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과학은 없다 - 탈식민주의 과학기술학의 도전』
* 본 서평은 이음출판사 서포터즈 활동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읽어보면 어렵다는 느낌이 든다. 잠깐! 그렇다고 바로 뒤로 가기를 누르기 마시길. 이 어렵고 난해한 감각이야 말로, "탈식민주의 과학기술학"이라는 이 생경한 표현에 대응되는 것이 아닌가? 애초에 탈식민주의 과학기술학이 뭔지 설명하기 이전, 이 용어가 가진 느낌에 대해 생각해 보자.
탈식민주의 과학기술학은 왜 탈식민주의적인가? 앤더슨은 “우리가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모두 탈식민주의라는 느낌적인 느낌 안에 있다”라고 말한다. - 193p
탈식민주의 과학기술학은 우리가 당연하게 믿어왔던 과학에 대한 믿음에 의문을 던진다. [과학=서구의 것=보편적 진리]라는 공식은 당연시 여겨왔지만, 이것이 정말 옳은가? 과학이 서구에서 완성되어 나머지 세계로 매끄럽게 ‘전파’된 것이 아니라, 식민지 현장에서의 충돌과 번역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만들어진 '과정'임을 밝혀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느끼는 이 모호함과 혼란스러움 자체가 바로 과학이 서구에서 완성되어 매끄럽게 전파된 것이 아니라, 여러 지역에서 충돌하고 섞이며 만들어졌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앤더슨은 옅은 미소를 띠며 "애매모호한 것들을 잘 견디는 것(bear with the ambiguities)"이 학자, 특히 역사학자와 인류학자에 게는 미덕이라고 말해주곤 했다. - 189p
그러니 이 "탈식민주의적 횡설수설(rambling, 65p)"에 대해 정독하며 그의 아이디어를 한 아름 곱씹으며 정독하는 것은 어떤가?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번외로 읽다가 너무 어렵다면, 맨 뒤에 수록된 역자 해제부터 읽어보는 것을 권한다.
이 책의 저자 워릭 앤더슨(Warwick Anderson)은 의사이자 역사학자로, 과학기술학(STS)에 '탈식민주의' 시각을 접목한 선구자다. 이 책은 편역자 이종식이 앤더슨의 핵심 논문 6편을 엮은 것으로, 한국어판 서문과 해제가 포함되어 있으며, 수록된 논문은 다음과 같다.
Anderson, W. (2002). Postcolonial technoscience. Social Studies of Science, 32, 643–658.
Anderson, W. (2009). From subjugated knowledge to conjugated subjects: Science and globalisation, or postcolonial studies of science? Postcolonial Studies, 12, 389–400.
Anderson, W. (2012). Asia as method in 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East Asian 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 6, 445–451.
Anderson, W. (2018). Remembering the spread of Western science. Historical Records of Australian Science, 29, 73–81.
Anderson, W. (2018). Thickening transregionalism: Historical formations of science, technology, and medicine in Southeast Asia. East Asian 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 12, 503–518.
Anderson, W. (2020). STS with East Asian characteristics? East Asian 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 14, 163–168.
여기서 이 책의 아쉬운 점을 뽑자면, 논문을 엮은 만큼 미주에서 논문에서 앤더슨이 직접 달은 주석과 역자가 달은 주석을 구분했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든다. 역주는 따로 빼서 각주라 다는 것이 더 나았을 거라고 생각이 든다. 역주만 보고 싶다면, 3-8(228p)와 3-39(230p)를 참고하시길 바란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믿어왔던 '과학의 전파' 모델을 거부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과학은 서구라는 중심에서 완성되어 비서구라는 주변부로 일방적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다. 앤더슨에 따르면 과학은 이동하면서 번역되고, 현지의 문화와 충돌하며,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변형되는 '테크노사이언스'이다. 그는 과학이 단순히 전파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는 '접촉지대(Contact Zone)'에서 새롭게 만들어진다고 역설한다.
이 지점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저자가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와 그의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NT)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대목이었다. 최근 라투르의 저서가 많이 번역되서인지 아니면 들뢰즈의 유행에 편승해서인지, ANT는 '힙'하고 유용한 분석 도구로 통한다. 하지만 그러한 ANT가 비판 대상으로서 기술되는 점이 놀라웠다. 특히 나의 경우에는 포스트-ANT에 대해서는 풍문으로만 들었을 뿐, 라투르의 이론조차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앤더슨은 라투르의 '네트워크' 속에 숨겨진 제국주의적 시선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그러나 라투르의 네트워크는 때때로 오래된 식민주의의 범주들을 무비판적으로 답습했다. (…) 탈식민주의적 분석보다는 식민주의의 냄새를 풍기는 라투르의 이야기는 현지의 행위자들과 맥락을 생략하고 과학의 네트워크를 원주민들이 뚫을 수 없는 일종의 철장으로 만들어 놓는 데에 성공했다. - 58p
앤더슨은 라투르가 『프랑스의 파스퇴르화』나 아마존 연구에서 식민지 현장을 그저 과학이 실험되는 '텅 빈 실험실'처럼 취급했다고 비판한다. 라투르의 세련된 이론이 사실은 타자들을 식민화하고, 현지의 역사와 정치를 지워버리는 군사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언어를 구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앤더슨이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네트워크의 확장이 아니라, 그 네트워크를 '비식민화'하는 것이었다.
