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류학적 소설' 장르 아시나요?

- 『나는 지구가 아프다』를 읽고

by 사각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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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이음출판사 서포터즈 활동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자신의 책에 새로운 (문학) 장르를 만들어 소개하는 것에는 명확한 의도가 있다. 바로 기존의 장르가 다루지 않은, 혹은 다룰 수 없는 부분을 작가가 다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새로운 장르의 시발점이 되는 책이나 선언문에게는 급진적이면서 실험적인 아이디어가 있다. 이 점이 독자에게 매력적인 부분이다.

브뤼노 라투르의 제자이자 『녹색 계급의 출현』의 저자인 니콜라이 슐츠는, 자신의 소설 『나는 지구가 아프다』을 "문화인류학적 소설(ethnografictive)"라 소개한다.

So, to sum up, the book is something like an “auto-ethnografictive” travelogue to an ecologically threatened island, inquiring some of the existential and social transformations of the human being and society, in a time where these are violently re-configurated.
요약하자면, 이 책은 생태적으로 위협받는 섬으로 떠나는 "자기-문화인류학적(auto-ethnografictive)" 여행기 같은 것입니다. 인간과 사회가 폭력적으로 재구성되고 있는 이 시대에, 인간 존재와 사회의 실존적·사회적 변화를 탐구하는 시도죠.
- 2023년 니코 슐츠 인터뷰에서 발췌
https://www.academia.edu/112662956/Ecological_Crisis_and_Land_Sickness_An_Interview_with_Nikolaj_Schultz

그렇다면 대체 어떤 특징을 가졌기에, 이 책을 문화인류학적 소설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것인가?



니콜라이 슐츠는 인류세(Anthropocene)가 만들어 낸 새로운 세계를 조명한다. 열대야 때문에 좋은 잠자리를 가진 기억이 나지 않는, 주인공 '나'는 새로운 실존적 위기를 맞이한다.

'나 혼자서만 for myself' 사는 게 아닌 건 고사하고 '다른 이를 통해서만 from others' 존재 가능한 것이 우리네 실존이다.
- 19p

인간과 비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들과 얽힘 속에서 자신의 존재가 가능함을 깨닫는다. (이에 대해서는 라투르의 ANT를 참고하라.) 즉 소설의 표현대로 실존의 문제는 탈중심화되어, 나라는 존재가 어떤 존재의 생사여부까지 건드는 문제로 전환된다. 인간과 비인간을 아우르는 전지구적 네트워크에서 '나'는 지구의 모든 행위자와 연결되었고 그들의 고통은 곧 나의 고통이 된다.

이 실존적 문제는 제목과도 연결된다. 먼저 한국어 제목 "나는 지구가 아프다."는 얼핏 보면 비문처럼 보인다. 주어가 병치된 이 문장은, 나와 지구가 엮인 존재이고 지구가 겪는 고통을 야기한 존재이자 같이 고통을 겪는 존재임을 시사한다.

그 후 원서 제목 "땅멀미(Mal de Terre)"는 지구의 아픔이자 실존적 위기를 겪는 '나'의 아픔을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작중 '나'는 땅멀미를 끊임없이 겪는다. 바로 땅멀미를 겪는 순간순간 '나'가 무엇을 보고 생각했는지를 주목하며 독서한다면 무척 흥미로울 것이다.


이렇듯 새로운 실존 개념과 실존적 위기는 범지구적 네트워크에서 비롯되기에, 저자 니콜라이 슐츠는 이 새로운 개념과 위기를 분석하고 기록하기 위해 문화인류학적(민족지학적) 방법론을 취한다.

주인공 '나'는 폭염과 열대야 속의 파리에서 도피하여, 섬에 도달한다. '나'는 섬에서 다양한 인물과 환경을 마주하며 지구가 어떻게 소비되고 고통받는지 분석한다. 다시 말해 인류학자처럼 현지 조사를 한다. 배경이 되는 포르크롤 섬은 파리에서 도피할 당시에는 낙원으로 보였으나, 이 섬 역시도 여러 갈등에 휘말리며 파괴되는 모습을 그대로 독자에게 노출시킨다.


