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우주를 닮고 싶었고, 지금은 우주를 품고 산다.”
내가 원래 이런 건 아니었던 거 같다.
냉소적이고 합리화도 잘하고 엉덩이도 무겁다.
변명이라고 할 수 있지만 원래는 아니었던 거 같다.
그렇게 된 데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어렸을 때는 거의 모든 남자아이들이 그렇듯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었다. 이건 인간 남자아이의 본능인 거 같다.
하늘의 별들이 이뻤고 달은 밝고 신비로웠다.
엄마가 밤마다 들려주는 별자리 마다마다의 신화들은
나의 상상력들을, 별들의 대한 동경을 끌어올려 줬다.
그래서 우주로 나가 그 신화 속의 주인공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도 나눠보고 같이 사냥도 나가보고 우주란 들판을
뛰어놀고 싶었다. 무서운 전갈도 있었지만 오리온이라는 훌륭한 사냥꾼이 날 지켜줄 것만 같았다. 아직 많이 어렸을 때의 내 상상력은 상상초월이었다.
우주비행사가 되기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는 걸 알았을 때는 천문학자가 되고 싶었다. 그저 망원경으로만 하늘을 보며 별들과 얘기만 하면 될 거 같았다.
초등학교 때는 엄마가 작은 천체망원경도 사줬었다.
현미경도 되는 거였는데 설명하기엔 어렵다.
그걸로 밤마다 달도 보고 토성도 찾아보고 목성도 찾아다녔다. 정말 내가 천문학자가 된 거 마냥 즐겁고 우주 속을 누비는 우주여행자가 된 거처럼 기뻤다.
이것도 잠시 그 망원경은 고장이 나버려 창고에 처박히게 됐다. 이때부터 내 꿈인 천문학자도 창고 안에 처박아 두었다. 그렇게 나는 닭 쫓다 닭이 지붕으로 도망치면 바라만 보는 강아지였다. 내려오라고 짖던, 올라가려고 용을 쓰던, 머리를 써서 올라갈 곳을 찾던지 해야 하는데 나는 그냥 바라만 보다가 만다.
이게 내 성격인가 원래 내 본성인가 아님 어렸을 적 안 좋은 기억들 때문에 쉽게 포기해 버리는 것인가 난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이 나다. 부정은 못 하겠다.
한참 우주비행사의 꿈을 천문학자의 꿈을 잊고 지내다가
고등학교 때 지구과학을 배우게 된다. ‘내가 하고 싶던 공부야!!’라고 속으로 외쳤다. 정말 재미있었다. 여태 해왔던 공부들 중에서 말이다. 따로 공부를 안 해도 다큐로 봐왔던 것들이라 기본 8~90점이었다. 다시 한번 천문학자가 되어볼까 하다 물리중심의 천문학인걸 깨닫게 된다. 난 수학에 굉장히 약하다. 뒷 이야기는 안 해도 되겠지.
아마도 쉽게 포기해 버리고 그리곤 뒤도 잘 돌아보지 않는
이런 성격 때문에 항상 우울감과 무기력감을 달고 다니는 건가 싶다. 성취감이 없다.
나에게 행복의 기준이 무엇이냐고 말해보라 하면 하늘의 구름을 잡아봐라 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얼마 전에 나는 오랫동안 잊고 있던 꿈하나를 이미 이루었다는 걸 깨달았다.
너무 당연해 여태 눈치도 못 채고 있었다.
그날도 난 하늘의 별들을 보고 있었다. 가족들과 여행을 갖다 오늘 길에 어느 시골길을 지나게 된 것이다.
운전 중이었지만 습관처럼 난 하늘을 바라봤고 요 몇 년 동안
볼 수 없었던 많은 양의 별들을 보게 되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항상 그렇게 많은 양의 별들을 보면 흥분된다.
딸에게 하늘을 보라고 별 엄청 많다고 말하자 아이도 많은 별들을 보고 좋아했다. 잠깐 차를 세우고 선루프를 열어 그 별들을 눈에 담기 시작했다. 아직 날이 추웠지만 괜찮았다. 내가 좋아하는 겨울철 별자리들이 하늘에서 뛰놀고 있었고 신이 나기 시작한 나는 옆자리 아이에게 내가 알고 있는 별자리들을 알려주었다. 같이 별들을 바라보며 들었던 생각은 지금 난 여태 저 우주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안달 났었지만 나는 이 세상에 만들어질 때부터 우주 속에서 잉태되었고 태어나고 자라나고 뛰어놀고 있었다. 지구라는 우주선을 타고 우주를 여행하고 있으며 하늘이란 창을 보며 우주를 관찰하고 있던 거였다. 나를 우주 외적인 존재로 생각해서 여태 외로웠던 거였다. 나는 우주가 만들어지던 빅뱅 때부터 존재했었다. 내가 우주이고 우주가 나였다. 우리 모두 별에서 생겨나고 생명이 다하면 별로 돌아간다.
결국 우리 자체가 별이다. 그래서 그렇게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동경으로 신비롭게 바라보며 그리워했나 보다.
우리는 우주를 아직 잘 모르지만 그래서 더 그리운가 보다.
어쩌면 그건
내가 딸의 이름을 우주라 지은 이유였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