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시작은 언제나 '자기 확신'이다
근 1~2년간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지방에서도 네이버를 갈 수 있어?' 혹은 '카카오가 지방대 학생도 뽑아?'였다. 지긋지긋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들은 질문이지만, 항상 나의 대답은 같다. '안 뽑을 이유는 또 뭐야?' 내가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는 이 대답에 대한 근거를 설명해보기 위해서이다. 그 질문을 던졌던 이들을 위해서, 세상의 많은 지방대생들을 위해서, 그리고 나의 또 다른 미래를 위해서.
나는 지난 2년간 카카오 엔터테인먼트, 플레이리스트, 그리고 네이버에서 세 번의 마케팅/브랜딩 인턴을 경험하였다. 그리고 그 속에서, 약간의 숨은 합격 공식들을 찾아내었다. 이는 절대적인 정답이 아닐 수 있다. 그래도 같은 꿈을 꾸는 이들에게 힌트 정도는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2021년 1월, 코로나가 극성을 부릴 무렵. 3학년 2학기를 마친 나는 문득 이런 생각에 빠졌다. '올해도 이 무료한 비대면 수업이 지속된다면 너무 심심하겠는걸.' 언제나 자극을 찾던 나의 성격 상, 팬데믹이라는 특수한 상황은 1년이 다돼가도록 적응이 되지 않았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학교를 떠나자. 학교를 떠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그리 모범적인 학생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의미 없는 공백기'는 독이다는 정도는 알고 있는, 대한민국의 한 대학생이었던 나는 무작정 초록창에 '대학생 휴학 계획'을 검색해보았다. 10건 중 8~9건은 인턴을 추천하는 글이었다.
인턴이 정확히 무슨 포지션인지, 경쟁률은 어느 정도 되는지, 아무런 정보도 없던 나는 취업 카페에서 인턴 공고를 훑어보았고, 눈에 띄는 회사를 발견하였다. '카카오 엔터테인먼트'. 진행 중인 공고 중 가장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던 해당 회사는 '카카오페이지'와 '카카오 M', 그리고 '멜론'이 결합한 카카오의 엔터사업 결정체였다. 직무는 'IP 마케팅'으로 카카오의 다양한 영화, 웹툰, 웹소설 등 IP를 마케팅하는 팀이었다. 그리고 공고의 내용 중, 원하는 인재상에 관한 부분이 내 뇌리에 꽂혀 들어왔다.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한 줄, "덕질과 직업이 일치하는 ‘덕업 일치’를 실현하고 싶으신 분이면 더 환영합니다.". 덕. 업. 일. 치. 이것은 세상 모든 오타쿠들의 꿈일 것이다.
기억도 선명히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코난과 김전일을 사랑해온 나름의 덕후로서, 해당 공고를 보자마자 '이건 난데?'라는 생각으로 지원하였다. 이쯤 되면 내 일련의 선택 기준에 의문이 생기실 수도 있겠지만, 나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단순하다. 이러한 도전 과정에 있어서, 걱정이나 두려움이 거의 없는 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무언가를 지원하면서 떨어질 거라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다. 나는 자기 확신이 매우 강한 편이다. (물론 이걸 겉으로 티를 내고 다니지는 않는다. 나도 눈치란 게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자존감'으로, 또 다른 이는 '근자감'이라고도 부르더라. 그러나 아무렴 어떠한가.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 삶에 있어, 모든 변화의 시작은 그 자기 확신에서 발현되었다. 하여 나는 이것을 나의 몇 안 되는 장점이라고 말하고 다닌다. 나도 나를 못 믿으면, 누가 나를 믿어주겠는가. 그리고 놀랍게도 서류-과제-인성검사-면접전형을 거쳐 최종 합격하게 되었다. 내 나이 만 21살 때 이야기이다.
무언가 많이 생략되었지만, 이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차차 하도록 하자. 아무튼 첫 지원에 입사를 하게 된 나는, 이 바닥이 얼마나 치열한지 전혀 알지 못하였다. 그저 조금 더 진지한 대외활동 정도로 치부하고 시작하였던 것 같다. 판교 첫 출근 날, 카카오 사옥을 보았던 충격을 잊지 못한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 사원증을 걸고 돌아다니는 직장인들. 그때 깨달았어야 했다. 이건 장난이 아니라는 걸. 처음 갖는 나의 사무실, 나의 자리, 나의 명함. 설렘보다 두려움이 앞서기 시작했었다. 함께 입사하게 된 인턴 동기 언니는 유명 외국계 게임회사에서 인턴을 하다가 이직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해외 유학생활, 국제고 출신, 토익 만점.. 언니의 스펙을 알게 될 때마다, 이상한 벽 같은 것이 켜켜이 쌓이는 기분이었다. 비단 동기 언니뿐만이 아니었다. 팀원들의 커리어는 더 어마어마하였으나, 설명은 생략하도록 하자. (지금도 그런 분들하고 한 팀에서 일했다는 것이 그저 영광일 뿐이다.)
아무튼 입사하고 한 달 동안 내가 느낀 감정을 총망라하는 단어는 '현타'였다. 진짜 취업시장의 수준을 알게 된 것이다. 프로의 세계에서 실수는 실력이었고, 팀원들은 언제나 반짝반짝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근본적인 의문이 생겼다. '대체 내가 어떻게 뽑힌 거지?'. 당시 나는 자격증은 불구하고, 제대로 된 어학성적 하나 가지고 있지 않았다. 지방대 3학년, 노어학, 노수상, 노경력. 최악의 정량 스펙을 가지고 있던 내가 해당 공고를 뚫은 것은 기적과도 같았다. 동기 언니의 말론 '자소설 닷컴'에서 해당 공고 지원자가 700명이 넘었다고 한다. 최종적으로 2명을 뽑았으니, 경쟁률은 350~400대 1 정도가 되겠다. 모두가 어떻게 뽑혔냐고, 어떤 스펙을 가지고 있었냐고 물어보았지만, 나는 제대로 된 답변을 해주지 못하였다. 당연하다. 스펙이랄 것이 없었으니 말이다. 하여 나는 결국 팀장님에게 대놓고 물어보았다. '저를 뽑아주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이 팀장님의 답변에 관한 것이다. 내 시점이 아니라, 마케팅팀 팀장님의 시각에서 인턴을 뽑은 기준에 관한 것이니, 어느 정도는 신뢰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