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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푸는사람 Jul 03. 2022

[스타트업 경험기] 5편 원년멤버

이 스타트업의 대표는 같은 단어도 영어로 말하면 좀 더 그럴싸하다고 느끼는건지 영어로 말하면 더 좋아했다. (무슨 90년대 대기업도 아니고...)

그래서 단어 선택을 Starting Member? Original Member라고 했었다.

본인은 원년멤버라는 말을 쓴적이 한번도 없다고 했다.

이게 다른말인가? 

원년맴버나 오리지널 멤버나...

그러면 오리지널 멤버가 아니면 다른 직원들은 짭멤버인가?

10명도 안되는 회사에서 오리지널이냐 아니냐를 구분하는게 의미가 있는가?


이곳의 제품, 조직 모든게 최악의 상황 직전이라 나는 어떻게든 잘되게 하고싶어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여기서 최악의 상황이라는건 줄퇴사인거다.


애초에 나를 영입할때부터 회사도 제품도 부족한게 많고 어떻게 해야하는지 잘모르니 도움이 필요하다,

조언이 필요하다였기 때문이다.

근데 그게 듣기 좋은 말만 해달라는 뜻일줄은 몰랐다......


도움이 필요하다 = 편들어줘라

조언을 달라 = 원년멤버 말고 다른멤버를 훈계해줘라


내부적으로도 대표와 원년멤버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든 멤버가 현재의 제품에 문제가 있고

이건 돈이 안된다, 팔리지 않는다였다. (실제로 맞는 말)

아마도 그 한 명의 원년멤버에게 각별한 감정이 있기에 어떻게든 편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나에게 처음엔 잘 숨기고 있다가 나중에는 편들어주지 않는다며 섭섭하다는 말까지 했다.

그럴거면 면접볼때  그 부분을 미리 까놓고 얘기해서 해준다는 사람을 뽑지 왜 나한테 이러나 싶다.

내가 커리어와 양심이 그렇게 쉽게 타협될 수준은 아닌데 말이다.

나는

진심으로

지금까지도

모욕감을 느낀다.


제작방식부터 문제가 많았는데

워터폴 프로젝트를 애자일로 진행하고 있었고

그로인한 수많은 문제와 비용을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고

더 큰 문제는 그렇게 겨우 만들어낸 제품이 비즈니스화 될 수 없는게 가장 큰 결함이었다.


이 회사에 들어와서 몇번의 비즈니스 미팅을 했지만 잘해봤자

최저시급도 안되는 금액의 POC정도만 진행할 뿐 계약을 하지 않았다.

이유는 명백했지만 CEO는 이들과의 비즈니스 얘기가 진행되고 있다며 마냥 신나있었다.

그리고 미팅 때마다, 담당자들의 표정에서 계약까지는 못가겠구나 라는걸 나는 읽을 수 있었다.

수백억대의 매출을 올리며 상업적 성공을 한 회사들이 쉽게 속아넘어갈리가 없다.

다만 대면할때는 업무용 칭찬과 미소를 지을 뿐 누가 면전에 대놓고 기분 나쁠 지적을 하겠는가?

이런 업체를 한 두번 상대해본것도 아니기에 더 잘 알거다.

업체 미팅 후, 회고회의를 할때에도 비즈니스화 할 수 없는 결함에 대해 직언하기도 했고

이후 클라이언트사를 통해 여러차례 이 결함에 대한 지적도 받았었다.

사업화가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얘기했지만

CEO는 이럴때마다 남일처럼 대답했다.


"그러게요. 저도 아쉽네요"

"???????"


아니 이게 어느나라 화법이야? 당신이 대표이사인데요??

이때 알았어야 했는데... 이런 회피방식은 절대 바뀌지 않을거라는 걸!


비즈니스화가 어려운 이유는 애초부터 이쪽 비즈니스나 업무, 프로젝트 경험자가 없이

지맘대로 설계된 제품이기 때문이다.

이 제품은 업데이트 될 때마다 하위의 수많은 콘텐츠를 일일이 수동으로 사람이 바꿔야한다.

게임으로 예를 들면, 게임에 신규 아이템이 추가되면 캐릭터마다 아이템이 자동으로 추가되는 시스템이 아니라 캐릭터 하나하나 아이템을 따로 만들어서 올려줘야하는 구조인거다.

그러니 캐릭터가 많아질수록 아이템의 개수가 배수로 증가하고 제작 효율은 떨어지고 데이터는 무거워지고

그걸 만드는 인력도 기하급수적으로 필요해지는 구조인거다.

그렇게 똑똑한 사람이 왜 이걸 캐치하지 못하는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대학 과제 수준에서도 발견될 문제일텐데 말이다...


아무튼 이게 그들에겐 인정하기 싫은 상황이었나보다.

언급만 해도 예민하게 굴었다.

누가?

원년멤버들이!


왜 그러나 했더니 내가 오기 훨씬 전부터 직원들에게도 가루가 되도록 까였었나 보다.

그런데도 이 악물고 이지경까지 끌고온게 어찌보면 대단한거였다.

이 회사의 성과는 이거 하난데 이게 역린인 상황

그런데 온몸이 역린이다. 웃프지도 않은 상황

똥줄이 타는 대표이사라면 온몸의 비늘을 뽑아서라도 바꾸려고 할텐데

직원들만 똥줄이 탈뿐이었다.


원년멤버님들께서 고생해서 만드신 소중하고 훌륭한 제품을 누가 까는게 감정적으로 너무 싫었던거다.

