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의 오래된 보석
익산은 백제의 마지막이다.
문헌상으로 백제는 사비에서 막을 내렸지만, 백제가 마지막 기운을 불어 넣었던 곳은 바로 익산이었다.
실낱같은 백제 부흥의 꿈이 막 시작되고 있었던 곳. 그곳이 익산이었다.
세계문화유산 백제유적지구에 익산이 들어간 것도 그 때문이다.
백제의 마지막을 품었던 곳.
발굴 중인 혹은 발굴이 완료된 익산의 곳곳에는 '추정'되는 백제의 것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집터, 절터, 왕궁터.....왕릉.
그 백제의 것들 중 대부분은 이미 눈으로 보고, 발로 답사를 마쳤는데, 딱 한군데 가보지 않은 곳이 있었으니, 바로 미륵산성이었다.
익숙한 곳에서의 낯선 경험이라고나 할까. 미륵산성 성밟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아주 길게는 아니지만 그래도 성이 보이는 곳까지는 제법 걸어야 한다.
한여름의 뙤약볕을 머리에 이고 가는 걸음이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여름만이 갖고 있는 그런 아름다운 빛과 색이 가득이다.
여름숲에 숨어버린 산성을 찾았다. 첫 만남이었다. 꼬까신처럼 가지런히 놓여있는 성돌들이 보인다. 커튼 뒤에 숨어버린 수줍은 아이같다.
수줍어하던 아이 같았던 성돌은 동문을 둘러싼 성돌들이다. 그리고 결코 수줍은 아이같은 그런 모습이 아닌, 아주 담대하고 씩씩한 성돌들이었다.
성벽 답사는 여기서부터 북쪽을 지나 서쪽, 남쪽으로 돌아볼 예정이다.
답사 방향을 이렇게 정한 이유는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사람이 올라갈 수 있는 방향으로 잡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다.
왼쪽이 남쪽, 오른쪽이 북쪽 방향이다.
옹성마저도 칼각을 세우고 있는 성벽.
분명 발 디딘 곳은 성벽 위건만, 2차선 도로의 한 가운데 서 있는 듯한 느낌이다.
아!!!!! 소리가 절로 난다.
사람이 지나는 통로가 아니라 전쟁을 치러야 했던 방어시설.
우린 이렇게 대단한 역사를 가졌고, 대단한 토목을 완성하며 살아왔다.
성벽을 한 바퀴 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올라야 하는 정상.
한걸음 가면 돌무더기,
한걸음 가면 바위
한걸음 가면 돌무더기, 바위, 돌, 돌...
흙보다는 돌이 더 많아 오르는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여기저기 돌무더기들이 많이 보이는 것은 성벽이 있었던 흔적이리라.
그리고 마침내 정상.
산성 답사를 하면 예기치치 않게 산 정상을 제법 찍게 된다.
성벽을 돌다 보니 어쩌다가, 아니면 어쩔 수 없이 오게 되는 정상. 뜻밖의 행운이라고나 할까. 정상에 오면 늘 그런 느낌이다.
미륵산 정상은 여름을 제대로 맞고 있었다. 돋보기로 모아 놓은 빛처럼 뜨겁고 센, 여름의 볕.
그리고 저 멀리 분화구처럼 보이는 곳은 그 유명한 황등채석장이다.
백제시대부터 있어온 석공 기술이 지금까지도 이어진다고 하는 그 채석장.
말도 많고 얘기도 많은 곳인데 산꼭대기에서 보니 그 풍경이 참 남다르다.
정상을 찍었으니 이제 내려가야 한다.
입구에서 봤던.
사람이 올라갈 수 없는 길인듯 하여 반대 방향으로 틀어야 했던 그곳.
그곳으로 사람이 내려갈 수는 있을까.
여기저기 돌무더기가 여전히 있는 것을 보면 분명 성벽이 있었던 곳이긴 한 것 같은데
이길에 과연 성벽이 나올 것인지. 한걸음 한걸음 뗄 때마다 의구심이 드는 길이다.
올라오는 사람도 내려가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 곳. 행여 또 길을 잘못 들어선 건 아닌지. 갑자기
설봉산성에서의 악몽이 떠올랐는데. 이번엔 제대로 내려온 게 맞았다.
남문지와 성벽들. 차도만큼 넓은 길은 아니지만 성벽의 자태는 여전히 웅장하다.
그리고 마침내 마주하게 된 여기.
두발로 서서 내려가는 건 기대하지 말아야겠다.
네발로라도 제대로 내려가기만 한다면 다행.
발길에 채인 돌멩이 하나가 한도 끝도 없이 굴러가는 것을 보며
여름 한낮의 더위가 싹 사라져버린 곳.
앞을 내다보는 것도 무섭지만
뒤를 돌아보는 것도 만만치 않게 무섭다.
이 성벽을 쌓은 사람은 누구고,
이 성벽에서 싸운 사람은 누구이며,
이 성벽을 걷는 사람은 또 누구란 말인지......
처음 시작했던 곳으로 회귀.
동문이다.
문을 달아 두었던 흔적도 보이고,
한쪽 팔로 휘감듯 성문을 보호했던 옹성이 그야말로 옹골차게 서 있다.
전라북도 익산시 미륵산에 위치한 이 산성은 일명 ‘용화산성’으로 불리는데, 옛날에는 미륵산을 용화산이라 했기 때문이다. 고조선시대 기준왕이 이곳으로 내려와 쌓았다고 하여‘기준성’이라고도 부르기도 하지만, 마한의 여러 나라 중 하나가 이곳을 중심으로 세력을 누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산성도 그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태조가 후백제의 신검과 견훤을 쫓을 때 이를 토벌하여 마성에서 신검의 항복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 마성이 바로 이 산성이다.
미륵산성은 둘레 약 1287m, 높이 2.4m이며, 정상에서 사방으로 능선을 따라 성이 만들어졌고, 그 중 하나는 물 흐르는 곳을 향하여 내려가는데 여기에는 동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문에는 작은 성을 따로 쌓아 방어에 유리하게 하였으며, 성안에서는 돌화살촉, 포석환 등 기타 유물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산성을 한 바퀴 돌아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이 성은 그 어떤 텍스트로도 설명이 불가하므로 직접 가서 걸어야 한다는 것을.
걷다 보면, 백제도 알게 되고, 무왕도 알게 되고, 이 땅의 유구한 전쟁의 역사도 알게 된다는 것을.
K 산성은 오늘도 그렇게 우리에게 진짜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