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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 Dec 14. 2023

영어유치원 그 딜레마

사교육에 대한 소신

어제는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났다.

나를 포함하여 5명이 모였는데, 그중 3명은 연중 몇 번은 보는 녀석들이고 나머지 2명은 거의 연말모임에만 보는 친구들이다.

카카오톡 단톡방이 있어 가끔 안부를 주고받긴 하지만 직접 대면하면 새로운 수다가 봇물 터지듯이 쏟아져 나오곤 한다. 특히 내가 그런 것 같다.

얼마 전 '들음'에 대해 글을 쓰면서 반드시 이번 달 이런저런 약속들에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겠다고 다짐했건만, 어제도 그만 점심, 저녁으로 어찌 그리 수다를 떨었는지 집에 들어오는 길에 입안이 쓴 느낌이 나는 것은 왜일까.

조금 변명하자면 반가워서 그랬고, 점심에 만났던 지인은 무려 몇 년 만에 만났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오랜만에 보는 분이라 그간의 공통관심사는 상당히 달라져있음에도 서로 주거니, 받거니 수다삼매경이었다.

아무튼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이번달 남은 약속들에서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경청하리라, 나 혼자 흥분하지 않으리라.


사설이 길었는데 오늘은 영어유치원과 사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내 글을 읽으면서 '아, 또 영어유치원 이야기'냐고 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지만 어쩌겠는가.

지금 나의 관심사가 아이인지라 늘 내 머릿속에 맴돌고 있는 이슈인 것을.


어제 모임에서 한 친구를 빼고는 자녀가 있고 연령이 다양해서 이 모임을 하다 보면 조언과 공감, 위로가 함께 하곤 한다. 그리고 때로는 경악을 금치 못하는 에피소드를 듣기도 한다.

특히 학군지에 사는 두  녀석들의 이야기는 듣기만 해도 피가 마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내가 학군지에 가면 밟게 될 전철일 텐데, "어우, 난 그건 못하겠어"라고 하면서도 아직도 학군지로의 이사를 고민하고 있는 나를 본다.

과연 나는 사교육에 대하여 얼마나 소신을 가질 수 있을까.

이분법적으로 사교육을 찬양하거나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소신을 가지고 사교육을 대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솔직히 나는 자신이 없다.


이미 아이를 영어유치원을 보냈던 경험이 있는 한 친구는 아이가 영어를 좋아하면 빨리 보내라고 했다. "너 그러다 나중에 후회한다"라는 말과 함께.

나의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이야기하니 다른 친구 말이 네가 죄책감 같은 게 느껴져서 그럴 그런다.

그러고 보니 그 말이 일견 맞는 것도 같다.

학군지에 가서 사교육 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 마음과 아직은 아이는 한 참 뛰어놀아야 한다는 마음의 충돌.

마치 창과 방패처럼 치열하게 부딪히는 이 마음.


영어유치원에 망설여지는 이유 중 하나는 말도 안 되는 학습량을 보고 기함하기도 했지만 영어유치원을 보내기 시작하면 그때부턴 말 그대로 사교육 전선을 달릴 것 같은 내가 상상이 돼서 최대한 미루고 미루는 중이다.

아마도 나도 여느 부모들처럼 결국 어쩔 수 없이 학원을 보내며 아이에게 이것이 최선이라고 설득하게 될 것 같은 생각에 시작하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고 나를 다잡는 중이다.

다행인 것은 지금의 어린이집이 너무 만족스럽고, 우리 집에서 보낼 수 있는 영어유치원은 선택지가 너무 적은 것이 나의 최전선 방패가 되어주고 있다.


그냥 적당한 학교 나와서 괜찮은 직장 정도 가지면 좋겠다는 말을 할 때마다 그게 요즘 얼마나 어려운 줄 아냐고 말하는 많은 육아의 선배들을 보면서 아이와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지 다시 한번 고민해 본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입시는 최악의 가성비와 고통을 수반한다고 하는 이 현실이 너무 동 떨어져 있으면서도 언젠간 나에게 닥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니 고작 어린이집을 다니는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벌써부터 겁이 난다.


정말 치열한 고민과 다짐이 없다면 이 틈에서 소신이란 것을 가지기는 어려울 것 같다.

지나고 보면 별 것 아닌 일일 수도, 그냥 다른 집도 다 그렇게 아이를 키우는 일일 수도 있는데 내가 너무 많은 생각을 하는 걸까.

어렵지만 그래도 꼭 소신을 갖고 싶고 지키고 싶다.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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