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 거미, 그리고 민주주의

- 『스피노자의 거미』를 읽고

by 사각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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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이음출판사 서포터즈 활동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이 책의 여정은 스피노자의 독특한 취미에서부터 시작한다. 스피노자는 말년에 종종 거미를 찾아 서로 싸우게 하거나 파리를 거미줄에 던져 넣고는 구경을 했다고 한다. 이 거미구경은 스피노자의 기이한 취미에 불과했을까?

거미가 서로 싸우거나 먹이를 잡아먹는 모습을 보며 스피노자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혹시 자신이 비판하던 당대 유럽 사회의 지배자와 거미를 비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런 엉뚱한 질문을 떠올리던 중에 문득 한 가지 생각에 골몰하게 되었다. 스피노자가 살았던 시대부터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근대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자연생태계에서 관찰되는 갈등 상황과 비교해보면 흥미롭겠다는 생각이었다. - 11p

어쩌면 스피노자는 거미의 모습으로부터 당대의 세계를 통찰했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이러한 상상력을 확장하여, 오늘날 근대 사회가 가진 여러 문제점을 해결하는 실마리를 찾는다. 바로 거미, 다시 말해 자연생태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다. 이 책은 근대에 대한 해결을 찾는 여정으로서, 구체적으로 다음 네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가는 과정으로 정리할 수 있다.


1) 근대를 이성의 시대라고 부를 수 있는가?

2) 자연생태계의 자원 배분은 민주적인가?

3) 거미와 콩키스타도르는 어떻게 다른가?

4) 자연에서 대안적인 자원 배분의 원리를 찾을 수 있을까?



과학이 끊임없이 발전하고 다시 우주를 향해 나아가는 인류의 모습을 보면, 우리는 자연스레 이성의 힘을 믿게 된다. 하지만 신문과 뉴스에 나오는 과학계의 빛나는 행보와 달리, 우리의 주변은 여전히 이성의 빛이 비치는지 의심하는 사례가 끊임없이 나온다. 지구 평평론자를 위시한 음모론이 판치고, 도덕보다 경제적 이득이 우선시 된다고 저자는 다양한 사례들을 언급한다.

‘근대를 이성의 시대라고 부를 수 있는가,라는 첫 번째 질문은 근대가 이성과 폭력이 마치 샴쌍둥이처럼 한 몸으로 붙어 있었던 모순의 시대가 아니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 35p


저자는 이러한 근대의 폭력성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존재로 16세기 남미를 유린한 에스파냐의 정복자, '콩키스타도르'를 지목한다. 그들은 새로운 땅에 정착하려는 농부가 아니었다. 오직 황금을 위해서, 황금만을 위해 어떠한 수단도 가리지 않는다. 도덕적이지 않은 행위들, 가령 원주민을 착취하고 학살하는 행위들이 자행되었다.

[생태학 노트 1] 콩키스타도르 vs. 외래 침입종
에스파냐와 다른 유럽의 정복자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 식민지를 확장해나가는 과정은 외래 침입종(invasive species)이 강한 천적이나 경쟁자가 없는 새로운 지역에서 서식지를 확장해 나가는 과정과 흡사하다. - 124p

저자는 이들의 행태를 ‘외래 침입종’에 비유하며 다양한 생물종들의 사례(e.g. 아프리카귀화꿀벌, 가을군대벌레)를 든다. 이들은 단순히 토착종들의 자리를 빼앗는 것에 그치지 않고, 토양의 질소 함량을 변화시키는 등, 기존 생태계의 근본 자체를 뒤흔들었다. 이는 정복자들이 원주민 사회의 기존 구조를 붕괴시키고 새로운 수탈 구조를 만든 것과 유사하다.

하지만 놀라운 점은 외래 침입종과 인간 정복자의 행보는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둘의 차이는 폭력의 유무에서 발견할 수 있다. 생물학적 외래종은 보통 천적이나 경쟁자가 없는 빈 땅(생태학적 공간)을 찾아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반면, 유럽의 정복자들은 이미 원주민이 살고 있는 땅을 차지해야 했다. 그렇기에 인간의 사례는 필연적으로 폭력을 수반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또 하나의 비교가 제시된다. 스피노자가 관찰한 ‘거미’와 유럽의 정복자 ‘콩키스타도르’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거미가 파리를 잡아먹는 것은 인류처럼 폭력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이 차이를 생존을 위한 ‘필요(need)’와 ‘탐욕(greed)’에서 찾는다.