인류세 시대의 충격적인 현상들. 저자는 이러한 자신의 철학적, 과학적 개념을 전달하기 위해 자전적 수기 형식을 채택했다.

나는 이 책의 서사를 통해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 관찰한 것들, 그 과정에서 느낀 감정과 든 생각을 토대로 철학과 사회학의 영역에서 제기되는 몇 개의 수수께끼들을 풀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분석과 문체, 서사적 접근이 필요하다
- 151p (감사의 말 中)

독자들에게 이 내용을 전달하고 더 나아가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 딱딱한 학술적 용어가 아닌 일상적인 문체를 저자는 필요로 한다. 당연하겠지만, 어려운 용어가 난무한 책은 독자들이 첫 페이지만 읽고 바로 덮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넓은 의미에서의 이론-픽션(Theory-Fiction)이라고 봐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론-픽션 쪽의 CCRU가 탈영토화를 주장하는 반면에, 라투르는 지구적(가이아적) 재영토화를 주장한다. 이 책에서도 "더불어 살기의 원리를 중심에 놓는 새로운 구체적 성찰"(p.39)을 추구하고 있다. 즉, 이 책은 새로운 실존의 관계 속에서 더불어 살고자 노력하고 있는 주인공 '나'의 이야기다.


문화인류학적 소설은 이처럼 자전적 이야기 속에 담긴 내용을 독자들이 받아들이고 실천하고자 만든다. 결말부에 주인공 '나'는 문화인류학적 방법론으로 끝끝내 새로운 실천의 방법을 찾는다. 그리고 독자에게도 참여를 요구하듯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탈로 칼비노)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구절의 내용은 직접 책을 읽어보시길, 이 내용 역시도 흥미롭다.) 책에서 칼비노의 책은 "책을 이해하려면 맨 끝에서부터 읽어야 한다는 것"(p.127)

스크린샷 2025-11-04 132437.png 『지구공학 이후』(홀리 진 벅), 21p

이러한 실천적 참여에 대해 흥미로운 특징은, 최근 읽은 인류세 관련 책『지구공학 이후』(홀리 진 벅)에서도 비슷한 점을 발견한다. 거꾸로 읽어야 이해할 수 있는 책, 여러 갈래로 나뉜 하이퍼텍스트 독서. 이러한 독서법은 에스판 올셋이 말한 에르고딕의 특징을 잘 나타나고 있다. 단순히 글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 능동적으로 길을 개척하는 독서법은 인류세 시대에 독자로 하여금 직접 실천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164쪽의 짧은 중편 소설이었지만, 무척 흥미롭게 읽었다. 2025년 지금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코로나-19 내용도 담고 있어, 비록 어려운 내용을 함유하고 있다 해도 쉽게 읽을 듯하다. 게다가 읽으면서 발견하는 이 책만의―'문화인류학적 소설' 장르로서의― 특징은 비록 짧은 내용이더라도 집중해서 독서할 수 있게 만든다.


기후위기 시대에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다양한 답변이 있을 것이지만, 분명히 니콜라이 슐츠의 『나는 지구가 아프다』는 훌륭한 모범답안이 될 것이다.



2023063001032512310001_b.jpg 니콜라이 슐츠, https://www.munhwa.com/article/11369207

『나는 지구가 아프다』

지은이: 니콜라이 슐츠 / 옮긴이: 성기완 / 출판사: 이음


한줄평: 인류세에 새롭게 정의된 "실존"으로부터의 이야기

별점: ★★★★ (4.0 / 5.0)



추신)

이 책을 흥미롭게 읽었다면 다음 책도 읽어보세요.

1.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방법』(브뤼노 라투르)

http://aladin.kr/p/fyXj2

2. 『가까스로-있음 - 브뤼노 라투르와 파국의 존재론』(김홍중)

http://aladin.kr/p/OCaoy

3. 『녹색 계급의 출현』(브뤼노 라투르, 니콜라이 슐츠)

http://aladin.kr/p/HPb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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