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용된 이기(利技) 2-2
갈등의 모체(母體)가 되는 그곳에서보다 더욱 치열한 혈전이 온라인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전생의 원수라도 만난 듯, 그들은 상대 진영을 물어뜯고자 숨죽이며 빈틈을 보이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글이 여기보다 더 치열할까요?
대의민주주의는 지금까지 인류가 도출한 최선의 체제입니다. 수많은 사람의 의견을 일일이 반영해 국가를 운영할 수 있기에 대표자를 선출, 대리 정치를 맡기고 있습니다. 일부 왕정국가 역시 의원이 존재하며, 이들은 유권자들의 뜻을 실현해야 하는 책무를 지고 있습니다.
정치는 고대부터 이어진 인간사의 한 축입니다. 정반합의 대표적인 사례가 정당정치고요. 집권당과 반대당의 끊임없는 논쟁 덕에 사회가 발전해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굳어진 개념이 보수와 진보입니다. 앞서 언급한 정반합에 비춰보면 보수당은 정, 진보당은 반입니다.
개념으로써의 보수와 진보를 이해해보겠습니다. 보수는 단어의 뜻 그대로 고장 난 부분을 고친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누수가 발생했을 때 '보수공사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할 때 그 보수와 같습니다. 이와 반대로 진보는 기존 시스템이 자꾸 고장 나니 한 발 더 나아가 새로운 틀을 갖추자는 의미로 해석 가능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두 이념 모두 하나의 신념을 지니고 있다는 겁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자. 국가 경쟁력과 국민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가자. 서로가 제시하는 대안은 다를 수 있어도 그 본질은 여기에 귀결됩니다. 이상적인 보수와 진보, 이를 추종하는 세력들, 이들이 만들어가는 정치의 근간은 바로 이 신념에서 시작됩니다.
의미를 곱씹어본 이유는 온라인 상에서 이들 단어가 철저히 잘못 쓰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온전히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이를 '꼰대', '부적응자' 등과 같은 의미로 이해하고 쓰는 누리꾼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리고 이념의 두 축인 진보와 보수는 또 다른 대명사로 변형돼 갈등을 극단적으로 부추기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정치 관심도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척도인 선거율을 통해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는데요. 21세기 들어 대선, 총선, 지선 모든 선거에서 투표율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대선을 한 번 표로 살펴볼까요?
2008년 국회의원 총선거 투표율을 살펴볼까요? 겨우 46.1%에 불과합니다. 유권자 절반도 투표를 하지 않은 겁니다. 비하할 의도는 아닙니다만, 이때 당선된 국회의원이 대표성을 띄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50%도 되지 않는 투표율은 그만큼 처참한 수준입니다.
그러던 것이 뚜렷한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다음인 2012년 선거에서는 54.2%로 절반 이상이 자신의 투표권을 행사했고, 2016년에는 58%, 가장 최근에 치러진 2020년 총선은 무려 66.2%라는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12년 만에 20%p가량 증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폭발적으로 정치적 관심이 높아진 이유는 뭘까요? 국회의사당에서 이상적인 정치로 국민들을 만족시켜서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이 이유는 아닙니다. 21세기 들어서며 상생, 협치, 연정 등 이상적인 정치를 구현하겠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과거와 크게 달라진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실질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선거 가능 연령이 확대됐습니다. 지난 총선 전에 투표 가능한 연령이 만 19세에서 18세로 낮아졌죠. 어떤 일이든 첫 시작은 설렘 가득하죠. 청소년들이 가졌던 첫 투표의 설렘이 투표율에 반영됐습니다. 2020년 총선에 국한된 이유지만 선거권 확대의 영향으로 향후 투표율이 더 높아질 거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물론 정치라는 무거운 이슈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면 이 역시 불가능했겠죠. 두 번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21세기는 뉴스를 접할 기회가 확연히 잦아들었습니다. 프라임 타임에 시청하는 뉴스, 종이신문, 라디오에 그쳤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언제 어디서나 뉴스를 접할 수 있습니다. 수용하는 정보가 많아지면 자연스레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죠.