이 난해하지만 매혹적인 비판을 읽으며 나는 엉뚱하게도 과학소설(SF소설)을 떠올렸다. 옥타비아 버틀러(Octavia Butler)와 같은 작가들은 이미 글을 통해 외계인(타자에 대한 알레고리)과의 조우,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를 다뤄왔다. 즉, '탈식민주의적 SF'의 세계를 구축해 왔다. 그런데 정작 현실의 과학을 다루는 우리는 왜 탈식민주의적 STS를 상상하지 못했을까?
우리는 입버릇처럼 한국식 SF, 우리만의 문화를 외쳐왔다. 그러나 정작 그 기저에 깔린 과학과 STS에 대해서는 서구의 것이 곧 보편적 진리라는 거대 서사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여전히 서구를 유일한 중심으로 여기는 "오래된 지도"(48p) 위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과거의 거대 서사들을 거부하고, 타자들의 목소리와 경험을 듣고 보고자 하며, 절대적인 것처럼 보이는 범주들 내부의 이질성과 다양성을 찾고 있는 것이다. (…) 우리가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모두 탈식민주의라는 느낌적인 느낌 안에 있다. - 55p
이 책이 주는 부끄러움은 바로 여기에서 기인한다. '서양과학은 없다'라는 도발적인 선언은 우리가 과학이라고 믿어왔던 그 단단한 믿음이 사실 특정한 역사와 권력(식민주의) 속에서 만들어진 것임을 폭로한다.
더 나아가 저자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어떻게 과학기술학의 단순 자료나 데이터가 아닌 방법이자 이론으로서 의 동남아시아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인가? - 168p
앤더슨이 제안하는 '동아시아적 STS'는 아시아를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서구 중심주의를 깨뜨리고 세상을 다르게 보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자 이론으로서 삼자는 초대장이다.
방법으로서의 아시아는 레시피북이 아니다. 심지어 나는 그것이 "방법"이 아닐 수도 있음을 인정한다. 방법으로서의 아시아는 테크노사이언스를 작동시키는 하나의 지역적인 방식이고, 아직 초기 단계인 하나의 삶의 형식이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채워져 나갈 하나의 비판적인 연구 분야이다. - 95p
물론 이것이 "우리 것이 무조건 최고"라는 식의 국수주의로 향하자는 것은 절대 안 된다.
결국 너무나 어렵게 읽히는 이 책의 문장들은, 어쩌면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서구 중심의 과학'이라는 안경을 벗어던질 때 접하는 현기증과도 같다. 새로운 시각의 맞닥뜨림, 그리고 우리만의 언어로 과학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의무를 자각해서 일지도 모른다.
번외로, 이번 도서 『서양과학은 없다』는 원어 병기에 있어 '할주'라는 기법을 사용했다. 출판종합전문지 <출판문화>의 한 칼럼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음에서 출간된 『서양 과학은 없다』에서는 원어 병기에 할주 방법을 접목했다. 보통 한 줄로 작게 표기하는 병기 대신 할주처럼 두 줄로 변형해 여백을 최소화하고 균질한 글줄의 느낌을 연출했다. 병기 표기가 책 전반에 걸쳐 자주 등장하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일반 본문 크기로 설정한 경우와 비교하면 공간을 씬 절약하는 효과가 있고, 글의 흐름에도 덜 방해가 된다.
- [2025년 11월호] 사진이 곁들여진 영어 메뉴판, 출판문화
https://m.blog.naver.com/kpa_21/224088642824
원래 전문적인 글을 읽을 때는 원어 병기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원어가 쭉 나열되어 있으면, 글이 피로해지는 느낌이 드는 단점이 있다. 한 줄에 한글이 반, 영어가 반 있는 글을 독해하기란 영 피곤하기만 하다. 그렇기에 할주 방법을 처음 본 입장에서, 지면을 아끼고 영어가 적은 출판 디자인이라 흥미로웠다.
어쩌면 이 낯선 할주 디자인이야말로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탈식민주의 과학기술학의 풍경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일지도 모른다. 서구의 개념(원어)을 완전히 지워버리지도, 그렇다고 그것이 우리 글의 흐름을 압도하게 두지도 않으면서 한 줄 안에서 공존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야말로 앤더슨이 그토록 강조한, 서로 다른 지식과 문화가 만나 섞이고 번역되는 '접촉지대'의 모습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서양과학은 없다 - 탈식민주의 과학기술학의 도전』
지은이: 워릭 앤더슨
편역: 이종식
출판사: 이음
한줄평: 새로운 과학기술학 아래 서로 다른 시민의 접촉을 상상하며
별점: ★★★★☆ (4.5 / 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