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0년을 기념하기 위해 떠난 유럽 가족 여행, 마지막 여정은 프랑스 파리(France Paris)였다. 유시민 작가는 책 '유럽 도시 기행'<생각의길>에서 "파리는 지구촌에 현존하는 최고의 문화 도시"라고 극찬했다.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빛의 도시 파리는 서울에서 느낄 수 없는 감미로운 도시 감성을 선사한다.
"파리는 도시를 걷는 즐거움이 있다."
전날 파리 야간투어를 했던 아내가 말했다. 이탈리아 피렌체에 푹 빠졌던 아내는 이제 파리도 사랑하게 됐다. 파리는 아들이 선택한 여행지다. 아들은 올해 초부터 미국 뉴욕에 가자고 했다. '자유의 여신상'을 직접 보고 싶단다. '스파이더맨' 영화를 즐겨보던 아들이 영화에서 봤을 법하다. 고환율과 인플레이션이 발목을 잡았다. 미국은 당분간 갈 수 없는 나라가 됐다. "아빠가 다시 회사를 다니면 돈 모아서 가자."
에펠탑은 2순위였다. 뚜렷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에펠탑이 보고 싶다고 했다. 자유의 여신상은 파리에도 있었지! 번뜩였다. 뉴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은 프랑스가 미국 독립 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 선물로 준 것이다. 미국은 답례로 프랑스 혁명 100년을 기념해 자유의 여신상 '미니어처' 버전을 보냈다. 원조는 프랑스인 셈이다. 파리 '자유의 여신상'은 에펠탑 인근 시뉴섬 끝자락 그흐넬르다리에 있다. 에펠탑과 가까웠다.
파리 여행 둘째 날, 우리는 사전 예매한 입장권 시간에 맞춰 에펠탑으로 향했다. 지하철을 이용한다면 6호선 'Bir-hagem'(비르하겜)역이나 8호선 'École Militaire'(에꼴 밀리테)역에서 걸어갈 수 있다. 13년 전 맨 처음 파리에 왔을 때는 6호선을 이용했다. 이번에는 숙소와 가까운 8호선을 탔다. École Militaire역에서 에펠탑까지 딱 1km. 걷는 게 싫다면 6호선을 추천한다. École Militaire는 나폴레옹이 졸업한 프랑스국립군사학교다.
우리는 입장 시간을 맞추기 위해 뒤돌아보지 않고 에펠탑으로 '돌격'했다. École Militaire역에서 에펠탑으로 갈 때는 '샹드마르스 공원'(마르스 광장)을 통과하게 된다. 샹드마르스 공원의 늦가을 정취가 영화 '뉴욕의 가을'을 떠올리게 한다. '파리의 가을'을 촬영한다면 에펠탑이 보이는 샹드마르스 공원 일대가 배경이 되지 않을까.
7년 만에 다시 찾은 에펠탑은 낯설었다. 관광객과 노점상이 자유롭게 오가던 에펠탑 바로 광장(?)은 거대한 가림막에 가려 접근이 차단돼 있었다. 대신 몇 군데 출입구를 만들고 보안대를 설치했다. 입장권(티켓) 있는 사람만 에펠탑 광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2015년 11월 파리 도심에서 발생한 테러 이후 보안을 강화한 것으로 보인다. 테러 발생 한 달 후 '파리 기후변화협약' 취재 차 파리에 왔는데 그때 본 에펠탑이 '자유로운 에펠탑'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보안 검색은 2번 진행한다. 에펠탑 광장으로 들어갈 때,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에. 비수기인 만큼 대기는 길지 않았다. 그래도 엘리베이터를 탈 때는 10분 정도 기다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가서 다른 엘리베이터를 타고 정상에 올랐다. 에펠탑은 세 번째지만 늘 감회가 새롭다. 파리 시민들은 느낄 수 없는, 여행의 묘미다. 지상에서 약 300여 미터. 바람은 거셌지만 아들은 행복했고 아내는 만족했다. 이 순간을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한다는 데 살짝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아내와 아들은 추위를 피해 실내 전망대로 내려갔지만, 나는 이 순간의 감동을 좀 더 느끼기 위해 외부 전망대에 계속 있었다.
혼자 파리 시내를 바라보며 멍 때리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외국인 여성이 말을 걸었다. 내가 "I'm afraid of heights."라고 하자 "You are already here, you are brave."라고 격려(?)해줬다.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그 여성과 5분 정도 얘기했다. 자기는 포르투갈에서 왔고 옆에 있는 분이 어머니라고 했다. 나는 '포르토'에 가보고 싶다고 하자, 포르토에 살고 있다고 했다. 어머니는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랐지만 딸은 영어권 사람처럼 영어를 잘했다.
친구 같은 여성과 얘기가 끝날 무렵 지나가는 커플이 나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영어권 나라에서 온, 나와 비슷한 나이의 부부였다. 사진 찍을 준비를 하는 동안 포르투갈 여성과 부부의 아내가 이야기 꽃을 피웠다. 포르투갈 여성이 "사실, 오늘 제 생일이에요."라고 하자 영어권 나라에서 온 부부의 아내가 축복의 말을 쏟아냈다. 그리고 두 여성은 따뜻한 포옹을 나눴다. 1분 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사이 남편은 계속 아내의 팔을 끌어당기면서 사진 찍자고 보챘다. 나는 흐뭇한 마음으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다.
개인적으로 이런 순간들을 정말 좋아한다. 여행을 하면서 영화가 떠오르고, 여행을 하면서 친구가 되고,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다. 문득 피사의 사탑에서 만났던 필리핀계 미국인 할아버지가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