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교 준비로 정신없는 아침. 런던 ‘해리포터 스튜디오’에 다녀온 지 두 달이 다 돼 간다.
아들의 꿈이 바뀌기 시작했다. 오디오북으로 해리포터 시리즈를 세 번째 듣고 있다. 시리즈 한 편을 듣는데 약 20시간 정도 걸린다. 배경음악처럼 틀어놓지만 한 장면도 놓치진 않는다. 드디어(?) 추워진 날씨에 해리포터 스튜디오에서 사 온 슬리데린 양털 후드 집업도 매일 입는다. 아들은 해리포터와 살고 있다.
해리포터 스튜디오는 아들의 10살 인생에 의미 있는 한 순간이 선사했다. 아들의 꿈은 유튜버와 대기업 회장이 밀리고 해리포터 스튜디오 직원이 1순위로 올라왔다. 가고 싶은 곳은 런던이고 살고 싶은 곳도 런던이다. 아들이 좋아하는 TV프로그램인 '세계테마기행'(EBS)을 보다 유럽 국가 이야기가 나오면 TV에 들어갈 기세다.
해리포터 스튜디오에 도착하면 대형 체스 기물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영화에 나오는 실물 크기에 스튜디오 투어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다. 아들은 7살 때부터 나와 함께 체스를 뒀고, 최근까지 주 1회 취미반 체스 수업을 들었다. 해리포터에 등장한 마법 체스를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다.
간단한 짐 검사 후 메인 홀로 들어갔다. 해리포터 영화 배경음악이 스산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천장에 달린 커다란 용의 입에서 금방이라도 불이 내뿜어질 것 같다. 홀 안쪽으로 들어가면 카페테리아가 나오는데, 여기서는 '버터 비어'를 팔지 않는다! 버터 비어는 투어 중간에 나오는 카페테리아에서만 판매한다. 버터 비어를 주문하면 컵까지 가져갈 수 있는데, 정말 상징적이자 실용적인 기념품이다.
해리포터 스튜디오는 영화 세트장 일부를 축소해 옮겨놓은 곳이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실제와 같아 몰입감이 남다르다. 킹스크로스역이나 그리핀도르 기숙사, 스네이프 교수의 실험실, 금지된 숲, 덤블도어 교수의 사무실 등 해리포터 덕후들의 정신을 쏙 빼놓는다.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는 VR 체험과 '죽음을 먹는 자들'의 공연, 마법 지팡이 잡기 등 볼거리와 체험거리도 소소한 흥미를 준다.
스튜디오 입장을 기다리는 동안 '스튜디오 패스포트(여권)'를 나눠준다. 세트장 7곳에서 스탬프를 찍는 미션인데, 스튜디오가 어둑 컴컴해서 스탬프 찍는 곳 찾기가 쉽지 않다. 세트장에 푹 빠진 아들은 2번째 장소에서 아예 나에게 스탬프 미션을 맡기고 엄마와 함께 투어에 집중했다.
첫 번째 세트장은 호그와트 학생식당. 각 장소마다 스튜디오 직원들이 영어로 설명하는데, 나의 영어 듣기가 맞는다면 학생식당은 실제 크기의 3분의 1 수준으로 만들었다. 덤블도어 등 교수들의 모형들도 축소 버전으로 배치해 놨다. 영어를 잘하면 더욱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스튜디오 투어의 1부, 2부가 있다면 '킹스크로스역'이 1부의 끝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열차에 올라타 호그와트 학생들이 머문 객실과 소품들을 볼 수 있다. 역사답게 기념품 판매하는 곳도 있다. 해리포터의 '여행가방'이 마음에 들었다. 클래식한 디자인이어서 소품으로도 괜찮아 보였다. 살짝 무겁긴 했다. 진짜 '짐'이 될까 봐 사진 않았다. 우리 짐이 많지 않았다면 아들의 여행가방으로 샀을 것이다.
킹스크로스역을 나오면 버터 비어를 파는 카페테리아가 나온다. 가격 대비 음식의 질은 정말 별로다. 밀려드는 손님들로 인해 음식을 찍어내기 바쁘다. 간단히 배를 채우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식사를 하지 않더라도 빼놓을 수 없는 메뉴가 있다. 바로 버터 비어다. 버터 비어의 플라스틱 잔은 기념품으로 가져갈 수 있다. 식당 한 켠에 씻는 곳이 있는데 다들 버터 비어 잔을 씻고 챙겨간다. 우리는 1잔만 주문하고 잔을 가져왔다. 비싸진 않았다. 한 개 더 챙겨 오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아들은 밥은 대충 먹으면서도 버터 비어는 깔끔하게 마셨다. 그리고 헐레벌떡 밖으로 뛰어나갔다. 식당 밖 야외 광장에 설치된 영화 세트장으로. 으스스한 다리, 해리포터 이모부의 집 등으로 기억한다.