마지막 이유는 적극성 폭증입니다. 2000년대만 놓고 보더라도 정치권에서는 유래 없는 일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정권마다 대규모 촛불 집회가 열렸고, 급기야 역사상 처음으로 탄핵이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젊은 나이를 앞세운 신진 정치인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국민들 마음속에는 '우리 손으로 바꾸자'라는 인식이 자연스레 자리 잡게 됩니다. 다사다난했던 과정을 겪으면서 선거에 대한 관심 역시 덩달아 증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실에서의 관심도 증가는 온라인에 고스란히 반영됐습니다. 활발한 토론이 곳곳에서 매일 같이 펼쳐졌습니다. 국회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 의제 하나만으로도 많은 이가 열띤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정치 관련 커뮤니티 역시 활성화됐습니다.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이 오염되지 않았다면, 현재 온라인 상에서 느낄 수 있는 열기는 '이상적인 대의민주주의를 완성시키는 열쇠'가 됐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갈등만 가속화시키는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남녀 갈등 못지않게 서로가 서로를 물어뜯는 상황이 지속적으로 연출되고 있죠.
안타깝게도 정치인들이 SNS를 적극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대립은 더욱 격화됐습니다. IT 시대에 선전도구로 SNS를 활용한다는 건 지극히 당연한 발상이며, 자연스러운 수순입니다. 하지만 일부 정치인들이 오로지 인기몰이식 이슈를 던지거나, 선동적인 문구만을 구사하면서 누리꾼들의 대립 양상에 윤활유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진보와 보수는 우리네 고질적인 문제인 지역 색채와 결부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들도 수차례 목격하셨을 겁니다만, 전라도 대표 음식 이름을 비난의 대명사로 차용하는 식으로 변질되는 양상까지 이어졌습니다.(앞으로 악플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할 때에도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곤 가급적 악플러들이 주로 쓰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으려 합니다. 범죄의 산물들이 다시 퍼져나가는 걸 원치 않습니다.)
포털 사이트 연예, 스포츠 뉴스 댓글을 없애면서 일부에서는 정치 뉴스 댓글까지 없앤 거 아시나요? 그렇지만 언론사가 해당 뉴스를 연예, 스포츠, 정치로 분류하지 않는다면 이 뉴스에는 댓글을 달 수 있습니다.(꾸준히 강조하겠지만 댓글을 없애는 건 결코 현 사태의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서 쉽게 클릭할 수 있는 정치 관련 뉴스의 댓글을 살펴보세요. 남녀 극단주의자들이 그러하듯 이들 역시 논지와 별개로 일반화의 오류를 맹신하고 있습니다. 피를 흘리고 있지만 않을 뿐이지 냉전보다 더 혹독하게 상대 진영을 묵살하려 시도합니다.
자신이 지지하는 세력과 반대 진영에 서 있는 누군가가 특정 비리에 연루됐다면, 마녀사냥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이는 반대를 냉소하기 위한 최적의 도구가 되곤 합니다. 그리고 언어로 이뤄진 이 냉소는 총, 칼보다 더 잔인합니다.
단순한 욕설, 비난에 그치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하지만 이 틈 사이로 정치 커뮤니티 혹은 (그들만의) 오피니언 리더가 개입합니다. 그들은 댓글 사이에 거짓 정보까지 흘려버립니다. 이 거짓 정보는 분쟁과 분란의 크기를 증폭시키는 촉매제가 됩니다.
민주주의에서 이뤄지는 모든 토론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서로는 '이성적 사고와 근거'를 바탕으로 논의에 임합니다. 그리고 토론은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하려는 순수한 목적을 향해 나아갑니다.
온라인 상에서 진행 중인 열띤 그것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토론의 기본 원칙들입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어느새부턴가 일부 극단주의자의 이야기는 공감 댓글 상위권에 위치하기 시작했습니다. 보기 불편한 내용의 글들이 댓글 상단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입니다만, 생각보다 자주 목격되고 있는 현상입니다.
국회의원 모두가 한마음으로 솔선수범하고 청렴한 태도를 견지한다면 해결될 일입니다. 하지만 상당한 시일이 걸릴 테죠. 그 사이 어긋난 정치적 시각이 우리의 내면을 물들이고 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1020세대 역시 정치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습니다. 세상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이들이 극단적 갈등 양상에 지속적으로 노출돼 편협한 정치 시야를 갖게 된다면, 미래 정치 발전은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극단주의자들의 커뮤니티, 그 속에서 주동자로 활동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치밀하게 이슈를 만들어 냅니다. 이를 통해 대중을 흔들어 놓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은 당당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가상세계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예를 든 두 사례 이외에도 많습니다. 핵심은 이들의 갈등과 그로 인한 부정적 감정들이 현실에서도 표출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이는 바로 다음 화부터 몇 화에 걸쳐 다룰 일부 '1인 방송사업자'들로 인해 급속도로 거칠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