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뉴얼대로 하지 않는 한국인
선배의 입장에서 후배들을 보면 답답한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답답하냐 물으신다면, 정해진 것만 하면 되는데 그 정해진 것'만' 안 한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왜 그런 걸까요? 특히 보수적인 공무원집단에서는 이 특징이 더욱 유발 나게 보입니다. 왜냐하면 현 상황을 유지하는 것이 목표가 된 부서가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큰 조직의 입장에서는 현 상황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이 든 일입니다. "현 상황을 유지한다."는 것이 한 문장으로 표현된다고 쉬운 일은 아닙니다. 세상은 발전하고, 평균은 높아지기에 '유지'에는 상당히 많은 노력이 들어갑니다.
그래서인지 선배들은 후배들이 정해진 것을 하지 않는 행동에 탐탁지 않아 합니다. 그런데 선배님들, 정말 후배들이 정해진 것을 하지 않는 행동이 탐탁지 않나요? 혹시 이것이 더 나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안 해보신 것은 아닐까요?
한국인의 특징으로 손꼽히는 몇 가지 중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매뉴얼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한국은 항상 창의적인 방법으로 무언가를 해결해 내는 것으로 뉴스에 나오곤 합니다. 더 특이한 것은 성공하는 사람들의 큰 특징 중 하나가 주변 사람들과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왜 이런 결과가 생기는 것일까요?
작은 조직에서는 어떤 일을 하든 성과가 눈에 보입니다. 예를 들면 1에서 100%를 늘리면 2가 됩니다. 그러나 100에서 100%를 늘리면 200이 됩니다. 1을 2로 늘리는 것과, 100을 200으로 늘리는 것의 차이는 명확하게 다릅니다. 조금 더 이해를 돕기 위해서 이렇게 가정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연 매출 1억 인 회사와 연 매출 1조 인 회사가 둘 다 10% 성장했다면 어떤 기업이 더 잘한 것일까요?
이렇게 말씀드리니 그럼 더더욱 정해진 것을 해야 하지 않느냐는 말씀을 하실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서 무언가를 하려는 의지를 보셨다면, 그 의지를 발산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는 것도 선배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뭔가 일을 벌여 결과물을 내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입니다. 그런데 약 3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네가 뭔데?"라는 선배의 장벽에 막혀 결과물을 내기는커녕 일을 벌이는 것조차 눈치가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반장님이 바뀐 뒤로 제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같은 업무를 하는 조직 전체에서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는 일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음에도 이 과정에서 도움을 받은 후배들이 많습니다.
잘 되든, 잘 되지 않든 결과적으로 조직에 득이 되면 됐지 손해가 될 일은 아니라는 생각에 일을 시도하는 것은 제 자유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도 조차 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선배들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선배들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하지 않았음에도 말이죠. 지금 생각해 보면 이 결과물이 나왔을 때 피곤해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선배님들, 저는 위·아래로 이야기를 많이 듣는 중간 관리자의 위치에 있습니다. 그래서 선배님들이 많이 하시는 말씀을 많이 듣습니다. 그중에는 "쟤는 왜 시키지도 않는 일을 하냐?"라는 말도 있지만, "쟤는 이걸 꼭 얘기해야만 하는 거냐?"도 있습니다. 혹시 전혀 상반되는 이야기를 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까?
"쟤는 왜 시키지도 않는 일을 하냐?"라는 말을 반복해서 계속 듣는 후배는 결국 시키지 않는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심각한 경우를 봤는데 "쓰레기 좀 줍자."라는 선배의 말에 정말 주워서 가만히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럼 선배님들은 "쟤는 이걸 꼭 얘기해야만 하는 거냐?"라고 하시겠죠?
그런데 만약 후배가 쓰레기를 주웠는데 그 쓰레기가 플라스틱이라고 가정해 보죠. 후배는 PET, HDPE, PVC, LDPE, PP, PS, OTHER의 종류로 나눠 분류합니다. 그동안 플라스틱과 페트로만 분류했던 사무실의 관례와는 다르게 말이죠. 플라스틱을 종류별로 구분하여 배출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가정에서도 잘 안 되는 분류를 사무실에서 잘할 수 있을까요? 못하겠죠. 그래서 수거하는 기업에서 모아놓은 플라스틱을 분류하는 작업을 진행합니다. 만약 이런 후배의 바로 윗 선배가 당신이라면 어떤가요? "쟤는 왜 시키지도 않는 일을 하냐?"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요?
후배의 어떤 행동에 대해 반복되는 피드백은 그 후배의 행동에 영향을 줍니다. 선배님들께서는 후배가 무언가 하려는 사람이라면 그 장점을 살리되 과하지 않는 선에서 지속할 수 있도록 영향을 줄 수 있는 방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후배보다는 훨씬 낫잖아요...ㅎㅎ
혹시 당신은 어떤 선배인가요? 무조건 후배들이 하는 것을 못마땅해하는 선배이신가요? 아니면 후배들이 무언가 하려는 행동을 응원해 주는 선배이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