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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계인총각 Jan 17. 2023

<여행의 순간들>2. 콜로세오의 아침


콜로세오(Colosseo, 영문명: 콜로세움)가 눈앞에 들어왔을 때 '이게 꿈인가' 싶었다. 책으로만 봤던 그 모습이 내 앞에 펼쳐졌을 때 알 수 없는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비단 콜로세오의 웅장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랑하는 가족과 유럽 여행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삶이 나아졌다는 게 감격스러웠고 뿌듯했다. 로마의 눈 부신 아침 햇살이 여행 내내 긴장했던 내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줬다.

이탈리아 로마 콜로세오 외벽

로마에서 우리 가족의 마지막 일정은 콜로세오 내부 관람이었다. 코로나19 이후 콜로세오 내부 견학은 100% 사전 예매로 바뀌었다고 한다. 방문 날짜와 시간을 지정해야 한다. 우리는 아침 산책을 하듯 여유로운 관람을 위해 첫 번째 시간대(09:15)로 예약했다. 후기들에 따르면 콜로세오는 성수기 때 '1시간 대기'는 기본이고 관광객이 너무 많아 사진 찍기도 힘들다. 여름에는 로마의 뜨거운 햇볕까지 관람을 방해하기 때문에 아침 일찍 방문하는 것이 좋다.


우리는 숙소에서 버스를 타고 '머큐어 로마 센트로 콜로세오 호텔'(Hotel Mercure

Roma Centro Colosseo)에서 내렸다. 머큐어 호텔은 콜로세오와 도보 거리여서 여기서 숙박할까 생각도 했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파리 에펠탑이 보이는 숙소처럼 콜로세오가 보이는 호텔이 로망이었다. 하지만 콜로세오는 로마 역사지구에서 가장 멀리 있는 곳으로, 단기 여행자에게 지리적으로 불편하다. 에펠탑이 파리 중심가에서 가장 멀리 있는 관광지인 것과 마찬가지다. 화창한 일요일 아침, 가족과 함께 콜로세오를 바라보며 한적한 로마의 거리를 걷는 이 순간에 작은(?) 행복이 느껴졌다.

머큐어(Hotel Mercure) 로마 센트로 호텔에서 본 콜로세오.

콜로세오 내부는 책이나 TV에서 봤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기대한 대로 웅장하고 신기했다. 곳곳에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이지만 콜로세오를 감상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레나 구역으로 가서 지하공간을 가까이서 살펴봤다. 파괴된 것처럼 훼손돼 있는데도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장면이 그려졌다. 백제가 몽촌토성과 풍납토성을 짓고 있을 때 로마는 정교한 벽돌 양식의 콜로세오를 건축했다. 비록 2000년 전 지어진 건물은 절반도 남지 않았다고 하지만, 벽돌 하나하나에서 역사가 느껴졌다. 건축에 문외한인데도 세계 7대 불가사의라는 말이 실감 났다.

이탈리아 로마 콜로세오 내부. 사진 오른 쪽 위로 보수공사를 진항하고 있다.
이탈리아 로마 콜로세오 아레나 구역에서 본 지하공간

또 다른 세계 7대 불가사의가 생각났다. 중국의 만리장성이다. 작가 조정래는 자신의 책 '정글만리'에서 책 속 인물을 통해 만리장성 입구에 있는 마오쩌둥의 시(詩) '장성에 오르지 않으면 사내 대장부가 아니다'라는 구절을 강하게 비판했다. "인민을 위해 혁명을 했다는 사람이 어찌 저럴 수 있을까. 저 기나긴 성을 쌓기 위해 진시황 시절부터 청나라 때까지 2000여 년을 걸쳐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죽어갔는데 인민을 위해 혁명을 했다는 사람이 그 장성에 올라 봉건 왕조의 폭정에 분노하거나 불쌍한 백성들의 희생은 전혀 슬퍼하지 않고 대장부의 기상만 뽐내고 있다."

중국 베이징에서 가장 가까운 만리장성, 거용관 장성 입구에 마오쩌둥의 시구를 새긴 기념비가 있다.

콜로세오의 역사도 만리장성과 다르지 않다. 콜로세오는 서기 80년 건축물로 7~8년 만에 완공됐다. 로마가 콜로세오를 건축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전쟁 포로와 노예였다고 한다. 노동력은 물론이고 세계 각국에서 탈취한 건축 기술이 총동원된 결과물인 것이다. 당초 야외 공연장으로 지어진 콜로세오는 노예들이 피 흘렸던 검투장으로 변질됐고 기독교인들이 박해받던 순교지로 바뀌었다. 교황은 세계에서 제일 크고 화려한 교회인 '베드로대성당'을 짓기 위해 콜로세오의 축대를 무너뜨렸고, 나폴레옹은 부족한 군수 물자를 충당하기 위해 콜로세오의 금속 장식을 파괴했다. 콜로세오는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세계 대전의 시작을 알렸던 곳이기도 하다. 콜로세오는 피로 지어졌다가 피로 물든 건축물이다.

이탈리아 로마 콜로세오 내부

지상 3층으로 올라가 아레나를 내려다보니 마음이 숙연해진다. 콜로세오에 고요함이 깃들면서 마치 묘지에 참배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콜로세오는 공동묘지로 쓰이기도 했다.) 아레나로 다시 내려가고 싶어 주변 직원에게 길을 물어보니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고 했다. 관람 구역이 일종의 일방통행으로 짜여 있었다. 아쉬움을 남기고 출구로 나오니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이 우리를 맞았다. 콜로세오의 위압감에 눌려 있어도 개선문의 '기개'는 여전했다.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이 다른 지역에 있었더라면 사람들로부터 더 많은 관심을 받았을 것이다. 오히려 '개선문'이라고 하면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개선문이 먼저 떠오르기도 한다. 파리 개선문은 나폴레옹이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을 본 따 만든 것인데도 말이다.

로마 콜로세오에서 바라본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여유로운 투어'가 모토인 우리 가족은 팔라티노 언덕과 포로 로마노를 쿨하게 '패스'했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콜로세오 주변은 붐비기 시작했다. 로마에서는 사람들이 많으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바로 콜로세오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전날 트레비 분수에서 동전을 2개 던졌다. 다음에 또 로마에 올 수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우리 가족의 첫 번째 로마 여행은 콜로세오에서 마쳤다.

이탈리아 로마 지하철역 콜로세오

<참고> 콜로세오 내부 관람 입장권은 온라인(www.coopculture.it)이나 전화로 사전 예매해야 한다. 콜로세오와 팔라티노 언덕, 포로 로마노(로마인 광장)를 포함해 24시간 동안 입장할 수 있는 티켓이 '기본 입장권'이다. 가격은 18유로. 여기에 아레나 구역을 포함한 입장권은 24유로, 아레나와 지하공간까지 입장할 수 있는 티켓은 34유로 등 다양한 종류로 판매하고 있다. 웹사이트에는 콜로세오 외 로마의 다양한 유적지를 방문할 수 있는 티켓을 판매하고 있다.

이탈리아 로마 콜로세오 내부 관람을 하기 전 가방과 소지품 검사를 실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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