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할 때 꺼내 쓰는 문학이론

- 『문학 '읽기'의 방법들 - 문학이론 도구상자』를 읽고

by 사각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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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이음출판사 서포터즈 활동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나는 종종 취미 삼아 비평을 읽는데, 비평에서 나오는 생경한 개념들을 접할 때마다 어려워하면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다. 와! 들뢰즈! 데리다! 아시는구나! 하지만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이런 학자들을 다 공부할 시간이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문학 작품을 읽을 때도 매한가지다. 단순히 감상하는 것을 넘어, 비평가처럼 멋들 여진 말로 독서 감상을 남기고 싶지 않은가. 여기서 더 나아가서 조금 더 근원적인 질문―도대체 문학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을 던지고 싶을 때도 있다.

이 책 『문학 '읽기'의 방법들』은 바로 그런 순간에 필요한 '도구상자'와 같다. 여기서의 "도구상자"는 들뢰즈의 표현을 차용한 것이다. 들뢰즈에 따르면 이론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도움이 되고 기능해야 하는 것"(15p)다. 이론은 마치 도구상자 속의 도구처럼, 필요할 때 꺼내 쓰고 만약 도움이 안 되는 경우라면 다른 이론을 쓰거나 새로운 이론을 만들면 된다.

그것은 '도구상자'로서 <이론>이 작가와 독자의 <사이>에서 '사랑'이라는 이름의 협동 작업을 강권하는 것과 정확하게 서로 겹치는 것이 아닐까요. – p.18

이 책은 단순히 들뢰즈의 도구상자 개념을 차용하는 것이 아닌, 아감벤의 논의를 빌려와서 '도구상자'로서의 문학이론에 대한 개념을 발전시킨다. 그렇게 정리하자면, 문학이론은 공부하기 싫은 딱딱한 이론이 아니다. 문학이론이란 도구상자로서, 독자가 텍스트와 만나고 상호작용하며, 그 과정에서 새로운 세계를 감각하게 만드는 실천적인 방법들의 모음이 된다.

『문학 ‘읽기’의 방법들』은 "문학 연구에 뜻과 관심을 둔 학생", 특히 학부 고학년 및 석사과정 학생을 독자로 상정하고 기획 및 집필되었다. 난해하고 복잡한 여러 문학이론을 섬세히 다루면서도 명쾌하고 단정한 서술을 갖춘 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 433 ~ 434p



이 책은 크게 기초를 다지는 1부와 다양한 주제를 펼쳐 보이는 2부로 나뉜다. 1부에서는 문학 작품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한다. 그렇게 각 장마다 하나의 테제를 가지고 각 교수마다 이야기를 진행한다. 2부는 현재 문학이론이 가지는 여러 주제에 대해 소개하며, 각 주제마다 여러 학자의 관점을 소개한다.

이 책의 1부와 2부 각 장은 독립성과 완결성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다른 장과 자유롭게 연결된다. 1부에서 다루어진 이론가가 2부에서 다시 등장하기도 하며, 재등장 시에는 같은 맥락에서 혹은 다른 맥락에서 등장한다. 이러한 연결을 통해 이 책은 문학이론의 근본과 현재를 교차하여 공명하도록 하는 동시에 문학이론의 체계가 가진 입체성을 드러낸다. 동시에 여러 장에 등장하는 이론가를 찾아 읽는 즐거움을 독자에게 제시하고 있다. - 428p

이렇게 책에서는 서술하고 있어, 1부와 2장을 교차하며 읽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다만, 후술하겠지만 1부의 각 장은 내용의 연계성이 강하니 1부만큼은 차근차근 읽기를 권한다.


1. 1부: 상식을 부수고 문학을 재고하다

1부의 전개는 매우 흥미롭다. 우리는 문학을 읽을 때, 가령 작가의 의도나 작가의 인생 등을 알아야 한다 등, 문학에서의 보편적인 생각들이 있을 것이다. 1장에서는 이러한 상식을 비평적 개념 등을 통해 과감히 깨부순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작품' 대신 '텍스트'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텍스트를 직물(textile)에 비유하며 그 개념을 확장해 나가는 과정이다.

어떤 의미에서 ‘텍스트’는 감각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좀 더 말하자면 ‘텍스트’는 감각에 관계된 것이다. ‘텍스처(texture)’라는 단어는 사물의 감촉과 질감을 의미한다. 하지만 원래 이 단어는 직물이나 그 직조, 짜는 방법, 조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텍스트’란 어원적으로 직물에서 유래한 것으로 직물은 피부에 걸치고 감촉을 즐기는 것이다. - 37p

즉, 텍스트는 하나의 고정된 의미가 아니라 독자가 그 질감(texture)을 느끼고 즐길 수 있는 대상이라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관점이 오직 텍스트 내부에만 머물지 않는다. 1장에서 텍스트의 개념을 확립한 뒤, 2장부터는 다시 텍스트의 외부로 시선을 돌린다.