스튜디오 투어 2부는 각 캐릭터 제작 과정과 특수 효과를 설명해 놓은 곳이 많았다. 직원들이 캐릭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특수효과가 어떻게 연출되는지 설명해 준다. 정말 영어를 할 줄 알면 많은 것을 얻어 갈 수 있다. 2부에서 기억에 남는 곳은 '다이애건 앨리' 거리를 재연해 놓은 곳이었다. 어둑 칙칙한 작은 마을이지만 사진 찍기 좋았다. (우리는 사흘 후 에든버러에서 다이애건 앨리의 모티브가 된 '진짜 다이애건 앨리'를 걸었다.)
갑자기 화장실이 급하다며 아들이 몸을 꼬았다. 우리나라에서 그 흔한 화장실이 이곳에선 찾기가 힘들었다. 직원에 물었다. 스튜디오 투어는 일방통행으로 진행된다. 화장실은 식당가에 있지만, 돌아갈 수 없었다. 결국 그대로 메인 홀까지 가야 했다. 다행히 다이애건 앨리 거리가 끝에서 두 번째 세트장이었다.
종종걸음으로 마지막 세트장을 지나려는 찰나, 아들의 걸음이 무뎌졌다. '호그와트 성'. 사람이 들어갈 정도로 크진 않지만 2개 층을 차지하고 있어 위에서도, 아래에서도 사진 찍는 재미가 있었다. 아들은 돌연 여유 있게 호그와트 성 곳곳을 눈과 사진에 담았다.
박물관이든, 미술관이든, 스튜디오든 마지막은 '기념품 가게'였다. 해리포터 스튜디오에 가면 입장료보다 굿즈 사는데 쓰는 비용이 더 많다고 했다. 아들이 가장 갖고 싶어 했던 '딱총나무 지팡이'를 바로 샀다. 우리가 아들에게 주는 이번 여행의 선물로 '슬리데린 후드 집업'도 구입했다. 피부가 하얀 아들에게 '그린핀도르' 색상이 더 잘 어울렸다. 아들도 해리포터가 속한 그린핀도르 기숙사를 제일 좋아한다. 하지만 붉은색 옷은 달가워하지 않았다. 우리는 딱총나무 지팡이, 후드 집업 두 개를 샀는데 1인 입장료보다 더 많은 돈을 썼다. 식사까지 더하면 입장료 외 쓰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스튜디오에는 굿즈 종류가 상당히 많지만, 디자인이나 아이디어 측면에서 2% 부족한 느낌이 든다. 옷감은 거칠었고 디자인은 밋밋했다. 대한민국 굿즈 1번지 '스타벅스 코리아'가 해리포터 굿즈를 대행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굿즈 중 장난감류는 런던 시내 장난감 가게나 에든버러 시내 기념품 숍에서도 구입할 수 있다. 가격도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 옷 종류는 해리포터 스튜디오가 아니면 구하기 쉽지 않다. 옷이든 장난감이든 스튜디오에는 가짜가 없다. 이왕 살 거면 스튜디오에서 사는 게 낫다.
"아빠, 회사에 들어가려면 뭐 해야 해?"
"무슨 말이야?"
"아니, 회사에 가려면 시험 같은 거 봐야 한다고 했잖아. 나 해리포터 스튜디오에서 일하고 싶어."
"저기서 일하려면 일단 영어를 해야겠지. 다 영어로 말하잖아."
"죽음을 먹는 자들은 말 안 하는데?"
"저기 직원들이 다 돌아가면서 역할을 할 거야. 회사에 취직하려면 시험을 봐야 하고 인터뷰도 해야 해. 저기서 일하려면 영어로 인터뷰해야지."
"..."
"런던에 있는 대학을 다니면 취직하기 쉽지 않을까. 여기서 공부하면 아무 때나 해리포터 스튜디오에 갈 수도 있고."
"아 맞네. 런던에 살면 되겠다."
런던 시내로 돌아오는 셔틀버스 안에서 아들이 진지하게 물었다. 해리포터 스튜디오는 여러모로 후회하지 않는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