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라투르를 소환하는 이유

- 『가까스로-있음 ― 브뤼노 라투르와 파국의 존재론』을 읽고

by 사각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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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이음출판사 서포터즈 활동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본래 서평에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삼가야 하지만, 이번만큼은 개인적인 이야기로 시작하고자 한다. 필자인 내가 이음출판사 서포터즈 활동을 하게 된 이유는 정말로 이 책을 누구보다 더 빨리 받고 싶어서였다. 2025 서울 국제 도서전 붐비는 이음 출판사 부스에서 라투르 책 한 권을 사면서, 이 책의 출간 예정 소식을 들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 책을 기다렸고, 다 읽은 결과 기대대로 정말 훌륭했다.


아직 브뤼노 라투르를 필두로 한 여러 철학에 대해 많이 무지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이 무척이나 빛나는 "브뤼노 라투르 입문서"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이 입문서의 독특한 특징이라고 하면, 라투르를 잘 모를 경우 1.5 회독 혹은 2 회독하기를 추천하는 책이다. 이는 책의 언어가 어려워서가 아니다. 그것은 이 책의 구성에서 기인한다.


저자 김홍중 교수는 이 책을 두 부분으로 분류한다. 첫 번째 부분은 "시대 진단"(1 ~ 3장)이고, 두 번째 부분은 "대안 이론"(4 ~ 9장)이다. 이것은 이 책이 그저 라투르 입문서에만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21세기에 왜 라투르를 읽어야 하는지부터, 시대를 분석하고 이에 맞춰 라투르의 철학 및 라투르에게 영향을 준 학자들을 조명한다.

(라투르에 가장 영향을 준 들뢰즈와 과타리는 아쉽게도 차후 저서를 기약한다고 책에서 서술한다. 12p 참고. 따라서 들뢰즈와 과타리에 대한 서술은 단편적인 부분에 그친다.)


이러한 구성 때문에, 앞부분은 라투르의 용어 및 철학이 등장하지만, 자세한 설명은 뒷부분에서 보론의 형식으로 보충된다. 따라서 라투르가 가진 특이한 용어 때문에 앞부분이 이해되지 않았다면 완독 후 다시 앞부분의 독서를 추천한다. 왜 오늘날이 가까스로-있음의 시대인지, 그리고 왜 라투르를 저자는 소환하는지를 알 수 있다.


시대가 특정 철학자를 호명하는 이유는, 기존의 생각 혹은 철학이 현재를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삶이 힘들 때 니체와 쇼펜하우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이러한 해석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봐도 된다.


저자는 자신이 21세기라는 새로운 질서 속으로 들어섰음을 직감했을 때, 그것이 곧 세계가 존재하는 방식을 규정하는 부사의 변화, 즉 ‘그냥’의 세계에서 ‘가까스로’의 세계로의 전환이라고 말한다. ‘가까스로’의 세계는 결여와 위급성에 묶여 있으며, ‘그냥’이 보장하던 평온한 무관심이 사라진 불안과 미달의 상태 속에 존재한다. 이곳에서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충만이나 풍요 없이 간신히 생존하고 있으며, 무너지지 않기 위해 겨우 버티는 "희소하고 불확실한 현존의 양태"(10p)로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저자 역시도 라투르를 소환한다. 라투르를 이 시대의 진단 부분에서 소환하는 이유는, 오늘날 '가까스로 있는' 시대의 파국적 양상(인류세의 도래 및 이로 야기된 위기)은 20세기(근대적) 사회학이 더 이상 설명할 수 없다.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 21세기 사회학은 이제 ‘파국에의 무관심’을 더 이상 정당화하거나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60p) 이에 따라 현재 파국을 가장 잘 설명한 대표적인 학자인 라투르를 소환한다.

사회학의 역사에서 ‘파국’은 중요한 사고 대상으로 취급되지 못했다. (맑스를 제외하면) 걸출한 사회 이론가들은 파국에 주목하지 않았다. 이는 우리 시대의 사회학도 마찬가지다. 이런 점에서 [울리히] 벡과 라투르가 말년에 시도한 ‘파국주의적 전환’의 의미는 자못 심대하다. 벡과 라투르는 파국을 사회학이 고민해 야 하는 최상급의 문제로 이해했으며, 이런 상황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사고하는 데 열정을 기울였다.
- 92p

울리히 벡과 브뤼노 라투르는 파국에 관심을 가지며, 20세기(근대적) 사회학과 달리 인간 외의 요인으로부터 사회를 해석했다. (울리히 벡에 대해 더 자세한 설명은 책 참고) 벡의 낙관성과 달리, "라투르는 기후 파국을 종말적 상황으로 보았"(92p)다. 그 외에 라투르와 달리 벡에게는 "인간 행위자를 넘어서는 비인간 행위자에 대한 이론적 관심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74p) 그 외의 다양한 이유로 라투르를 선택하 소환한다.


