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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기타 Jun 23. 2024

경비원 김 씨

사람 위에 사람 없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사직서 제출 후 마지막 근무를 마친 경비원 김 씨가 일지에 써놓은 글이다.

  관리사무소의 하루는 업무 개시 전 짧은 회의로 전날 퇴근 후의 단지 상황을 확인하고, 오늘의 주요 일과를 공유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초소별 일지에 사인을 하던 중 김 씨의 글을 보았다. 6개월 전, 건강 문제로 사직한 경비반장 후임으로 발탁된 선임 경비원의 빈자리에 채용된 김 씨였다. 

  채용 후, 한 달이 지날 무렵 그에 관한 얘기가 들려왔다. 장애인이라는 것이다. ‘장애인이라니?' 면접 시 순박한 인상에 말투가 다소 느린 것 외 듬직한 체격이 눈에 띄었을 뿐 신체적 결함은 발견할 수 없었다. 경비반장에게 그간의 정황을 물었다. 경비반장도 처음엔 몰랐다고 했다. 지난 한 달 동안 그를 부르면 항상 잰걸음으로 왔기에 장애가 있는 줄 몰랐으나 그동안 지켜본 바, 오른쪽 다리가 약간 불편한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장애가 어느 정도인지 좀 더 관찰하여 단지 순찰, 주차 단속, 민원 응대, 재활용품 분리, 택배 관리 등의 경비 업무수행에 문제가 없는지 살펴본 다음 대책을 세우기로 했다. 이후 관찰한 결과, 경비업무 수행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의 장애는 아닌 것으로 판단하였다. 반장도 업무수행에 별 무리가 없으며 동료들과도 잘 지내고 있으니 좀 더 지켜보자고 했다. 저 정도의 장애로 아파트 경비원조차 할 수 없다면 어쩌란 말인가 하는 약간의 휴머니즘적 생각과 교체할 정도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김 씨 문제를 일단락 지었다.


  며칠 후, 김 씨를 불러 업무수행에 애로사항은 없는지 물었다. 약간 더듬는 말투로 '괜찮습니다. 할 만합니다' 하며 계면쩍은 웃음을 지었다. 다리 때문에 일하는데 불편한 점은 없느냐는 물음에 없다고 했다. 사람에 따라 경비업무 부적격자라 말하는 이도 있겠으나, 나와 함께 일하는 동안은 열심히 하고 지금처럼 동료들과 잘 화합하며 특히, 입주민에게 친절할 것을 당부하고 면담을 마쳤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지난주까지도 별다른 문제없이 근무하던 그였다. 

  대다수가 고령자로 나와 동년배이거나 연상인 경비원 열한 명 중 김 씨는 유일한 50대였다. 그의 장애를 언급하는 소수의 입주민에겐 요즘 젊은 경비원 채용이 쉽지 않으며 나름으로 열심히 하고 있으니 좀 더 지켜보자며 양해를 구했다. 

  경비원 교체는 재활용품 임의 반출, 타인 물품에 손을 대거나, 감내할 만한 일에 입주민과 크게 다툰 경우, 동료 간의 화합을 해치는 경우 등의 몇 가지 기준을 두고 있었다. 이 기준을 위반하지 않은 경비원에 대한 교체 요구는 응하지 않았다. 김 씨 사직의 발단이 된 것은 가구를 옮길 때 도와주지 않았다는 것을 빌미 삼은 어느 입주민의 이른바 갑질 때문이었다. 그가 장애인이고, 장애인을 경비원으로 채용했다고 떠벌리고 있다는 얘기에 그냥 참고 넘어가라는 동료들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모멸감과 자기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기 싫다며 사직한 것이다.     

  대다수 주민은 생업에 바쁜 이유로 본인과 직접 관련 없는 일이면 입주자대표회의나 관리소에서 하는 일에는 무관심하다. 알아서 잘하겠거니 하는 믿음에서이다. 반면에 지나친 관심과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도 있다. ‘내가 왕년에…. 라테는 말이야….’ 하며 과거 동대표 경력이라도 있으면 그게 무슨 감투나 훈장으로 생각하는지, 그 경력을 들먹이며 자신을 알아주거나 본인과 관련한 민원을 잘 처리해 주길 바란다. 그렇지 않은 경우, 관리소 업무에 비판적이며 비우호적인 시선으로 작은 일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임기 2년인 대표자 정원이 아홉 명인 준공 30년 차 아파트에 동대표 한 번 안 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정작 저런 분이 동대표를 하면 좋겠다는 주민은 몇 차례의 권유에도 한사코 손사래를 친다. 이런 현상으로 동대표 선출과 입대의 구성에 애를 먹고 있는 공동주택 단지가 한두 곳이 아니다. 김 씨의 장애가 그런 비판적 성향의 입주민에게는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못 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 아파트의 품격에 맞지 않다며 장애가 있는 경비원 교체를 요구하는 것은 입주민으로서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관점에선 장애인을 경비원으로 채용하고 또 교체하지 않는 관리소장의 행위는 묵과할 수 없는 것이다. 몇 차례 그런 시선과 얘기를 들은 김 씨가 사직을 결심하고 마지막 근무 후 사직 인사를 대신해 일지에 남긴 글이었다.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태생적 또는 후천적인 장애를 입은 사람이 어디 한둘이랴! 그런 신체적 장애를 큰 흠결로 보는 사람이 오히려 장애인이 아닐까? 정신적 장애로 인해 나와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이나 불특정 다수에게 해를 가하는 사건, 사고 소식을 종종 접한다. 그런 정신적 장애가 있는 사람에 비하면 약간의 신체적 장애가 있다 하더라도 정신이 건강하다면 더불어 살아가는 기회가 주어져야 함이 마땅한 것이다. 편협하고 이기적인 생각으로 약간 다름과 차이를 이해하지 않거나 포용하지 못한다면 그가 바로 장애인이요, 그 사회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세상에 신체적 장애 외 정신적 장애가 없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와 약간의 차이와 다름이 있는 그들을 우리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동등하게 대하는 의식이 사회 전반에 만연할 때 비로소 우리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될 것이다. 김 씨가 이번 일로 좌절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가 남긴 글 아래 소장 지시 사항란에 힘주어 쓴 글씨로 답글을 적었다.      

  '그동안의 수고에 감사하며, 더 나은 직장에 꼭 다시 취업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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