그런데 내 입장에서는 한 회사의 대표가 왜 감정적으로만 고집부리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냥 어려서 그런건지, 아직 똥꼬 찢어지게 고생을 못해봐서 그런건지


원년멤버 이슈는 제품외에도 회사 전반에 암세포처럼 번져있었다.

나는 직원들에게 여러정보를 듣기도 했지만 회사란 늘 말이 오고가는 곳이라 일방적인 신뢰는 하지 않았다.

내가 겪고 본것만 판단근거로 삼아야 한다는걸 경험 상 알고 있었다.


일단 근태 문제부터 의사결정, 핵심업무, 처우 등에 대한 반감이 고름 터지듯 터져있었다.

근태 문제는 3개월간 개인적으로 문제직원들 위주로 조용히 기록해서 확인하니 직원들 말이 사실이었다.

기본적으로 CEO부터 근태가 개판이라 직원들한테 본인도 할말이 없을 상황이긴 했다.

원년멤버들은 근태평가와 불이익에서 제외되었고,

원년멤버들의 비용지원과 인력지원은 다 들어주는 구조였다.

일반직원들에게 그런 혜택은 주어지지 않았다.

이쯤되면 면접 때, 그렇게 강조했던 "똑똑하고 좋으신" 분들은 원년멤버 한정이었던 모양이다.


이 상황을 만드는건 원년멤버 개개인이 아니었다.

이들은 하나 하나로 보자면 특별히 진상이라고 할만한 사람들은 없었다.


문제는 이 상황을 만들고 언급하고 계층을 나누는건 CEO였다.

"xx님은 스타팅 멤버이기도 하고 정말 고생을 많이 하셨었다. 그래서 블라블라~"

나는 이때, 정말로 당황스러웠다.

이런 얘기를 대놓고 하는 사람이 있어? 대부분의 사장들도 사람이라 좋고 싫고는 있기 마련이겠지만

그걸 드러내놓지는 않는다. 드러내서 안된다는걸 알고 있으니까

그런데 이분은 너무도 천진난만하게 드러내서

마치 안보고 싶은 CEO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는듯한 민망함에 난처했다.

나는 화들짝 놀라서 직원들 앞에서 혹시 그런 언급을 했었나? 그러면 안된다 라고 했었다.

그런데 소용없는게 이미 여러번 했던 모양이고 직원들도 알고 있었고

그로인한 사건들이 누적되고 단체퇴사라는 폭풍이 휩쓸고 지나 갔었다.


그때의 여파로 조직의 재정비든 전환점이든 뭐든 필요했던 모양이고

그 이후로 영입한게 나를 포함한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분들이었다.


스타트업 3년차에 단체퇴사 이벤트가 대부분 발생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원년멤버와 신규멤버간의 갈등 혹은 차별이 원인이라고 한다.

(이 부분은 나중에 스타트업 조직의 특징 관련 내용에 추가로 언급하겠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에서 원년멤버들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뭐라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

프로토타입 수준으로 사업화가 어렵다는걸 알게되는 시점에

사업화가 가능한 수준으로 고도화시키는 경험 많은 인력들을 채워 넣는다.


이때 조직갈등이 심화되기 시작한다.


젊은 원년멤버와 경험 많은 신규멤버 사이에 조직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다 결국 권력싸움으로 번지게 된다.

많은 초보 대표이사들은 이때 누구 편을 들어야 할 지 갈등하고 고민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방법이 있다.

경험 많은 멤버들의 대우와 권한위임을 확실히 하고

원년멤버들은 경험 많은 멤버의 영향을 받아 성장하도록 하고

(영향이란 조언, 업무지시, 관리, 협업 등 다양한 형태)

원년멤버들은 stock으로 보상해주면 된다.

이 부분이 갖춰지지 않으면 어느쪽이든 이탈하게 된다.

수준에 적응하지 못하는 원년멤버가 도태되거나

이런 멤버를 끌어 안고가다 같이 좌초되거나

수준에 만족하지 못하는 경험 많은 멤버가 나가거나

블랙기업으로 소문 나서 좋은 인재를 채용하기도 어려워지거나


나도 이 스타트업을 다니면서 매일 매일이 지옥같아서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건가? 싶어

조언을 받았던 HR전문가의 말씀이었다.


내가 이 스타트업에 와서 가장 놀란것 중 하나는 절반 이상의 멤버들은 커리어 향상을 바라고

코칭에 대한 갈증이 너무도 크다는거였다.

수평조직에서 일하면서 상사를 원했다.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처음엔 안타까웠지만 그런 마음도 사라진건 그들의 진정한 속마음을 읽었을때다.

나는 시행착오가 귀찮으니까

내가 원하는 당신의 지식과 경험을

내가 알아듣기 편하게,

내가 원할 때,

내가 듣기 좋게,

하지만 평가나 요구는 하지마.


이런 뜻이었다.

소위 젊은꼰대 시집살이가 이런건가 싶었다.


원년멤버들은 아~몰라 돈되던 말던 나 하고싶은거 할거임

다른 멤버들은 대표 해달란것만 해주면 편하니까 회사의 미래 알게 뭐임

나중에 들어온 관리자급 멤버들은 "아 ㅅㅂ ㅈ됐는데? 속았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채 낚여서 이직도 못하는 수준의 업무를 하고 있는 순진한 인턴과 신입사원들

고군분투하는 극소수의 제정신인 멤버조차 이미 멘탈이 터져 있었다.


아.. 존중 더이상 못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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