두 번째 "대안 이론" 부분은 가브리엘 타르드부터 들뢰즈와 과타리를 거쳐 라투르에 도달하는 라투르 이론을 종합적으로 설명한다. 사실 이 부분은 워낙 텍스트 밀도가 높고, 직접 읽는 것이 더 좋아 감상평은 갈음하겠다


그렇기에 이 책의 좋았던 부분만 기술하자면, 바로 어휘 사용이 굉장히 엄격하다는 점이다.

모든 철학자가 응당 새로운 용어를 사용해서 독자를 당황시키듯이, 라투르도 다양하고 낯선 단어 혹은 단어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서 사용한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는 단어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는 태도를 보여준다.

행위가 그 자체로 독자적으로 수행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다른 행위로 인계되거나, 후행하는 행위에 의해 변형되거나 굴절된다는 것은 행위를 타자성에 노출되어 있는 공동-생산적인 무언가로 보는 관점이라 할 수 있다(행위는 타자-인수/탈취된다). 그런데, 이런 관점이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영어 단어 overtake와 take over가 라투르에 의해 불어 단어 dépasser나 déborder로 번역되었을 때다. 이들 동사는 모두 ‘초과’라는 의미와 더불어 ‘범람’이라는 의미, 흘러넘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 177p
ANT적 관점에서 보면, 모든 구성된 사실들, 사물들, 존재자들은 동시에 사실인 ‘팩티시’(Latour, 2010)이다. 불어로는 faitiche로 쓰고 영어로는 factish로 번역되는 팩티시는 사실(fact)과 페티시(fetish)를 합성한 조어다. 한편, 사실(fait)이라는 불어 단어는 본래 만든다(faire)라는 동사의 과거 분사 형태다. 라투르가 자주 환기시키듯이 “사실들은 만들어진다”[라투르, 2009: 61], 즉 구성된다.
-195p

하지만 이런 철두철미함 속에서도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있었다. 첫째, ‘모더니티’와 ‘근대성’이라는 용어가 혼용되는 대목이다. 사전적으로는 유사하지만, 문맥에 따라 의미의 결이 다를 수 있기에, 혹시 의도된 차이라면 간단한 주석으로 구분을 밝혀주면 좋았을 것이다.

둘째, 책에서는 “라투르는 ‘행위자(actor)’라는 말을 꺼리고 대신 ‘행위소/행역자(actant)’라는 표현을 사용한다”(161p)고 명시하지만, 정작 그의 핵심 이론인 ‘행위자 네트워크(Actor-Network Theory, ANT)’에서는 여전히 actor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 모순처럼 보이는 부분은 사실 영미권 번역에서 비롯된 문제로 알려져 있다. 책이 라투르 입문서로서의 성격도 갖는 만큼, 이런 번역적 맥락을 간단히 덧붙였더라면 독자의 이해를 더욱 좋았을 것이다.



기업가, 작가, 예술가라는 상(像), 더 나아가 인간이라는 상이 깨지고 파열될 때, 비로소 파국 앞의 ‘생명’이라는 공통 기반이 드러난다. 그 생명의 존재론적 실상인 가까스로-있음에 눈을 뜨는 것이다. 가까스로 있는 것들을 바라보면서 자기 자신의 가까스로-있음을 자각하게 되었을 때, 가까스로 있는 것들 사이에는 모종의 연결, 모종의 연대가 형성된다.
- 326p

결국 저자가 라투르를 소환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라투르의 존재론과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을 통해, 파국이 진행 중인 현실을 더 명료하게 인식하고자 함이다. 우리는 이 불안정한 시대 속에서 다른 존재자들—비인간적 행위자들까지 포함한—과의 행성적 연대감을 자각해야 한다.


따라서 오늘날 라투르의 사유에 관심이 있거나, 기존의 세계관이 설명하지 못하는 실존적 위기 속에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훌륭한 안내서가 되어줄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독서가 아니라, 자신과 세계를 다시 성찰하고(혹은 재귀하는) 하나의 경험이 될 것이다.


1103649501.jpg 이 책의 저자 김홍중 교수

『가까스로-있음 ― 브뤼노 라투르와 파국의 존재론』

지은이: 김홍중 / 출판사: 이음


한줄평: 라투르로 명확히 직시할 수 있는 오늘날 파국

별점: ★★★★★ (5.0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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