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 제주살이를 준비하며 (part2. 제주, 딱 기다려!)
“우리 다음에는 제주에서 한 번 살아볼까?”
2016년 1년간의 미국살이를 마무리하며 남편과 나누었던 대화였다. 솔직히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 번 더 낯선 외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보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1년의 휴직을 얻어 방학 같은 시간을 맞이한 나와 달리 연구실에 나가 일을 해야 했던 남편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듯싶다. 하긴 그 자체만으로도 녹록지 않은 타지살이인데, 거기에 교통사고까지 겹쳐 미국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다는 병원 가기와 보험 처리까지 의도치 않게 마스터해야 했으니 그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을지는 상상이 된다. 당사자가 아닌 나 역시 함께 병원을 오가고 보험 처리를 하며, 예상치 못했던 문화의 차이(미국이면 우리나라와 비슷하리라 여겼건만!)와 예상은 했으나 생각보다 높았던 영어의 장벽 앞에서 긴장하곤 했다. 게다가 행여 전화라도 오면 “Please speak slowly”를 대화의 기본으로 장착하고 귀를 쫑긋하고 대응하곤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외국에서의 생활은 자연스레 한 번으로 족한 것으로 마무리되었지만 그렇다고 또 다른 기회를 놓치기는 아까웠던 우리는 두 번째 해외(海外)살이 목적지로 제주도를 물망에 올리고 요모조모 따져보기 시작했다. 오! 제주라니, 솔깃한데? 제주, 우리나라지만 바다 건너 가는 곳. 처음 제주를 여행했을 때 공항 출입문을 나서는 내 눈에 들어온 열대식물을 보며, 여기 우리나라 맞아? 촌스럽게도 두리번두리번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는 곳이다. 남편의 말을 빌자면 말이 통하는(아주 중요한 요소다!) 가장 먼 곳 아닌가! 바다를 건너 섬으로 들어선다는 것도, 또 인터넷 검색만 해도 ‘제주살이’, ‘한 달 살기’, ‘일 년 살기’ 관련 포스팅이 주르르 딸려 나오는 것도 제주에 대한 호기심과 조금의 환상을 배가시켰다. 이런 곳에서 여행이 아닌 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외국과는 달리 휴직이 불가능했기에 나의 퇴사가 전제되어야 했던 터라 선뜻 결정을 하지 못했다. 게다가 처음 ‘제주’를 입에 올렸을 때만 해도 나의 인생 달력에서 ‘퇴사’는 한참 달력을 넘겨야 다다르는 일정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런데 제주(濟州)가 나를 끌어당기는 재주가 있었던 걸까? 여러 가지 일들이 차곡차곡 겹쳐지며 나의 목표보다 몇 해 빠르게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고 우리의 제주행은 급물살을 탄 듯 흘러가기 시작했다.
먼저, 집을 구해야 했다. 어쨌거나 살 곳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당초 우리가 1년살이의 터전으로 정한 곳은 제주시 ‘애월’이었다. 남편이 1년간 출퇴근해야 하는 회사를 기준으로 지역을 정하다 보니 자연스레 서귀포시가 아닌 제주시에서 집을 찾게 되었고 다시 서쪽이냐, 동쪽이냐로 고민하다가 서쪽은 주거, 동쪽은 관광지 중심이라는 말에 서쪽, 그 중 ‘애월’에서 집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러하듯 계획한 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 법, 거의 6개월 가까이 마음에 두고 연세 매물이 나오기를 바랬던 타운하우스가 아닌 제주의 동쪽 ‘조천’에서 이렇게 글을 끄적이고 있는 것이 어쩌면 제주살이의 최대 반전이었달까?
집이 정해지고 나니 어느새 ‘우리’ 동네가 된 그곳이 궁금해졌다. 미국살이를 준비할 때도 그랬지만 지도를 펼쳐두고 그 지역을 가늠하는 것은 내게 큰 즐거움 중 하나다. 이 길을 따라 걸으면 예쁜 카페에 닿을 수 있구나, 이 길은 편의점으로 연결되니 소소한 물품은 여기서 살 수 있겠네, 혼자 동네 구경이라도 하듯 지도를 훑어보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그렇게 지도 위에서 보물찾기하듯 동네 나들이를 하다가 자박자박 편히 걸어갈 수 있는 곳의 동네 책방이며, 카페, 식당, 편의점들을 색색의 동그라미로 표시해 나만의 동네 보물 지도를 만들었다. 제주 ‘우리 동네’에 가면 이 지도를 들고 마을 산책을 나설 것이다. 혼자 내적 친밀감을 높인 장소들을 들러 반가이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하면서 말이다. 제주! 내가 간다! 딱 기다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