각각의 테제―'읽다'(독자), '언어', '욕망', '세계'―를 바탕으로, 다시 문학에 대해서 재고할 거리들을 제공한다. 1장에서 초기화를 한 뒤, 다시 흰 도화지에서 그림을 그리는 듯한 이 구성은 읽는 내내 치밀하다고 느꼈다.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전반부에서는 ‘문학이론’의 뿌리까지 내려가서 사색하는 것(Fundamentals)을, 후반부에서는 큰 가지 몇 개의 끝까지 올라가서 거기에 지금 피어있는 꽃을 감상하면서 그 꽃잎 안쪽으로부터 새로운 사색의 실마리를 발견·발명하는 것(Topics)을 목적으로 하였습니다. - 26p

그리고 각 장의 마지막마다, 해당 개념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읽어볼 만한 도서를 추천해 준다. 지면상 더 자세히 다룰 수 없는 만큼, 특정 주제에 대해 흥미를 느끼고 심화학습을 하고 싶은 이들을 위해서다. 이렇게 우리는 1부의 교수님들이 이끄는 길을 따라가, 비로소 텍스트의 안과 밖을 아우르며 그 결을 제대로 만지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2. 2부: 다채로운 관점의 지도와 친절한 가이드북

하나의 굵직한 줄기를 따라 내려가던 1부와 달리, 2부는 현재의 문학이론에 대해 말해준다. 많은 논의가 있어온 만큼 다양하게 뻗어 나간 다양한 가지들을 보여준다. 네이션, 포스트휴먼, 환경, 정신분석, 젠더 등 현대 문학이론의 주요 쟁점들을 소개하는데, 여기서는 1부와 달리 각 주제에 대한 다양한 이론가들의 관점을 폭넓게 조망한다. 더불어 각 장의 첫 페이지에 이번 장에 나오는 각 개념들의 도식도를 그려준다. 여담으로 1부와 달리 2부는 대학원생이 쓴 만큼(?), 어려운 개념 공부에 힘들어하는 독자들을 위한 배려가 조금 있는 듯하다. 1부를 읽었으면, 2부는 술술 읽힌다.

'토픽 편 - 문학이론의 현재를 생각하기 위하여'라는 제목의 후반부는 대학원생 5명이 모여서, '이런 것을 가지고 싶었다'를 표어로 현재 진행형의 여러 주제=사색의 장(Topic)이 이루는 다도해를 항해하기 위한 인식의 지도를 제작한 것입니다. -26p

덕분에 독자는 복잡한 이론의 지형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다만, 입문서의 특성상 각 이론을 깊이 있게 파고들기에는 지면이 한정적이라 아쉬움이 남을 수 있다. 더 자세한 내용을 알기 위해서는 소개된 참고문헌 속 도서를 직접 찾아 읽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훌륭한 가이드북 역할을 완수했다. 각 장의 끝에 마련된 참고문헌 목록은 메모해 두고, 언젠가 도서관에서 빌릴 책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책을 덮으며 개인적으로 가장 공부하고 싶어진 대상은 스테판 말라르메였다. 48,60,68,354p에만 이름이 살짝 보일 정도로 책에서 주된 비중은 차지하지 않지만, 등장할 때마다 문예사조 선조로서의 존경이 표현에서 묻어 있는 듯했다. 특히 1장에서 ‘언어의 비인칭성’을 다루며 소개된 그의 문장은 인상 깊었다.

순수 저작은 시인의 화자로서의 소멸을 필연적 결과로 가져온다. 시인은 주도권을 낱말들에게, 서로 같지 않음의 충돌에 의해 동원되는 낱말들에게 넘긴다. - 68p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가? 이 사람에 대해서 알고 싶지 않은가?

이러한 생각이 든 것만으로 이 책은 큰 역할을 다한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문학 이론에 대한 통념은 끔찍하게 어렵고 전문적인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도구 상자로서의 문학 이론은 말 그대로, 필요할 때 꺼내 쓰는 독자에게 있어 실천적인 독서법이다. 만약 문학 이론에 대해 입문하고 싶지만, 자세히는 모르고 또 걱정이 된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문학 ‘읽기’의 방법들 - 문학이론 도구상자 』


지은이: 미하라 요시아키, 와타나베 에리, 우도 사토시, 고하라 가이, 닛타 게이코, 하시모토 도모히로, 이누마 가오리, 이소베 사토미, 모리타 가즈마, 모로오카 유마

옮긴이: 장문석, 조은애, 송민호

출판사: 이음


한줄평: 문학 이론은 쉽게 꺼내 쓸 수 있다는 걸 가르쳐 준다.

별점: ★★★★☆ (4.5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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