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한 마디를 듣기 위해 필요한 조건
최근 두 개의 다른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한 회의에서는 "ㅇㅇ내용에 의견 있으십니까?"라는 물음에 응답이 없었으며, 다른 회의에서는 "ㅁㅁ내용에 의견 있으십니까?"라는 물음에 여러 의견이 있었습니다. 조금 신선했던 것은 신입 사원까지 의견을 제시했다는 것인데 이를 통해 분위기가 아주 좋은 부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두 회의를 경험하며 간언(諫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 간언을 받아들였던 왕과 그렇지 않았던 왕의 시대는 크게 차이가 납니다. 당 현종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최대 정적을 제거하면서 당나라 정권을 안정시킨 인물입니다. 어마어마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겠죠.
그런데 그가 재상 한휴로부터 잘못을 지적당해 몸이 수척해졌다고 합니다. 조금만 잘못이 있어도 “이 일을 한휴가 알면 어쩌지”라며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휴를 내치자는 의견이 많았는데, 거기에 “나는 말라도 천하와 백성은 살찌지 않는가. 그게 내가 한휴를 기용한 이유”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당 현종 초기에는 태평성대가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태평성대가 지속되며 감언(甘言)을 일삼는 간신들이 당 현종의 주위에 들어서기 시작했고, 양귀비를 만나며 권력만 휘두르는 폭군이 됐습니다.
사람들은 듣기 좋은 말을 좋아합니다. 간언은 썩 듣기 좋은 말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종종 간언이 올라옵니다. 물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간언 하는 사람의 몫이 아닙니다. 다만, 만약 내가 간언을 듣고 싶다면 한휴 같은 사람을 옆에 두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한휴 같은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요? 후배들이 한휴가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단지 나에게만 듣기 좋은 말만 들으면 안됩니다. 우리에게, 더 나아가 조직에게, 결국 사회에도 좋은 말을 듣기 위해서는 말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서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1개의 간언을 얻기 위해 수십, 수백, 수천의 쓸데없다고 느껴지는 말을 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필요할 때 필요한 말만 듣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랍비 조너선 색스는 계약은 온통 나에게 필요한 것에 관한 내용이며, 서약은 약속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선후배 간 문제로 확장해서 생각해 봅시다. 계속해서 나에게 이득이 되는 것과 손해가 되는 것을 체크하며 걱정하는 계약과 서로 진심에서 우러난 약속을 바탕으로 내 몫을 챙기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는 서약 사이 어딘가에 존재합니다.
만약 선배님이 후배들과의 관계를 계약이라고 생각하신다면, 후배들이 쓸데없는 말만 한다고 생각해 손해만 보는 장사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눈치가 있는 후배들은 금방 선배의 마음을 알아차립니다. 그래서 이 계약은 금방 파기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서약의 관계라고 생각하면 눈치가 있는 후배들은 최대한 선배에게 도움이 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선배들은 후배들과 ‘대화’한다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공통 주제가 많이 없어 대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 적으로든 일 외적으로든 편안한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말이 나옵니다. 물론 선배님들께서는 후배들을 편하게 해주고 계신다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후배들이 편안하게 말을 하고 있지 않다면 선배님의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노력의 효과가 미미하다는 뜻입니다. 그럴때는 "왜 말을 안 하니?"라고 묻지 마시고, 그들이 쓸데없는 말을 하더라도 불편한 느낌을 전달해주지 않기 위해 노력해 주십시오.
후배들과 하는 대화가 대부분 쓸데없는 이야기들일 수 있겠지만, 일상 대화가 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심지어 간혹 이 과정에서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괜찮은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보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단지 마음에 드는 한 마디를 얻기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불편한 말을 수십, 수백, 수천 개 이상 들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