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지 못한 한을 아이들에게 풀어 학교를 보내주었으니, 언제나 돌아가신 부모님에게 감사하다.
내가 다녔던 그때도 의무교육이 있었는지 알수는 없으나 그래도 없는 살림에 빠지지 않고 학교를 보내준것에 또한 감사하지 않을수 없다.
어릴적 고향 청주는 추웠다.
경제적으로도 추웠고, 날도 추웠고, 마음도 추웠다.
한반에 60명은 거뜬히 넘는 학생수에 겨울은 나기 힘든 계절이었다.
손을 불며 등교한 학생이 가장 기다리는 것은 다름 아닌 조개탄이 훨훨타는 따뜻한 난로였다.
돌아가면서 순번을 정한다.
순번이 되는 어린 초등학생들은 난로에 넣기 위한 조개탄을 배급(?) 받아야 한다.
배급을 담당하는 당시 소사 아저씨는 왜 그리 냉정한지, 정해진 양외에는 주지도 않았다.
아저씨가 한눈을 팔노라 치면, 얼른 몰래 고사리 같은 손으로 몇개 더 담아서 오는 일탈도 기억이 난다.
먼 거리를 이동하여 교실로 들어올라치면, 미리 와 있는 착한 친구들이 불을 피워주겠노라고 덤빈다.
기억도 가물가물 하지만, 성냥과 신문은 항상 교실에 있었던듯 하다.
양동이를 들어 시커먼 손으로 신문지에 불을 붙이고 조개탄을 하나하나씩 얹어서 불을 피우는것은 아주 쉬운일이지만,
그것도 일이라고 그것마저 잘 못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쉽게 교실이 뎁혀지지 않는다.
도시락이 난로위에 순서대로 올라가고, 점심 먹을때 즈음하여 사람의 온기와 더하여 난로의 열기가 최고점을 향한다.
이러한 최고점의 느낌도 잠시, 도시락 먹고 난후 1시간후에는 하교 준비를 위해 난로에 더이상 정성을 기울이지 않아도 된다.
꺼야 한다.
서서히 꺼지기를 기다림과 동시에 집에 가기 급한 일부 친구들은 재를 들고 나가 오줌을 누곤했다.
다음날엔 여지없이 선생님에게 혼난다.
그 냄새가 정말이지 고약했다.
그 친구들은 다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다.
잘 살고 있을것이다.
창문밖으로 학교에 가는 어린아이들이 형형색색의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간다.
겨울엔 히터가, 여름엔 에어컨이 돌아갈것이다.
하지만, 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난 나이고,
지금 아이들은 아이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