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담다디'

by JIPPIL HAN

때는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는 여름 남이섬에서 열리는 강변가요제였다.


지금처럼 오디션 프로그램이 없던 그 시절 여름에 열리는 '강변가요제'

가을에 열리는 '대학가요제'가 유일한 경연 프로그램이었다.


두 프로그램을 통해 이선희나 유열 등의 굵직한 가수들이 배출되었으니 우리에겐 아주 커다란 이벤트다.

그날도 우리 가족은 모두 TV 앞에 모여 옥수수알을 뜯으며 강변가요제를 시청하고 있었다.


경연 중반쯤 무렵 화면엔 '남자인지 여자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인물'이 등장했다.

탬버린을 어깨에 메고, 키는 멀대같이 크고, 곱슬머리를 흔들며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모습.

노래는 또 저게 뭐람? 담다디가 뭐야 대체? 외계어인가?


굵은 허스키 보이스와 짧은 커트머리는 분명 남자인데, 뽀얀 피부와 예쁘장한 얼굴은 여자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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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거실은 그 순간 난리가 났다.


엄마와 언니 그리고 나는 “저건 여자야!”를 외쳤고,

아빠와 오빠, 할아버지, 할머니는 “저게 어떻게 여자냐, 이쁘장한 남자지!”라며 맞섰다.


순식간에 돈 내기가 벌어졌다. 내기 금액은 5천 원.

결국 우리 여자들은 내기에 이겼고, 다음날 나는 친구들에게 떡볶이를 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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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발표의 순간도 잊을 수 없다.

MC 이수만이 “이 영광을 누구에게 돌리겠습니까?”라고 물었고,

우리는 당연히 부모님이나 작곡가를 말하겠지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상은은 뜻밖에도 이렇게 외쳤다.


“마이클 잭슨!”


그 당돌함에 우리 가족은 배를 잡고 웃었다. 정말 범상치 않은 신인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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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학교에 갔더니 역시 이상은 이야기로 학교전체가 떠들썩했다.

당시 내가 다니는 학교는 '숙명여자중학교'.

여자중학교에서 이상은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청순한 긴 생머리의 이지연이 ‘바람아 멈추어 다오’를 히트시키며 남학생들의 우상이 되었다면,

이상은은 우리 여학생들의 ‘자유와 독립’의 아이콘이었다.


학교 안에서 ‘이지연파’‘이상은파’로 갈려 다툼이 생길 정도였다.

당연히 나는 여중생답게 철저한 ‘이상은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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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은 당시 가수뿐 아니라 DJ, 영화, 방송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면서 '자유롭고 독립적인 여성'의 상징이 되었다.

이상은은 아이돌로서 인기를 충분히 누릴 수 있었지만,

돌연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일본유학을 떠나 회화와 음악, 미술을 공부하며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섰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노래는 언제나 방랑자 같은 향내를 풍겼다.

「언젠가는」, 「비밀의 화원」 같은 곡들이 지금도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는 이유일 것이다.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담다디'는 단순한 유행가가 아니다.

내 삶 속 가장 반짝였던 학창 시절의 여름날의 기억이다.


지금도 이상은의 노래를 들으면, 그 시절 방황하면서도 자유를 꿈꾸던 나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그렇게 담다디의 여름은 내 청춘의 한 페이지로 강하게 남아 지금도 나를 미소 짓게 만든다.


아래를 클릭하시면

강변가요제에서의 이상은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zdBQIqg9 TR4


- 다음 회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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