스피노자의 시선에서 거미가 파리를 잡아먹는 행위는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려는 자연스러운 성향, 즉 ‘코나투스(Conatus)’의 발현일뿐이다. 거미가 파리를 먹는 사건은 자연의 먹이사슬에서 일어나는 피할 수 없는 '나쁜 만남'일뿐이다. 거미는 생존에 필요한 만큼만 취한다. 하지만 콩키스타도르는 달랐다. 그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계를 모르는 거대한 탐욕을 채우기 위해 타인을 희생시켰다. 바로 상대를 굴복시켜 노예로 만드는 ‘내적인 죽음’을 강요하는 폭력이다.

이처럼 거미와 파리의 관계는 자연의 먹이사슬이 초래하는 피할 수 없는 "나쁜 만남"일 뿐이지, 주인과 노예와의 관계처럼 피지배자의 자유와 생명 자체를 지배자의 의지에 종속시키는 "내적인 죽음"을 초래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스피노자는 파리를 잡는 거미를 관찰하며 생물 간의 관계를 규정하는 자연의 법칙에 대해 사색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 84~85p


이성에 의해 가려졌던 약탈적/폭력적 본성은 이젠 과거의 유물로 사라진 것일까? 저자는 아니라고 경고한다. 16세기 정복자들이 동인도회사 같이 무력을 앞세운 제국 기업가였다면, 오늘날 구글이나 아마존 같은 거대 기업들은 인터넷과 인공지능을 무기로 전 세계의 부를 독점하려는 21세기 IT 콩키스타도르로 볼 수 있다.

인터넷과 인공지능을 이용해 전 세계인의 일상과 심지어 화성까지 정복하려는 독점 기업가들은 21세기 글로벌 자본 제국의 ‘IT 콩키스타도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 162p

그렇다면 우리는 이 탐욕의 폭주 기관차를 멈출 수 없을까? 저자는 다시 자연으로 눈을 돌린다. 힘센 포식자가 모든 것을 독차지할 것 같은 자연계에서, 어떻게 수많은 생명이 공존하며 ‘자연의 민주주의’를 이루고 있는지 그 비밀을 파헤친다.


스피노자의 철학(본 서평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책에서 홉스 등의 계몽주의 시대의 철학자들이 많이 언급된다)과, 다양한 생태학적 사례(이러한 사례들은 [생태학 노트]에 자세하게 설명된다)를 책에서 다루고 있다. 이러한 설명만 들으면 아마 복잡하고 어렵고 기묘한 책을 독자는 상상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잠시만 생각해 보자. 왜 이러한 책이 나왔을까?

저자는 자기 분야만 파고드는 현대의 전문가들을 바보 천재라고 꼬집으며, 복잡한 사회 문제를 풀기 위해 스피노자의 철학과 생태학을 엮는 '통섭'의 지혜를 구한다. 이 기묘한 여정의 끝은 결국 공존이다. 저자는 자연이 강자의 독식이 아니라, 서로의 자리를 인정하며 다수가 살아남는 '자연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사회의 올바른 구성 원리를 고민하던 스피노자에게 거미 관찰이 영감을 주었던 것처럼, 자연에서 얻은 생태적 상상력이 한계에 봉착한 근대적 민주주의의 대안을 찾아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좋은 길 안내자가 되기를 희망한다. - 243p

스피노자의 거미가 알려준 지혜는 지금 우리에게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오늘날은 자본주의 외의 것을 상상할 수 없는 시대이다. 그런 시대에 생태적 상상력으로써 근대부터 오늘날을 조망하는 이 책은 필히 소중한 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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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이화여대 박지형 교수님

『스피노자의 거미 - 자연에서 배우는 민주주의』

지은이: 박지형

출판사: 이음


한줄평: 스피노자의 거미에서 시작하는 계몽과 이성의 고찰

별점: ★★★★ (4.0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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