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에 날씨를 적는 이유

- 『날씨의 문장들』을 읽고

by 사각사각


* 본 서평은 이음출판사 서포터즈 활동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초등학교 일기장에는 날씨를 적는 칸이 항상 있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제목과 작성일자와 나란히 할 정도로 '오늘 날씨'가 그리 중요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우리의 일상 속에는 언제나 날씨가 있었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면서 하루가 시작되고, 햇빛이 강한 날에는 티셔츠에 흐르는 땀이 여름이 왔음을 알려준다. 소풍 전날 뭉게뭉게 피는 구름은 다음날 비가 올지 걱정을 불러일으킨다.

날씨는 일상뿐만이 아니라 문학에서도 이야기의 한 축을 차지한다. 예를 들어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속 태양은 단순히 배경에 그치지 않는다. 항상 뜨거운 태양이 주인공 뫼르소의 머리 위에 있었고, 태양볕은 뫼르소의 심리를 끊임없이 불안하게 만든다.

끓어오르는 태양은 뫼르소의 불안과 절망, 고통을 부채질하고 내면의 갈등을 표출하게 만드는 기폭제가 된다. 만약 뫼르소가 어머니의 부고를 받은 계절이 여름이 아니었으면 어땠을까. 차분히 장례를 치르고 돌아와 보통의 일상을 보내지 않았을까. - 188p

책의 표현대로, 만약 날씨가 달라졌다면 문학 작품 속 이야기도, 우리 일상 속 사건도 달라졌을 것이다. 그렇기에 일기장 우측 상단 '오늘 날씨'는 결코 사소한 칸이 아니었다. 날씨는 하루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며, 이는 영원히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날씨가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환경오염으로 인한 기후변화로 인해, 여름은 길어지고 봄가을은 짧아졌다.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계졀이 '봄여름가을겨울'이 아니라 '봄여어어어어름갈겨울'"(41p)이 되었다고 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가 알던 기후와 계절과 날씨는 사라진다면, 우리의 옛 추억 속의 일상과의 연결고리는 사라질 것이다.

뉴욕시뿐만 아니라 모두 함께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하는 이유다. 마지막 잎새를 쓴 오 헨리의 시대에도, 우리의 시대에도, 미래에도 뉴욕이 지금 모습 그대로 존재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예술가들에게 무한한 영감을 주는 이토록 매력적인 도시가 영원히 건재하길. - 335p

우리는 지금이라도 다시 날씨에 주목해야 한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 오늘의 구름이 어떤 모양인지 살펴보자. 그리고 책을 펼쳐 빗방울이 어떻게 쏟아지는지 읽어 보자. 날씨가 과거에는 어때 왔고, 오늘을 어떤지를 알아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이러한 기후위기 시대에『날씨의 문장들』은 우리의 손을 잡고 걸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저자는 기상전문기자로, 날씨와 항상 밀접하게 지냈다. 그런 저자이기에 각각의 날씨가 가진 다양한 면면을 포착한다. 안개, 먼지(황사 및 미세먼지), 소나기, 장마, 태양(폭염), 백야, 폭풍, 회오리바람, 눈, 혹한. 총 10가지. 이 다양한 날씨들을 자세하고 섬세하게 우리에게 보여준다. 한 마디로, 저자는 책 제목처럼 '날씨의 문장들'을 끄적인다.

저자는 단순히 날씨에 대한 풍광뿐만 아니라, 이 날씨가 어떻게 생겼는지 등 과학적 설명을 덧붙인다. 과학이라고 겁내지 마라. 이 책은 에세이인 만큼, 하나도 어렵지 않다.

아침마다 무진을 포위한 듯 삥 둘러싼 안개. 작가는 안개에서 귀신이 뿜어낸 한 서린 입김을 떠올린다. 입김이라는 표현은 과학적으로도 적확하다. 안개의 본질이 공기 중에 떠 있는 미세한 물방울이기 때문이다. - 48p

문학 작품 속 문장에서 날씨를 찾아낸다. 예를 들어 안개와 『무진기행』을 연결하고, 먼지와 『분노의 포도』를 연결한다. 그 밖에 다양한 문학 작품들이 책 속에 들어있다. 때로는 향토적인 국문학을, 때로는 유명한 해외 고전들을 인유한다.

에밀리 브론테는 나무의 형태를 통해 바람의 위력을 묘사한다. 절벽 위로 불어오는 사나운 북풍 탓에 전나무 두어 그루가 미처 자라지 못하고 기울어져 있다고 말이다. 추운 지역에 앙상하게 자라는 관목 한 무더기는 마치 태양에게 구걸하는 거지처럼 모두 한 쪽 방향으로 가지를 뻗고 있었다. - 242p

더 나아가 저자 본인의 삶과 날씨를 연결시킨다. 항상 TV 화면에서만 비친 기상전문기자가 아닌, 한 명의 사람으로서 저자의 삶이 다가온다. 악플을 받았을 때의 감정, 취업 준비생 시절, 임신했을 때, 어머니가 아팠을 때, 등등. 저자는 "인생은 날씨와 닮았다"(9p)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날씨는 오직 하나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원한 우기도 없고, 끝나지 않는 안개와 폭염도 없"(9p)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책 속에 묘사되는 저자의 모습은 보드라우면서 동시에 굳건하기도 하다.

폭설 기사를 쓰고 취재를 나가야 하는 입장이었다면 이렇게 아름답게 보이지 않았겠지. 회사를 떠난 기상전문기자는 처음으로 함박눈이 오는 광경을 진심으로 즐길 수 있었다. 카페에 들어가 눈 내리는 풍경을 지겹도록 보고 또 보며 따끈한 커피를 마셨다. - 310p

책 속 '날씨의 문장들'을 따라가 보자. 어느새 우리는 날씨를 다시 한번 바라보게 된다. 저자가 기록한 안개와 바람, 눈과 햇살 속에는 문학과 인간의 삶이 잠재되어 있음을 깨닫게 해 준다. 『날씨의 문장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날씨 속에서 놓쳐왔던 모습들을 발견하게 하고, 동시에 기후위기 시대 속 우리가 날씨를 더 깊이 이해해야 하는 이유를 일깨워 준다.

다 읽은 후, 나는 왠지 모르겠지만, 창문 속 하늘빛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후 책장을 덮었다.


날씨의 문장들_입체.png

『날씨의 문장들』

저자: 신방실 / 출판사: 이음


한줄평: 문학과 삶 속에는 언제나 날씨가 있었다.

별점: ★★★★ (4.0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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