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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후 Feb 03. 2022

르 라보(LE LABO)

오직 나만을 위한 핸드메이드 니치 향수

2000년대 중반 이후 전 세계적으로 니치 향수의 붐이 일었습니다. 2006년에 창립한 연구실이라는 뜻의 르 라보는 그 붐 안에서 가장 독보적인 성공을 거둔 향수 브랜드입니다. 어쩌면 니치 향수 붐의 원인이 소비자들이 "자신만의 개성 있는 향"에 대한 니즈가 있었기 때문이라면 르 라보는 이를 가장 잘 충족시켜주는 브랜드였기 때문입니다. 


나만을 위한 향수를 만들어주는 조향 연구실

르 라보의 공동 창립자인 파브리스는 향수의 가장 섹시한 매력은 조향사들의 행위라고 주장합니다. 전 세계의 향을 찾아다니며 채집하고 그것을 현실화시키는 장인 정신이야말로 향수가 가진 가장 매력이라는 것이죠. 르 라보의 메가 히트 제품인 샹탈33은 이런 르 라보의 철학을 가장 잘 반영한 제품입니다. 샹탈33은 제품 출시까지 무려 3년간 417회의 시향을 거쳤으며, 창립자 파브리스는 5개월간 샹탈33만을 뿌리며 지속적으로 향을 가다듬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르 라보는 디자인과 재퓸명도  콘셉트를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제품에는 향 이름 뒤에 랩 넘버처럼 보이는 숫자가 붙는데 이는 향수에 사용되는 원료 수를 뜻합니다.

이런 철학은 르 라보의 매장에도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몇몇 백화점을 제외하고) 르 라보의 모든 매장은 조향 연구실의 모습을 기반으로 인테리어 되어 있습니다. 소비자들이 르 라보의 매장에 들어설 때면 조향 연구실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서죠. 그리고 르 라보 매장은 "MADE TO ODER"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즉,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향을 선택하면 현장에서 향수를 만들어 고객의 이름이나 문구를 새긴 라벨을 붙여 주는 핸드메이드 시스템이죠. 

이 시스템은 나만의 향수에 대한 소비자들의 니즈를 충족시킬 뿐 아니라 조향 연구실이라는 르 라보의 콘셉트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르 라보만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소비자들이 전달하는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습니다. 



CITY EXCLUSIVE(시티 익스클루시브)

이솝이 해당 지역에 어울리는 매장 인테리어를 전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면 르 라보는 도시의 이미지를 반영한 향을 만들고 오로지 그 도시에서만 판매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뿌아브흐 23은 런던에서만 판매하고, 가이악 10은 토교에서만 판매를 합니다. 서울은 "시트롱28"이라는 향수가 있습니다. 



르 라보의 이런 브랜드 운영은 사실 재무적으로 손해를 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르 라보가 이런 운영을 고집하는 것은 아무 곳에서나 구할 수 있는 향수가 아님을 강조함으로써 니치 향수 브랜드의 조향 연구실이라는 아이덴티티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르 라보 브랜드 아이덴티티의 기반  : 와비사비(わびさび) 철학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재무적인 부담에도 불구하고 르 라보가 "MADE TO ODER", "CITY EXCLUSIVE"같은 정책으로 다른 브랜드와의 차별성으로 가져갈 수 있는 기저에는 와비사비 철학이 있기 때문입니다. 와비사비는 일본의 전통미를 설명할 때 많이 사용되는 말입니다. 투박하고 단순하지만 좀 더 본질에 가까운 것이라는 뜻입니다. 

르 라보는 누구나 좋아할만한 풍부한 향과 화려한 디자인이 향수의 본질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향수가 가진 매력의 본질은 조향사의 열정과 장인 정신이고 그것이 좋은 향수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디자인은 연구소의 샘플처럼 다소 투박합니다. 도 인테리어는 지나치게 꾸미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래된 벽면이 훤히 드러난 것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대신에 전문가가 소비자가 원하는 향수를 완벽하게 구현해 내는데 초점을 맞춥니다. 이것이 르 라보가 자신들의 철학이라고 이야기하는 와비사비를 해석하는 방식인 것입니다.


처음 르라보를 접할 때 향수를 이렇게 만드는게 되나 싶을 정도 투박한 디자인에 좀 당황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향수 브랜드들이 지향하던 방향성과는 완전히 방향으로 향수를 해석한 것이 오히려 르라보라는 브랜드를 크게 각인하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그 당황과 충격의 효과 때문일까요? 지금은 르라보가 ELCA소속으로 그 방향이 조금은 대중화 쪽으로 이동되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그것이 뭔가 나만 알고 싶은 맛집이 프랜차이즈를 하는 느낌이 들어 아쉽습니다. 비즈니스를 하는 입장에서 대중화는 어쩔 수 없지만 르라보만의 색일 잃지 않길 바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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