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의 시작 앞에서 수업을 다시 생각하다
오늘, 입학식에 참석해 입학하는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스무 살.
처음으로 성인이 된 얼굴들.
그 장면을 마주할 때마다
수업을 준비하는 나의 태도도 함께 돌아보게 된다.
교수로서 연구는 중요하다.
기술의 변화도 빠르게 따라가야 한다.
특히 최근 집중하고 있는 AI처럼
디자인의 조건을 바꾸는 도구를 마주할 때면
좋은 것을 가능한 한 빨리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진다.
앞선 흐름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고,
뒤처지지 않게 해주고 싶은 마음.
하지만 동시에
이 학생들이 이제 막 자신의 인생 계획을 세워가는 시점에 서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수업은 조금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내가 보여주는 기술 하나,
내가 강조하는 방향 하나가
그들의 선택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수업은
정보를 전달하는 자리가 아니라
시간을 함께 조정하는 자리처럼 느껴진다.
나는 내 관점을 제시하지만
그 관점이 학생의 생각을 덮지 않기를 바란다.
가능한 한
학생들의 언어를 먼저 듣고,
그 안에서 확장할 지점을 찾으려 한다.
그 과정에서
젊은 시절의 조급함과 실패가 자주 떠오른다.
빨리 성과를 내고 싶었던 시간,
준비되지 않은 판단으로 방향을 좁혀버렸던 순간들.
그 경험들은 지금
속도를 낮추는 감각으로 남아 있다.
앞서가고 싶은 마음과
기다려야 한다는 책임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
AI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고 사회와 기술은 계속 변해가고 있지만
학생들의 삶은 아직 시작 단계에 있다.
그 둘을 같은 속도로 밀어붙일 수는 없다.
입학식은 학생들의 출발선이지만
동시에 나에게도 다시 묻는 순간이다.
나는 무엇을 앞세우고 있는가.
기술인가, 성과인가,
아니면 방향인가.
속도는 중요하다.
그러나 그 속도가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에 대한 책임은
더 중요하다.
스무 살의 시작 앞에서
다시 한번 수업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