이다. 휴가를 가기 전 자리를 비운 사이에 찾을지도 모를 일들을 정리해 인수인계하며 '혹시'라도 발생할 상황에 대해 걱정을 하니 선배가 한마디 했다. "그냥 편하게 다녀와. 회사 잘 돌아가니까 걱정말고." 그 말에 고마움과 함께 설레발을 친 것 같아 머쓱했더랬다. 그리고 3일의 짧은 휴가를 다녀왔을 때 내 업무를 찾은 사람이 없었음을 알고 안도와 함께 허전함을 느꼈던 묘한 순간을 마주하기도 했다.

친구 H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집안일로 얼마간 자리를 비워야했을때 이런저런 걱정이 많았는데, 복귀했을 때 너무도 멀쩡하게 돌아가는 업무를 보고 자신의 역할에 대해 곰곰이 따져보게 되었다고 말이다.

그리고 어느샌가 우리는 농담처럼 말하게 되었다.

"내가 없어도 회사는 잘 돌아가더라. 어쩌면 더 잘 돌아갈지도 모르지?"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가는 시스템. 조직의 입장에서는 바람직한 일일테고 개인에게도 그런 시스템이 받쳐주는 곳에서 일하는 것이 효율적인 일일테다. 그럼에도 자신의필요를 확인받는 것이 때로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내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면 저자의 말처럼 세상의 모든 '나'에게는 너무 가혹한 일일테니까.

그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부터 동료가 휴가를 갈 때면 휴가 전에는 걱정말고 편히 다녀오라고 말하지만, 복귀했을 때는 어찌나 빈자리가 크던지 보고싶었다(!)고 말하곤 했다(물론 모두에게 이렇게 말하지는 못한다ㅎㅎ).

"아, J씨 없는 동안 업무가 잘 안돌아갔다니까!"

그러면 상대방도 "아, 정말 이 팀은 나 없으면 안되는거 아니야?" 투덜대면서도 내심 흐뭇해 한다.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어떤 상황에서라도 '당신이 필요'하다는 그 말을 듣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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