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를 보면 사람도 보인다

- 『사람이 벌레라니』를 읽고

by 사각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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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이음출판사 서포터즈 활동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사람이 벌레라니, 도발적인 제목으로 이 책은 시작한다. 독자는 카프카의 『변신』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자인 이준호 교수는 이러한 벌레―인간의 등장 예측을 철저히 부순다. 대신 현미경을 가져오고, 1mm 크기의 작은 벌레를 보여준다. 이 벌레는 바로 책의 주인공인 예쁜꼬마선충이다.

이름부터 '예쁜'과 '꼬마', 심지어 학명(Caenorhabditis elegans)에도 '우아하다(elegans)'는 수식어는 이 벌레의 매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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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꼬마선충은 2~4주에 불과한 짧은 생애는 여러 세대에 걸친 연구를 가능하게 한다. 게다가 투명한 몸은 생애의 모든 과정을 숨김없이 보여준다. 더불어 자웅동체이기에, 단 한 마리만으로도 온전한 후손을 퍼뜨릴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연구자들에게 압도적인 장점을 제공했다. 실제로 예쁜꼬마선충의 유전체와 신경 세포 지도가 완전히 밝혀졌으며, 세포 하나하나의 운명을 기록한 계보도 완성되었다. 흥미롭게도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의 전 단계 역시 바로 이 작은 벌레였다.

놀랍게도 유전체의 결과에 따르면, "유전자의 수는 인간이나 선충이나 거의 2만 개 정도 되는데, 그중 절반 정도는 사람에게도 잇고 선충에게도 있다."(p.22)

그렇기에 예쁜꼬마선충은 의학과 생명공학 분야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2002년을 시작으로 2006년, 2008년, 그리고 2024년까지, 무려 네 번의 노벨상의 주인공이 바로 이 작고 이쁜 벌레다.

이제 '사람이 벌레라니'라는 제목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 유전자의 절반을 공유하고 있는 존재, 우리의 건강과 생리현상의 이해를 돕는 존재. 그 존재가 바로 예쁜꼬마선충이다.

그래서 선충에서 진실인 것이 사람에게도 진실일 수 있다는 희망이 선충을 생물학의 총아로 만들어준 것이다.
- 150p



이 책은 다 큰 어른의 자식사랑과 같았다. 자식이 얼마나 이쁜지, 그리고 자식과의 다양한 추억을 자랑하는 자식바보 어른. 이 교수님이 예쁜꼬마선충을 대하는 태도가 꼭 닮았다. 앞서 소개한 예쁜꼬마선충은 세발의 피에 불과하다. 예쁜꼬마선충의 생애에 대해 많은 것들을 소개한다.

부디 독자들께서 예쁜꼬마선충의 하찮은 이야기이지만 예쁜꼬마선충에 대한 입문서로서 재미있게 읽어 주시길 바란다. 그리고 이 책을 덮을 때는 예쁜꼬마선충이 정말 예쁘구나라고 느끼시길 기대해 본다.
- 12p
2025_09_18 오후 7_38 Office Lens.jpg 26페이지의 삽화

예를 들어 통상적인 성장 루트라면, 제1 유충기에서 시작해 제4 유충기를 거쳐 성체가 된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이라면 예쁜꼬마선충은 생존을 위해 "극적인 변화를 진행하게 된다. 즉, 발생의 끝에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몸을 변화시켜 다우어라고 하는 3기 유충으로 돌아가는 것이다."(p. 28) 인간과 다른 특이한 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자손을 더 멀리 퍼뜨리기 위해 '닉테이션'이라는 행동을 보인다. 닉테이션은 "선충이 꼬리를 바닥에 붙이고 머리를 들어 흔들거나 서 있는 행동"(p. 9)이다. 책에서는 예쁜꼬마선충의 닉테이션을 마치 히치하이킹이라고 표현한다.



그렇다고 단지 예쁜꼬마선충을 소개만으로 내용이 구성되어있지 않다. 이 책은 예쁜꼬마선충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예쁜꼬마선충을 주제로 한 연구들을 소개한다. 노벨상을 수상한 연구에 대해서, 그리고 본인이 진행한 예쁜꼬마선충 연구에 대해서 저자는 상세하게 설명한다.

혹시나 후학들이 예쁜꼬마선충이라는 작은 동물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이어 나갈 이가 한 사람이라도 나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느 바람을 가지고 이 책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 12p

이 부분은 고등학교 때 생명과학Ⅰ을 이수한 적 없는 학생이라면 어려울 것 같다. 예를 들어 두 번째 노벨상 수상 연구를 소개할 때, 'RNA 간섭 현상'이라는 용어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이 없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쉬운 개념은 생성형 AI의 도움을 받으면 쉽게 독해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례로 진짜 어려운 개념은 설명하지 않는 대신, 필요하다면 메일을 보내라고 한다.

후에 우리는 CB4856의 유전제 전체를 재구성하는 연구를 수행하였고 이 두 품종에서 왜 서로 다른 TALT를 사용하게 되었는지를 정확하게 밝혔지만, 이 지면에서 서술하기에는 복잡해 생략하고자 한다. 이 부분이 궁금한 독자는 나에게 메일을 주면 자세히 설명하겠다.
- 135 ~ 136p

혹시 이 책을 읽다가 "메일을 보내볼까" 고민을 했다면, 당신은 이미 이 책의 저자인 이준호 교수의 매력에 중독된 것이다. 놀랍게도 이준호 교수가 고등학교에 강연을 가면, "다녀오고 나면 선충을 연구해 보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연락을 한다."(p.151) 이 책을 읽으면서 궁금했던 부분인데, 바로 어떻게 학생들에게 이리 인기가 있는 건가? 책을 덮고 나서 이해가 되었다. 물론 저자의 재미난 말솜씨도 큰 이유 중 하나겠지만, 예쁜꼬마선충이란 작은 벌레를 가지고 할 수 있는 다양한 연구는 자연의 신비를, 과학의 열정을 보여준다. 이 점이 예쁜꼬마선충이란 단어 뒤에 가려진, 책의 진정한 매력이라 생각한다.

내 강연은 언제나 기승전 예쁜꼬마선충이다. 생물학의 아름다움과 신비함을 이야기할 때 예쁜꼬마선충으로 예를 든다.
- 175p



서평의 가장 큰 단점은 책에서 느낀 모든 것을 다 옮길 수 없다는 점이다. 만일 그게 가능했다면, 이 책에서 소개한 예쁜꼬마선충의 이야기를 전부 소개할 의향이 있다. 이 글에 담지 못했던 흥미로운 예쁜꼬마선충 tmi들…. 하지만 이것까지 소개할 경우 잠재적 독자를 내가 차단하는 셈이니, 이음 출판사 서포터즈 입상상 이런 글은 지양해야 한다.

이 책은 예쁜꼬마선충을 소개하면서 연구자의 삶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하지만 딱딱하지 않고 흥미진진하며, 마치 ‘썰을 풀듯이’ 술술 읽힌다. 『사람이 벌레라니』를 펼친다면, 30년 넘게 예쁜꼬마선충과 함께 연구를 진행한 이준호 교수의 이야기를 가장 가까이서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생명과학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과학을 가볍게 즐기고 싶은 독자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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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벌레라니』

저자: 이준호 / 그림: 임현수 / 출판사: 이음


한줄평: 벌레에서 시작하는 자연·연구 이야기

별점: ★★★★ (4.0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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